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알셉)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해 11월15일 문재인 대통령이 협정문에 서명한 이후 거의 1년 만이다. 이에 따라 2012년 11월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한 이후 9년 만에 알셉은 국회 비준이라는 최종 단계만을 남겨놓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관계부처와 업계 등 이해관계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한 결과, 알셉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이날 밝혔다. 알셉은 아세안 10개 회원국과 한·중·일, 호주·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국과 알셉 국가간 교역규모는 지난해 기준 4840억달러 수준이다. 전체 교역규모(9803억달러)의 49.4%에 달한다.
비준동의안에는 평가분석 결과와 산업별 피해대책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농업부문은 그동안 부실 조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피해규모와 지원대책이 거의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농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농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추산한 농업부문 피해규모는 과수 40억원, 과채 12억원, 쌀 13억원, 녹용 4억원 등 연간 77억원에 그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정현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사무부총장은 “동남아시아산 열대과일의 국산 과일 소비 대체효과가 분명한 상황에서 시중 유통되는 농산물만을 기준으로 피해를 분석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환대 한국사슴협회장은 “중국산 녹용 관세가 20년에 걸쳐 철폐돼 국내 사슴업계에 위기감이 팽배한데 녹용부문 연간 피해액이 고작 4억원이라니 말문이 막힌다”고 말했다.
임병희 한국농축산연합회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청년농 육성, 스마트팜 확대 등 농업 미래가치를 올리겠다고 연일 부르짖으면서 협정에 따른 평가분석은 농업 미래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됐다”고 꼬집었다.
대책에 대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영향평가분석 결과를 토대로 연간 100억원씩 10년간 1000억원 규모의 지원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대책은 대부분 과수부문에 쏠려 있고, 그마저도 간접 지원 성격이 대부분인 것으로 전해졌다. 임 집행위원장은 “농업계가 과수산업 발전에 꼭 필요하다고 애원하다시피 한 사업들을 내년도 예산안엔 한푼도 반영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제 와서 알셉 발효에 따른 과수부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건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서 8월말 확정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임산부 친환경농식품 지원사업 ▲초등 돌봄교실 과일간식 지원사업 ▲저소득층 농식품바우처 지원사업 등 이른바 ‘취약계층 먹거리 지원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농업에 미치는 파급력이 매우 큰 사안을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에 대한 반발도 나온다. 서용석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지난해 11월 대통령이 제4차 알셉 정상회의에서 최종 서명한 이후 정부는 농업부문 피해규모와 지원대책 논의를 진지하고 투명하게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최근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해 공식 가입 선언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만큼 속도를 내고 있는데도 농업계는 논의에서 계속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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