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농산물 물가 안정만 부르대는 정부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2021. 8. 18
“올 추석 물가가 양호한 수준에서 관리될 수 있을 것이다. 전반적인 농축수산물 수급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이 최근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밝힌 말이다. 이 얘기는 이 차관의 입에서 나와 언론보도를 탔지만, 사실상 농축산물을 바라보는 정부 당국의 기조로 읽힌다. 1년 전,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서도 정부는 농축산물에 대한 가격 안정을 강조했다. 아마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2년 전 또는 그 이전 추석 역시 정부 당국의 주요 관심사는 ‘물가 안정’이었을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농산물 주산지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해 50일이 넘는 장마 피해를 겪은 농민들의 추석 민심은 평안치 못했다. 댐 하류 지역인 전남 구례와 경남 합천 등의 농지는 물에 잠겼었고, 최근 수해 1주기를 맞아 이 기간 동안 수몰된 가축 피해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소 위령제’를 지냈을 정도로, 상흔이 깊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올해 초 농업 전망을 통해 농가소득 상승을 전망했지만, 현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마당에 정부 당국의 ‘추석 물가안정’ 단속 방침에 대해 박수를 칠 농민들이 많지 않다.
지난해 농산물 수급 불안정을 겪은 산지에서는 올해 일찌감치 수급 파동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시세가 좋았던 품목들의 파종이 늘었고, 비가 적은 날씨 탓에 생산량까지 좋아 ‘공급 과잉’ 신호음이 나오고 있다. 당장 8월 하순부터 본격 출하되는 고랭지 배추와 무부터 작황 호조 영향으로 시세 하락이 우려되고 있고, 사과 등 과일 역시 ‘풍년’ 관측 속에서 시세 걱정으로 애를 태우는 모습이다. 지난해 무리한 살처분 여파로 인한 계란 가격 인상은 이미 예견된 상황이지만, 정부는 ‘엉뚱하게도’ 계란 수입을 강행하며 축산 농가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이 차관의 ‘물가 안정’ 단속 발언이 소비자에게는 필요한 시그널일 수 있지만, 추석 한가위 수확의 기쁨을 기대하며 농사를 지어왔던 농민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농산물 시장에 미칠 여파가 어떨지에 대한 신중한 발언인지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정부 당국의 물가 관리 대상에 부동산이나, 라면 등 가공식품 가격 인상이 아니라 애궂은 농산물이 부각되고 있는 이 상황이 내년에도 ‘데자뷔’처럼 되풀이될 것 같아 걱정이다. 매년 ‘전년 수준의 농산물 시세’여야 바람직한 추석이라고 여기는 물가 당국의 인식이 산지의 박탈감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점 역시 정부가 살펴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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