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비 급등·방역 등 고려 없이 일부 언론, 고물가 주범 내몰아
기재부마저 달걀값 점검 나서 농식품부, 여론·현장 사이 고민
농민신문 김소영 기자 2021. 8. 25
최근 언론에 신조어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밀크플레이션(Milkflation)’. 우유를 뜻하는 밀크(Milk)와 물가 상승이라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말이다. 우유값이 빵·아이스크림·커피 등의 물가를 연쇄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뜻한다.
특이한 건 또 있다. 요즘 농업 기사는 온통 가격 얘기뿐이라는 것이다. 방역상황에 대한 성찰이나 수급구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기 힘들다.
일부 언론이 농축산물을 고물가의 주범으로 내모는 행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여론과 농업현장 사이에서 농정당국이 샌드위치 신세가 되면서 농축산업의 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낙농진흥회가 최근 원유값을 이달부터 1ℓ당 926원에서 947원으로 2.3%(21원) 인상하기로 했다. 2018년 이후 3년 만이다.
하지만 비농업계 여론은 싸늘하다. ‘원유값 인상 강행에 밀크플레이션 현실화’ ‘우유값 최소 100↑…도미노 인상 눈앞’ 등 유제품가격 인상 전망을 앞다퉈 보도한다. 정부 ‘읍소’에도 낙농업계가 밀어붙였다는 뉘앙스의 기사도 적지 않다.
얼마 전엔 달걀값으로 홍역을 치렀다. 겨울 철새로 인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여파, 고온의 날씨, 집밥 수요 증가에 따른 소비확대 등의 구조적 요인은 무시됐다. 급기야 기획재정부가 정부 합동점검반을 편성해 전국 달걀유통센터를 점검하고 “담합 정황 등이 발견되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게 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답답한 일은 또 있다. 8일과 16일 강원 고성과 인제의 양돈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석달여 만에 잇따라 발생했다. 양돈업계가 추가 전파 차단에 사활을 거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많은 언론은 돼지고기값이 얼마나 오를지에 관심을 더 보였다. 폭염을 뚫고 어렵게 생산한 고랭지배추·건고추를 보는 시선도 ‘가격 외눈박이’다.
한달 남은 추석, 석달 후 찾아올 김장철을 앞두고 농축산물값이 치솟아서는 안된다는 걱정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건비·사료비 등 농업생산비가 급등한 현실을 외면한다는 비판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농정당국의 딜레마도 커진다. 농업현실에 무지한 여론과 물가당국, 생산비 상승분만큼 농축산물 시장가격도 올라야 맞다는 농가 사이에 껴 있다. 기재부의 ‘한탕주의’가 불편하면서도 볼멘소리를 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원유기본가격 생산비연동제가 못마땅하면서도 농가소득 감소 우려가 신경 쓰이는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낙농산업 구조 개선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낙농산업 발전위원회를 23일 출범시키고 25일 첫 회의를 연다. 시유 소비량이 2001년 36.5㎏에서 2020년 31.8㎏으로 줄었지만 가격은 더 오른 현실을 살펴보겠다는 취지다. 유제품 소비가 305만t에서 447만t으로 늘었지만 자급률은 77%에서 48%로 급락한 상황을 파악해보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여론에 등 떠밀려 추진하는 구조 개편이 아니라 농가소득을 높이고 관련 산업을 진흥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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