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농업정책의 대상이 되는 ‘농업인’의 정의를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뜨겁다. 1994년 농지법 제정과 함께 등장한 농업인이라는 법적 개념이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어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미국의 활동적 농업인, 농업경영체, 가족농의 정의’라는 연구보고서가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별다른 제한 없이 농업정책의 혜택을 받으려면 ‘적극적으로 농업에 참여(Actively Engaged in Farming·AEF)’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미국 농업법상 AEF 요건은 개인·공동경영·기업 등 주체별로 다르다. 개인은 ▲농업경영에 필요한 자본·장비·농지와 적극적 노동 및 경영 제공에 상당한 기여 ▲농업경영의 결과 발생하는 이윤이나 손실이 생산요소 제공에 상응 ▲농업경영에 따르는 위험을 부담할 것 등이 기준이다. 이때 ‘적극적 노동’은 농지 준비나 재배·수확, 농산물 판매 등에 연간 1000시간 이상을 투입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
AEF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지원할 수 있는 농업정책이 있기는 하다. 재해 발생으로 인한 긴급지원이나 환경보전 프로그램에는 AEF 요건을 갖추지 않아도 참여할 수 있다. 다만 AEF 요건에 미달하면 ▲가격손실보상·수입손실보상 ▲유통지원 융자 혜택 ▲시장 촉진프로그램 ▲무역분쟁으로 인한 농업인 손실지원 등 굵직한 정책사업에선 배제된다.
또 미국은 농업통계 생산이나 과세 목적으로 ‘농업경영체’를 따로 정의한다. 미 농무부(USDA)·행정예산관리국·통계국은 1975년부터 연간 농산물 판매액이 1000달러(약 116만원) 이상인 농가를 농업경영체로 규정하고 있다. 기상이변이나 자연재해, 시장환경 변화로 판매액이 일시적으로 1000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작물 재배규모와 가축 사육마릿수로 농업경영체 여부를 판별한다.
미국 농업경영체 가운데 97%를 차지하는 ‘가족농’을 정의하는 기준도 있다. 가족농의 정의나 요건은 정부기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가족 중심의 농업경영체 소유와 경영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고서는 “미국 정부는 정책 대상을 구분하려는 의도보다는 농가 경제실태 파악을 위해 가족농의 정의와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USDA가 수행하는 농업자원관리조사는 연간 전체 농업소득에 따라 가족농 유형을 분류한다. 농축산물 판매 소득, 정부보조금, 기타 농업 관련 소득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연간 전체 농업소득이 35만달러(약 4억원) 미만이면 소규모 가족농, 35만달러 이상 100만달러(약 12억원) 미만이면 중간규모 가족농, 100만달러 이상은 대규모 가족농으로 구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