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김치를 김치라 못하고
한국농어민신문 최영진 기자 2021. 6. 22
“저희도 파오차이 말고 다른 이름으로 김치를 수출하고 싶습니다”
중국으로 김치를 수출하는 한 업체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중국의 ‘김치공정’이 이어진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파오차이(泡菜)의 대체어가 여전히 만들어지지 않고 있어서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파오차이의 대체어로 유력한 명칭은 신치(辛奇)다. 발음이 유사하고, 2013년 ‘한식세계화’의 일환으로 중국에 상표권 등록도 한 만큼 대체하기 좋다는 이유다. 또 신치의 신(辛)이 맵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그런데 중국 수출용 김치에는 신치라는 명칭도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중국의 ‘식품안전국가표준’에 새로운 명칭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중국 자국 내 또는 해외에서 통용되는 단어여야 한다. 그러나 신치라는 명칭은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선 중국의 식품안전국가표준에 등록할 수 없다는 게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이에 국내를 찾는 중국 관광객들에게 신치라는 단어를 먼저 알리고, 이를 근거 삼아 식품안전국가표준에 등록한다는 계획이다.
황당한 이야기다. 정작 김치공정을 일으킨 중국 현지에는 김치가 파오차이로 수출되고, 국내용 제품에서나 신치로 쓰자는 것이다. 특히 ‘통용돼야 한다’는 애매한 기준으로 인해 얼마나 알려져야 하고, 언제 중국의 식품안전국가표준에 등록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7월 제정한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표기 지침’ 훈령을 여전히 개정하지 않으면서, 김치의 중국어 표기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문체부 훈령은 “중국에서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음식명의 관용적인 표기를 그대로 인정한다”며 ‘김치’를 ‘파오차이’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정부가 운영하는 사이트에서도 ‘김치=파오차이’로 혼용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운영하는 온라인 거래알선 플랫폼 ‘아그로트레이드(AGROTRADE)’에는 김치 제품이 파오차이로 등록돼 있다.
뿐만 아니라 김치가 파오차이로 번역돼 있어, 중국의 파오차이가 세계 5대 식품인 것 마냥 포장됐다. ‘김치는 세계 5대 건강식품 중 하나’라는 문장을 번역하다보니, ‘파오차이는 세계 5대 건강식품 중 하나(泡菜是世界5大健康食品之一)’로 둔갑한 것이다. 이와 달리 같은 농식품부 산하기관인 한식문화관은 김치에 대한 중국어 표기를 2020년 12월 일제히 ‘신치’로 변경했다. 중국의 김치공정이 거세지자, 김치의 중국어 표기를 바꾼 것이다.
최근 편의점 GS25가 온라인 세상을 달궜다. 김치를 파오차이라는 중국어 명칭과 병기한 제품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은 것이다. 중국의 김치공정으로 인한 ‘반중정서’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의 대처가 늦어지면 애꿎은 김치 수출업체에 비난의 화살이 돌아갈 수 있다. 현재 김치 수출업체로서는 파오차이와 함께 Kimchi를 작게 병기하는 노력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한 김치 명인은 돈은 포기하더라도 자부심은 버릴 수 없다고 했다. 정부가 이 문제를 대중 외교 현안으로 다루는 것은 물론 국내 훈령도 조속히 개정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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