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기대’ 법인 ‘반발’…“장기적 관점으로 합의 먼저”
청과·화훼 부류 7%서 5%로 시행규칙 아닌 ‘법률’로 명시
지방 출하농·영세농에 유리 법인은 적자 경영 심화 우려
실효성 놓고 회의적 시각도
전문가 “일괄적 인하는 신중 규모별 차등 적용 등 검토를”
농민신문 이민우 기자 2021. 2. 24
농수산물도매시장의 위탁수수료 상한을 낮추는 내용의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안이 발의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개정안에 대해 “농가 부담 경감” 차원에서 찬성한다는 입장과 “지방 도매시장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반대 입장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해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개정안, 청과·화훼 위탁수수료 상한 7%→5%로 하향=개정안은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경기 여주·양평)이 대표 발의했다.
핵심 내용은 도매시장법인이 출하자로부터 받는 청과·화훼 부류의 위탁수수료 상한을 현행 7%에서 5%로 낮추는 것이다. 수산부류의 위탁수수료 상한도 현행 6%에서 5%로 내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시행규칙이 아닌 법률에 위탁수수료 상한을 규정하도록 했다. 현재는 도매시장 개설자가 정할 수 있는 위탁수수료율이 시행규칙에 규정돼 있다.
도매시장 개설자들은 시행규칙 규정에 따라 소속 도매시장법인이 출하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위탁수수료율을 업무규정으로 정하고 있다.
김선교 의원실 관계자는 “법률에 위탁수수료 상한을 규정해 국회가 위탁수수료를 직접 통제하게 되면 민의가 즉각 반영될 수 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위탁수수료 인하를 개정안에 포함시켰다”고 강조했다.
◆농민들 일단 ‘환영’…효과는 ‘두고 봐야’=이번 개정안에 대해 농민들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강동만 제주월동무연합회장은 “농사 규모가 영세한 농민들은 수수료가 1∼2%만 인하해도 큰 도움이 된다”며 “도매시장법인이 위탁수수료로 큰 수익을 얻어도 생산자에게 환원되는 것은 별로 없었는데 수수료가 인하되면 생산자로선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방 도매시장법인에 출하하는 농민들의 기대감이 크다.
광역시지역 도매시장법인은 평균 6∼7% 이내, 기타 시지역 도매시장법인은 평균 7%의 위탁수수료를 받고 있어서다. 반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는 대아청과만 5%가 넘고, 나머지 법인은 4∼5%대의 위탁수수료를 받고 있다.
다만 개정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표하는 반응도 나온다.
곽길성 가락시장품목별출하자협의회장은 “위탁수수료를 낮춘다면 도매시장법인이 일부 하역비를 농민에게 전가하는 등 다른 방식으로 수익을 보전하려 할 것”이라며 우려했다.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도 “도매시장법인이 수익을 일방적으로 양보하진 않을 것”이라며 “2% 낮춘 수수료율이 출하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려면 도매시장법인의 대응까지 고려한 법안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도매시장법인, 강하게 반발…“지방 도매시장법인 파산할 것”=도매시장법인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현재도 재정이 열악한 지방 도매시장법인이 많은데 위탁수수료까지 인하하면 대부분 적자 경영을 면치 못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는 위탁수수료(청과부류)를 1% 인하하면 전국 49개 도매법인의 연간 적자액이 362억원, 2% 인하하면 연간 적자액이 1000억원을 상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협회 관계자는 “도매시장법인의 당기순이익은 거래금액 기준 0.46%로 결코 높지 않다”며 “수수료 인하는 지방 도매시장법인을 적자 경영에 빠뜨려 결국 지방 도매시장의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수수료 인하는 신중히”=전문가들은 파급 효과를 고려해볼 때 일률적인 위탁수수료 인하는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성훈 충남대학교 교수는 “취지에 공감하나 지방 도매시장법인은 위탁수수료 인하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도매시장 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태석 농촌진흥청 농산업경영과 연구원은 “일본은 위탁수수료를 자율화할 때 도매시장법인이 지급하는 출하장려금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출하자 단체인 일본농협(JA)이 반대했는데, 결국 자율화 이후에도 일본의 수수료율은 이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출하장려금 등 혜택이 줄어들 수 있는 만큼 출하자 이익을 면밀히 살핀 뒤 접근해야 한다”고 전했다.
위탁수수료 인하는 이해관계자간 합의를 기반으로 장기간에 걸쳐 진행해야 할 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출하자만을 위한다면 위탁수수료를 1%로 내리면 되지만 그러지 못하는 건 도매시장이 관계자들의 이해가 정교하게 맞물린 하나의 생태계이기 때문”이라며 “장기적인 과제로 설정한 뒤 농민·법인·관계기관간 합의가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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