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유통환경을 둘러싼 변화가 숨 가쁘다. 새벽배송·페이전쟁 등 유통 신조어들이 스마트폰 뉴스 화면을 장식한 것도 어느새 어제 일이 됐다. 4달 후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발병 2년을 꽉 채운다. 그 몇달 후엔 새 정부가 들어선다. 농민을 위한 농산물 유통 정책방향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농식품산업 활성화 방안은 어떻게 짜야 하는지 강용 한국농식품법인연합회장을 만나 들어봤다.
― 한국농식품법인연합회에 대해 설명해달라.
▶2006년 농업계의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격으로 출범한 한국농업CEO연합회가 전신이다. 식품업무가 농림부로 이관되면서 2010년 한국농수식품CEO연합회로 이름을 바꿨고, 자칫 법인 대표들의 친목 모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2012년 현재 이름으로 다시 개명했다. 국내 등록된 농업법인수는 6만곳이 넘고 운영 중인 법인은 2018년 기준 2만1700곳에 달한다. 농업법인 195곳을 정회원으로 두는 연합회는 농업법인을 대표하는 유일한 단체다. 그러나 농민과도 밀접하다. 우리나라 농업법인은 대부분 산지 생산농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농민과 법인이 함께 커나갈 수 있도록 현장 목소리를 전달하는 게 제일 큰 역할이다. 농업 성장을 가로막는 불합리한 규제 등 걸림돌을 걷어내는 일도 우리 몫이다.
―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맞서 ‘한건’ 했다.
▶내년부터 투명포장 신선농산물에 생산연도·내용량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돼 있던 것을 농업계와 합심해 철회토록 했다. 그대로 뒀더라면 산지 부담이 가중되고 시장질서가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6월초부터 두달 반 동안 이 문제에 대응하면서 느낀 점은 두가지다. 우선 현장에서 시행토록 하는 것은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투명포장 농산물 표시 의무화를 추진하면서 불투명 농산물에 대해선 40년 넘게 의무화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현장에선 법이 그러해서 중량 표시를 한 사람은 거의 없다. 필요하니까 스스로 했을 뿐이다. 법만 이를 강제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었던 거다. 정책 담당자의 중요성도 절감했다. 담당자가 현장 이해도가 떨어지고 전문 지식이 없다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수많은 농민이 피해를 보게 됨을 정부가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 과거 대형마트에 고구마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블랙컨슈머’에 걸려 곤욕을 치렀다고 들었다.
▶6∼7년 전 일이다. 당시 국내 굴지 대형마트 A에 친환경고구마 1㎏들이 소포장품을 법인 명의로 납품했다. 유통인이라면 알겠지만 소포장용 비닐포장엔 숨구멍을 뚫어놓는다. 유통 과정에서 습기가 차 내용물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가 마음만 먹으면 이 구멍 안으로 이물질을 얼마든지 집어넣을 수 있다. A마트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고구마 소포장품에서 성인 음모가 발견됐다는 민원이 접수됐다는 것이다.
접촉 결과 민원인은 남성이었고 자신의 부인이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며 500만원의 피해 보상금을 요구했다. 당시만 해도 대형마트가 ‘갑’이었기 때문에 산지에선 억울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돈으로 해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친환경산지를 꾸려 소비자와 오랫동안 교류해왔던 나는 민원인이 블랙컨슈머임을 직감했다. 내가 양보하면 또 다른 산지가 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법적 분쟁까지 염두에 두고 강하게 나가자 해당 소비자는 ‘꼬리’를 내렸다.
― 온라인 유통이 성장하면서 이런 일이 더 많아질 것 같아 걱정이다.
▶당연하다. 주변에서 보고 들은 비슷한 일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과거엔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에게 산지가 해당 농산물을 교환해주는 선에서 그쳤다면 최근엔 정신적 피해 배상까지 요구받는 수준이다. 코로나19로 온라인 거래가 매년 늘고 있다. 2020년 국내 온라인 매출이 43조원이다. 올해는 50조원을 돌파할 것이란 추정도 있다. 이 중 농축산물은 7조6000억원으로 예상된다. 서울 가락시장 매출이 2019년 기준 4조7000억원(수산물 5000억원 포함)이다. 4조7000억원짜리 가락시장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정책적 관심과 에너지를 쏟나. 그런데 7조6000억원 시장(온라인 거래)엔 가락시장의 10분의 1이라도 신경을 쓰는지 묻고 싶다. 더욱이 온라인시장에선 농민·농업법인이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가칭 ‘농식품 온라인거래 분쟁조정기구’를 만들어 산지를 보호해야 한다.
― 외국인 근로자 처우 개선 요구로 농업계가 힘들다. 더욱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농업법인 농지 취득이 크게 제한됐다.
▶외국인 근로자 숙소 문제는 개인적으론 10여년 전 예견한 바 있다. 농촌인력 구조를 볼 때 이 문제가 불거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농업인력 대행회사’를 만들어 파견근로, 외국인 계절근로자 수급, 직업 훈련, 숙소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담당토록 하자고 정부에 수차례 건의했다. 하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외국인이 외국인을 수탈하고 농민은 농민대로 힘든 상황이 돼버렸다. 농막 등을 숙소로 인정하고 유예기간을 길게 줘야 한다. LH 사태는 헌법에서 규정한 ‘경자유전’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 세제 혜택 등 법의 허점을 이용한 ‘위장 농업법인’의 불법 농지 취득은 일벌백계가 아니라 ‘일벌천계’해야 한다. 농업법인 말고도 누구라도 목적 외에 농지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 대선주자들에게 꼭 전달했으면 하는 얘기가 있다면.
▶정부 통계를 유심히 봐야 한다. 2018년 기준 식품제조·외식·농수산물 매출이 312조원이다. 유통업까지 합치면 521조원이다. 농기계산업 등 전방산업을 포함하면 못해도 700조∼800조원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 국내총생산(GDP)이 1213조원이었다. 700조원을 기준으로 하면 58%, 521조원을 기준으로 해도 43%다. 창출되는 일자리도 막대할 것이다. 자동차산업을 말할 때 ‘현대·기아차’만 생각하지 않지 않나. 그 아래 수많은 협력업체도 다 자동차산업 구성원으로 친다. 건설·조선업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때론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이들 산업을 회생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농업에 대해서만큼은 굉장히 협소한 개념으로 본다. 식품산업을 농업으로 포함시켜 이른바 ‘농식품산업 큰 지도’를 머릿속에 넣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 농민부터 농업법인까지, 식품기업부터 농업 스타트업까지, 원물용 국산 농산물부터 가공용까지 크게 보고 골고루 육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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