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간 대면 경매 중심으로 이뤄져 왔던 농산물 도매 거래가 무대를 온라인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동 속도가 빨라지는 모양새다. 양파·마늘 등 2개 품목을 대상으로 시행한 온라인 도매 시범사업이 호평을 받는다. 대형 유통업체는 물론 마켓컬리 등 내로라하는 온라인 유통업체까지 거래에 뛰어들었다. 유통 단계가 획기적으로 줄어들면서 보다 싼 가격에 상품을 매입할 수 있다는 장점에 이목이 쏠렸다. 농민 입장에서도 유통 비용이 줄어드니 제값 받고 파는 일이 가능하다. ‘윈-윈’인 셈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상품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도매 거래가 이뤄진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이 문제를 해소하려면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지속가능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신뢰가 쌓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더라도 도매 거래의 중심축이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옮겨 가는 흐름 자체는 막기 어려워 보인다. 경제적인 측면이나 편리성 면에서 생산자와 도매 참여업체가 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가정하에서다.
온라인, 유통단계 ‘4’에서 ‘2’로
온라인 도매 거래가 본격화한 것은 지난해 5월부터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이 협업해 ‘온라인농산물거래소’를 개장했다. 처음에는 양파 1개 품목으로 시작한 뒤 8월부터 마늘이 추가됐다. 생산자인 농업인이 지역농협 등을 통해 판매 물량을 올리면 구매자들이 가격을 제시하는 식으로 거래가 진행된다.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구매자에게 낙찰되면 그때부터 배송이 시작된다.
‘경매’라는 큰 틀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유통 과정을 뜯어보면 대면 경매와 큰 차이가 난다. 그동안 농산물 도매 거래는 크게 4가지 방식으로 진행됐다. 1976년부터 시작된 일반 경매가 가장 보편적이다. 생산자가 도매시장법인에 상품을 배송하면 중도매인이 경매를 거쳐 구매한다. 이후 중도매인이 유통업체 등 소매상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생산자-도매시장법인-중도매인-소매상’ 등 4단계의 유통단계를 거친다. 유통단계를 줄이기 위해 ‘상장예외’나 ‘시장도매인’ 같은 제도도 1994년과 2000년에 각각 도입됐다. 중간에 껴 있는 두 단계를 한 단계로 줄여 3단계에 걸쳐 도매 거래가 진행되는 방식이다. 반면 온라인 도매 거래는 생산자와 소매상이 직접 거래한다. 유통단계가 2단계뿐이다.
기존 방식과 비교해 생산자나 소매상 모두 유리하다. 유통 비용이 확 줄기 때문이다. 생산자는 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한 소매상과 직거래하고 소매상은 유통 비용을 줄인 제품을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인수할 수 있다.
양파·마늘 온라인 도매 거래 ‘순항’
아직 시범사업 단계지만 거래 규모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양파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30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25일 거래된 양파 물량은 2946t으로 지난해 6월(2408t)보다 22.3% 늘었다. 아직 5일 치 거래량이 집계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물량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5월부터 지난 25일까지 1년1개월여간 누적 거래액은 306억2900만원에 달한다. 양파보다 늦게 시작한 마늘 거래도 순항 중이다. 11개월 동안 298억4700만원어치가 팔려 나갔다.
구매에 참여하는 소매상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에서 거래 규모는 점점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체에서는 농협하나로유통과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GS가 거래에 참여하고 있다. 사실상 대형 유통업체는 다 들어온 셈이다. 온라인 유통업체도 온라인 도매 거래에 눈독을 들인다. 마켓컬리와 쿠팡이 들어온 데 이어 최근에는 요리연구가인 백종원씨가 대표로 있는 더본코리아도 참여했다.
균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되면 거래 품목도 더 늘 예정이다. 현재는 소매상이 온라인을 통해선 확인할 수 없는 품질을 담보하기 위해 농식품부와 농협이 품질 관리를 맡고 있다. 하지만 시범사업 단계를 넘어 궤도에 안착하려면 생산자 차원에서 품질 관리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정부 차원에서 품질을 관리해 줄 필요가 있지만 앞으로는 자조금 단체 등 생산자들이 품질 관리를 맡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 품목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기존 도매 시장과 ‘투트랙’ 필요
온라인 도매가 정착하게 되면 기존 도매 시장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다만 당분간은 도매 시장 유지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서울시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의 도매가격이 각종 정책 지원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농작물재해보험과 자유무역협정(FTA)피해보전직불금, 비축지원, 채소가격안정제, 지자체 최저가격보장제 등 각종 제도가 가락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삼는다. 대형 유통업체 등 민간 영역에서도 아직은 가락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납품가격을 산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2019년 기준 국내에서 유통된 전체 농산물의 33.6%가 가락시장을 거치다 보니 기준점이 된 것이다.
도매 시장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도 풀어야 할 숙제다. 온라인 도매로 급격히 넘어가게 되면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적으로 82개의 도매시장법인이 영업하고 있고 중도매인은 6450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온라인 도매가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도록 연착륙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