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감자 수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봄감자는 6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수확된다. 사진은 충남 홍성군 서부면의 박재후 씨 농가에서 수미감자를 수확하고 있는 모습. 이곳에서 수확된 감자는 거의 전량 농업회사법인 (주)해성에서 수매하며 농심 ‘수미칩’으로 가공된다. [사진=최기수]
수확의 기쁨보다 일손 모시기 전쟁·인건비 급상승으로 ‘울상’
마늘 재배지 인력난 태부족…수확 포기도
인건비·상차작업비 상승에 한숨만
수확시기 근로자 노쇼에
잦은 비로 수확 제 때 못해 수확 포기까지
농촌 인력 정책 재정비
외국인 근로자 한시적 비자 연장 법제화 등
정부·지자체 정책 지원 절실
농수축산신문 박현렬 이문예 기자 2021. 6. 22
지난달부터 시작된 마늘 수확작업이 한창이다. 슬슬 더위가 몰려오는 6월 중순부터는 충청도를 시작으로 수미감자 수확도 본격 시작됐다. 수확에 따른 농업인들의 보람과 기쁨이 최대치에 이르는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인력 확보의 어려움과 인건비의 급격한 상승에 농업인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에 지난 21일 충남 홍성군의 수미감자 수확 현장과 경북·경남 마늘 주산지를 찾아 농업인들의 고충을 들어봤다.
# 치솟는 인건비에 농가 ‘울상’
“기계(콤바인) 지나가야 하니까 얼른 와 여기부터 주워 담자. 쉬었으니 이제 빨리 좀 움직이자고.”
콤바인이 땅을 훑고 지나가자 알 굵은 감자들이 줄줄이 땅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사돈네 밭에서 오늘 하루 일을 돕게 됐다는 김태이 씨가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손짓 발짓을 총동원하며 일을 지시했다. 충남 홍성군 서부면 수미감자 수확 현장의 풍경이다.
이날 현장에 있는 사람 중엔 밭 주인 박재후 씨와 콤바인 기사, 작업반장 역할을 하는 김 씨를 제외하고 15명 남짓한 근로자 모두가 외국인이었다.
김 씨는 “이젠 농촌에서 외국인 인부를 빼면 농사를 접어야 할 지경”이라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력 구하기가 더 어려워진 데다 인건비가 많이 올라서 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김 씨도 근처에서 수미감자를 재배하는 농업인이다. 그는 지난 주 앞서 수확을 마쳤지만 인건비가 워낙 비싼 탓에 사돈네와 품앗이를 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외국인 여자 인부 품삯은 9만 원, 남자 인부는 10만 원이었는데, 올 초부터 오르기 시작하더니 지난주 감자 수확 작업을 할 때에는 여자 13만 원, 남자 15만 원을 줬다”며 “하루에 대충 14만 원씩 15명만 해도 그게 얼마냐”고 하소연했다.
김 씨와 박 씨 농가는 알음알음 지인을 통해 인력을 충원해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어렵게 인력을 확보할수록 품삯도 올라간다.
박 씨는 “주변의 다른 지역에선 남자 인부 품삯이 18만~20만 원까지 치솟았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박 씨는 이틀에 걸쳐 감자를 수확하며 총 44명의 외국인 일일 근로자를 고용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하면 이틀 인건비로만 176만 원에서 최대 220만 원을 더 지불하게 된 셈이다.
# 수확 포기 농가도 속출
경북 의성, 영천, 경남 창녕 등 마늘 주산지의 인력난도 심각해 마늘 수확을 포기하는 농가까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늘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는 최근 ‘수확기 마늘의무자조금 농촌일손돕기 보고서’를 통해 “마늘 수확시기에 인건비가 자고나면 만 원이 오를 뿐만 아니라 인력을 구하기도 하늘에 별 따기”라며 “수확기 잦은 강우로 인해 작업 조건은 더 어렵고 인건비는 추가로 들어간다”고 밝혔다.
마늘의무자조금에 따르면 영천의 경우 1일 인건비가 지난해 9만5000원에서 올해 15만 원까지 상승했다. 또한 외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활발해지면서 17만 원에 용역업체를 소개하는 매신저까지 등장하면서 향후 인건비는 더욱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창녕의 한 농가의 4950㎡(1500평)의 논에서 마늘을 털고 잘라 망에 담는 작업이 이뤄졌는데 인건비 상승과 더불어 비로 인한 작업 능률마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창녕의 한 농가는 “평생 농사를 지었지만 자고나면 만 원이 오르고, 다음날 만 원이 또 오르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지금까지 없었다”며 “지난해 망당 600원 하던 상차작업비는 올해 700원으로 상승해 앞으로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한숨만 나온다”고 토로했다.
수확시기에 맞춰 정해진 인원을 용역업체에 요청해도 약속한 인원이 오지 않고 잦은 비로 수확을 제 때 하지 못해 수확을 포기하는 농가도 발생하고 있다.
이태문 마늘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이 최근 만난 의성의 한 농가는 2만9700㎡ 가량(9000여 평)에서 재배한 마늘 수확을 포기했다.
이 농가는 “수확을 위해 기계로 마늘을 털어놨는데 약속한 인부가 오지 않고 비까지 내려 암담한 상황”이라며 “수확을 위해서는 수천 만 원이 들어가기 때문에 수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이 사무국장은 “3만9600㎡(1만2000평) 중 2만9700㎡의 마늘 수확을 포기한 농가의 건조창고에는 전체 15% 정도의 공간에만 마늘이 채워져 있었다”며 “지난 겨울 동해로 결주가 많은 상황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인건비에 수확기 비 까지 자주 내려 마늘 재배 농업인이 난감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농촌현장에는 인력을 구하기 위해 마을끼리 인건비를 더 높이는 경쟁을 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지난해 대비 인건비가 60~70% 가량 상승했으며 잦은 비로 작업 능률도 떨어져 농가의 수확 경비 부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 정부·지자체 정책적 지원 절실
문제는 이 같은 큰 폭의 인건비 상승이 외국인 근로자들의 실질 임금 상승이 원인이 아니라는 데 있다. 농업인들은 인력 중개 과정에서 내국인들이 폭리를 취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 농업인은 “외국인 인부들한테 물어보면 실제로 자기네들이 받는 일당은 오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며 “결국 작년에 비해 1인당 4만~5만 원씩 오른 인건비는 모두 농업인과 외국인 인부를 중개하는 이들이 해먹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농업인은 “어려운 농촌 현실을 뻔히 알면서 내국인들끼리 이렇게 폭리를 취하고 더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것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덧붙였다.
감자를 봉투에 주워 담고 대형마대(톤백)에 다시 옮겨 담는 단순한 일이지만 선뜻 나서는 내국인 근로자도 없어 외국인 근로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날 현장을 찾은 농업회사법인 (주)해성의 금석헌 대표이사도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해성은 209만2562㎡(63만3000평)의 계약재배로 수미감자를 수매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금 대표는 평소 직접 여러 현장을 둘러보며 농업인들의 가까이에서 목소리를 듣고 있다.
금 대표는 “요즘엔 감자 농가의 80~90%가 인건비 때문에 감자 농사 못 짓겠다는 말을 한다”며 “적은 인력 투입이 가능하고 다른 품목과 수확기가 겹치지 않는 품목으로 변경하겠다는 농업인들도 최근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6월에는 감자뿐만 아니라 양파, 마늘 등도 동시에 수확기를 맞는다. 안 그래도 일손 구하기 어려운 농번기에 코로나19 장기화로 외국인 근로자 입국까지 제한되면서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금 대표는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며 “농촌 인력 정책 재정비와 비상시 외국인 근로자의 한시적 비자 연장 법제화 등 다방면에서 농업인들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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