△경남 밀양에서 시설작물을 재배하는 신모씨는 무단 이탈한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으로 풀어준 고용센터의 행태에 속이 상해 농장 일부를 외국인 근로자가 필요 없는 작목으로 바꿀 계획이다. 작은 사진은 새 숙소로 이동을 거부한 외국인 근로자에게 가설건축물에 살았다는 이유로 사업장 변경을 확정해준 고용노동부 관할 지청에서 보낸 통지서.
[탐사기획] 외국인 근로자 고용제도 대해부
[3부] 외국인 근로자 관리 엉망 - 당국 ‘강건너 불구경’
일 안 준다며 ‘허위 민원’ 넣고 무단이탈에 농사 망쳤는데도
관할 지청은 사업장 변경 허용
진정 제출 거드는 인권단체선 직원 찾아와 “빨리 해결하라”
중재해야할 관할 지청 눈치만
농민신문 밀양=노현숙, 정읍=황의성, 수원=최문희 기자 2021. 11. 05
“현장에서 확인할 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인정했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까?”
3년 전 경남 밀양에 귀농해 시설농사를 짓는 신모씨(42)는 10월7일 고용노동부 관할 지청의 통지서를 받고 이렇게 따져 물었다. 고용센터가 외국인 근로자의 태업과 무단이탈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해놓고는 돌연 ‘합법’ 조치를 내려서다.
신씨는 1년 넘게 기다린 끝에 6월14일 외국인 근로자를 받았다. 근로자가 하루라도 빨리 필요해 자가격리 비용 140만원도 전액 부담했다. 그런데 외국인 근로자는 농장에 온 첫날부터 태업을 했다. 몸이 아프다며 툭하면 숙소로 들어가버렸다. 근로자를 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는 “모기에 물려 귀에 염증이 생긴 것”이라며 웃었다.
이 근로자는 12일째부턴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사업장 변경에 동의해달라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세례’를 퍼부은 것. 첫날엔 50통, 다음날은 80통, 그다음 날은 100통. 신씨 부부가 합쳐서 300통이 넘는 ‘문자 폭탄’을 받은 날도 있었다.
근로자는 처음 수확하는 고추 가지를 보란 듯이 부러뜨렸다. 참다 못한 신씨가 목소리를 높이면 휴대전화 녹음 버튼을 눌렀다. 고용주의 귀책사유를 만들어 사업장 변경 동의서를 받아내겠다는 속셈이었다.
고용센터는 현장조사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가 일하지 않고 숙소에서 나오지 않는 것, 새 숙소로 옮기라고 해도 가지 않는 것, 휴대전화 문자 폭탄 등을 모두 확인했다. 올 1월 강화된 외국인 근로자 주거시설 기준에 맞춰 어렵게 임차한 새 숙소인 아파트까지 보고는 ‘숙소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근로자가 고용주가 일을 안 준다는 허위 민원을 이곳저곳 넣자 고용센터는 사업장 변경에 동의해주라고 은근히 종용했다. 그러던 중 근로자는 50일 만에 농장을 이탈해 인권단체에 진정을 넣었다. 신씨가 무단이탈 신고한 지 한달쯤 지나자 고용센터는 근로자를 임시 퇴사 처리해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근로자의 진정 처리가 한달 이상 소요되면 임시 퇴사 처리를 한다는 규정 때문이라고 했다.
신씨는 “무단 이탈한 근로자를 고용주가 퇴사 처리해준 적이 없고, 고용센터가 일처리를 제때 안해서 취한 조치였다”며 “고용센터는 그동안 진행 과정에 대해 한마디 설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고용센터 담당자는 신씨에게 사과하며 근로자는 사업장 변경이 안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외국인 근로자가 새 숙소로 옮길 의사 여부에 상관없이 가설건축물에 살았다면 무조건 사업장 변경을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고용센터 측은 “새 숙소와 가설건축물도 있어 고민을 많이 했고, 이탈로 처리하기가 애매했다”며 “명확하게 법률과 규정을 적용해서 처리하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아 그렇게 결론 냈다”고 설명했다.
신씨는 “3년을 일하기로 계약했으면 근로자가 정해진 기간만큼 성실근로의 의무를 다하도록 해야 하는데, 계약을 위반한 근로자를 ‘합법’으로 보고 풀어주는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불성실한 외국인 근로자로 인해 농사를 망쳐버린 농민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외국인 근로자 인권만 운운하는 고용센터의 행태에 환멸을 느꼈다”고 말했다.
전북에서 시설하우스 농사를 짓는 문모씨(57)도 무단 이탈한 외국인 근로자가 인권단체와 손잡고 사업장 변경을 요구해 한동안 골치를 앓았다. 야반도주한 근로자가 인권단체를 앞세워 임금 체불 등을 주장하며 고용센터에 진정을 넣었기 때문이다.
문씨는 “고용센터에 영농일지와 송금내역서 등 해명자료를 제출했지만 고용센터는 자료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사실 확인을 위한 질문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문씨를 속상하게 한 것은 인권단체의 눈치를 살피며 합의를 종용하는 고용센터의 태도였다. 그는 “고용센터가 근로자와 고용주의 원만한 합의를 도와줘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근로자 주장만 수용하는 것 같았다”며 “농가는 안중에도 없고 외국인 근로자의 권익 보호에만 신경 쓰는 고용센터가 마치 다른 나라 기관처럼 느껴졌다”고 꼬집었다.
문씨는 이후에도 인권단체에 시달렸다. 문씨는 “여러명의 인권단체 직원들이 수시로 집에 찾아오는가 하면 전화로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좋지 않다’고 협박하듯 말했다”며 “사업장 변경과 함께 합의금 500만원을 제시하기에 농사일도 바쁘고 귀찮기도 해 요구를 들어줬다”고 말했다.
경기지역 한 시설채소농가도 근로자와 문제가 생기자 농가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상황을 무마하려고 하는 고용센터의 태도에 화가 났던 경험을 털어놨다.
이 농가는 채용한 지 며칠 안돼 외국인 근로자가 더 많은 임금을 주는 곳으로 가고 싶다며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자 고용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해당 근로자를 계속 고용할 방법이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 채소를 제때 납품하려면 한명 한명이 아쉬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용센터는 근로자 손을 들어줬다. 외국인 근로자가 고용주 귀책사유가 없는데도 단순 임금 인상을 이유로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면 고용주는 응하지 않아도 되지만, 고용센터는 농가에 외국인 근로자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한 것이다.
이 농가는 “고용센터 측에 사업장 변경 기준을 물었더니 명확한 설명 없이 계속 사인을 해야 한다고만 답변했다”며 “사업장 변경에 동의하지 않으면 농가만 골치 아플 것이라는 고용센터 측 주장을 납득하지 못했지만, 만에 하나 피해를 볼까봐 사인해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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