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기간 없이 기준 강화 조치 농가 인력신청 거절 잇단 발생
농식품부·고용부·국토부 등 여러 부처 얽혀 해결 난항
농업계 현실적 대안 마련 요구
농민신문 홍경진 기자 2021. 2. 17
정부가 농업분야 외국인 근로자 주거시설 기준을 대폭 강화하면서 농가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정부의 조치는 지난해 12월 경기 포천의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생활하던 외국인 여성 근로자 사망 사건이 불거지면서 예고 없이 전격 시행됐다. 농민들은 근로자의 인권과 안전을 고려한 주거환경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급작스레 바뀐 기준을 적용하면 외국인 근로자를 배정받을 길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농업현장은 이미 숙소문제로 외국인 인력 배정을 거절당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혼란이 커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는 데다 관련 부처의 칸막이 규제로 농민들만 위기에 몰리는 상황이다. 여러 부처의 제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해선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조율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허가제(E-9)를 통한 외국인 근로자 배정 권한은 고용부에 있다. 고용부는 1월1일부터 비닐하우스 안에 컨테이너나 조립식 패널을 사용해 숙소를 제공하는 농가에는 고용허가 인력을 내주지 않고 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가 이에 반발해 2일 고용부 청사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자 고용부는 기준 강화 유예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부지가 마땅치 않아 농지에 필수시설을 갖춘 숙소를 마련한 경우 ‘농지 타용도 일시사용 허가’ 대상에 포함시켜달라는 요구도 높다. 경기 이천 대월농협의 지인구 조합장과 농민 881명은 최근 이런 주장을 담은 청원서를 이천시와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농지법을 관장하는 농림축산식품부는 이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농지에 지은 농막을 주거시설로 인정받으려면 농식품부뿐 아니라 국토교통부·환경부·지방자치단체 등의 협조가 필요해 해결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고용부가 관리하는 농업분야 외국인 쿼터는 연간 6000∼6600명 수준이지만 현장에 실제 종사하는 외국인 취업자수가 이보다 훨씬 많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가 고용허가제 인력의 주거시설 기준을 따진다 해도 단기비자 등으로 입국해 불법체류하는 외국인 근로자 30여만명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남기 때문이다. 더구나 합법적 인력수급이 막히면 농민들은 불법체류 외국인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처우는 개선하지 못하면서 농민들만 범법자로 내몰릴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농업계는 2월 임시국회에서 관계 부처 등이 참여해 외국인 근로자 숙소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 관련 상임위원회에선 아직 이같은 문제를 검토하지 않는 분위기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2월 임시국회는 여야 일정 조율이 이미 마무리돼 관계 부처가 참여해 외국인 근로자 숙소 문제를 함께 논의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학구 한농연 회장은 “외국인 근로자 숙소 기준 강화는 농업분야에 큰 어려움을 주는 문제인데 제도 변경 과정에서 국회 차원의 공론화 절차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며 “환노위 또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가 관계 부처로부터 합동 업무보고를 받고 현안을 심도있게 검토해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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