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지난해 사상 첫 500조원대 ‘슈퍼예산’을 수립한 데 이어 내년엔 600조원을 넘보는 ‘초슈퍼예산’을 편성할 기세다. 이런 확장적 재정운용 기조 속에서도 농업예산 증액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공개한 ‘2022년도 예산 요구 현황’에 따르면 각 부처는 내년 예산으로 593조2000억원을 요구했다. 올해 예산 558조원에 견줘 6.3% 증가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농림수산식품분야의 요구는 22조9000억원으로 올해 22조7000억원보다 0.9% 늘어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훌쩍 넘어서는 예산 증액은 환경·복지 분야 등이 주도하는 분위기다. 환경분야는 전기·수소차 인프라 지원 등 탄소중립 이행 관련에 17.1% 증액을, 보건·복지·고용 분야는 양극화 해소 중심으로 9.6% 증액을 각각 요구했다.
이같은 요구대로 예산이 짜인다면 내년에도 국가 전체 예산 가운데 농업예산 비율은 3%를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농업예산은 국가 전체 예산의 4∼5%대는 돼야 한다는 농업계의 주장과 달리 그동안 근근이 지켜왔던 3%선마저 붕괴, 올해 2.92%를 기록하는 ‘참사’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최근 문재인정부 4년 농정 성과를 논의하는 자리에선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했던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발언이 농업을 직접 ‘패싱’하겠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기재부는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5년간 국가 총지출은 연평균 5.7%씩 늘리면서 농림수산식품분야 지출은 연평균 2.3% 증가로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특히 농업예산의 연도별 증가율은 2020년 7.4%에서 2024년 1.1%로 쪼그라들어 전체 12개 분야에서 꼴찌로 떨어지게 됐다. 각 부처의 내년 예산 요구도 이같은 흐름에서 재정당국이 제시한 지출한도 기준에 따라 작성된 것이다.
농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은만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기후위기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세계 식량가격이 급등하는 등 식량안보 대응이 절박한 상황에서 농업예산이 충분히 보강되지 않으면 국가적 재앙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농업홀대를 중단하고 농업예산을 국가 예산의 3% 이상으로 회복시켜 지속가능한 농업과 청년이 돌아오는 농촌 조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산성 중심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농업예산 개편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명헌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문재인정부가 ‘사람과 환경 중심의 농업’을 강조했지만 기존의 농정 틀을 깨기 위한 예산구조 개편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었다”며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농정의 주요 분야별 예산 배분 계획을 명시하고 탄소저감·환경보존 등 앞으로 투자를 늘려야 할 영역과 방식을 집중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을 공식화하면서 6월 임시국회에선 5차 재난지원금 지급 등 세부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농업계는 앞서 3월 1차 추경에 반영되지 않았던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농신보) 정부 출연이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