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환경 급변…소비지 트렌드·소매업태 변화에 적극 나서야
소매점·가공·외식업체, 구매 안정성 중시
상품화·물류시설 미흡…도매시장 구매 기피
지방도매시장 설립 이후 변화 큰 차이 없어
시설현대화사업만으로는 한계 기능 전환 방안 검토해야
시장도매인제 도입 답 아냐
아직 영세농 다수 시장 내 혼란만 가중
시설현대화 필수… 상품화시설 갖추고, 안전·위생 강화
농수축산신문 박현렬 기자 2021. 2. 9
1985년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 설립 이후 우리나라에는 33개 공영농수산물도매시장이 운영되고 있다. 공영도매시장 설립 전에는 산지와 위탁상 간의 힘의 불균형과 정보의 비대칭 문제로 인한 가격 속임, 대금 결제 지연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정부는 가락시장 설립을 계기로 위탁거래를 전면 금지했으며 1991년부터 상장경매제를 도입,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를 유도해 왔다. 이를 통해 공영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원예농산물은 우리나라 전체 물량의 60% 가량에 육박한다.
그러나 경매의 단점인 경락가격의 편차가 크다는 이유로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2004년부터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서 시장도매인제와 경매제가 병행되면서 시장도매인들의 성과가 뚜렷하게 나타난 반면 경매제 시장은 침체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3년 전부터는 시장도매인제를 용이하게 도입하기 위한 법안 등이 발의되고 있으며 유통인들 간의 경쟁을 통해 도매시장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공영도매시장의 역할과 기능, 새로운 거래방법 도입에 대한 문제, 도매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봤다. <편집자 주>
# 도매시장을 둘러싼 유통환경 변화
산지는 도매시장의 구매조건이 여의치 않을 경우 대량구매가 가능한 대형마트 등으로 거래선을 변경하고 있다. 산지조직에서는 외식용, 가공용, 신선농산물 소비용으로 구분해 생산하고 있는데 분산기능을 맡고 있는 도매시장 중도매인들은 이같은 다양화와 전문성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자본에 의한 대형마트 출현과 소비지 시장 장악, 대형식자재업체와 외식기업의 성장 등 신유통업태로의 직거래 유통 증가, 시장 내외의 겸업 벤더, 시장 외 벤더 등 다원화된 유통경로는 도매시장 유통에 위협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장외로 빠져 나간 산지와 소비지 고객들을 시장 안으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등 도매시장 내부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도매시장의 기능과 역할에 더해 소비지 트렌드와 소매업태의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새로운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가·수의거래 확대를 통한 소비지 대응력 강화, 물류기지로서의 역할 강화, 먹거리 안전성과 도매시장 시설의 위생 강화를 통한 안전·안심 먹거리 공급의 전진기지로서의 역할, 신선식품의 안정적인 공급기지, 대형유통업체 등 시장 외 유통기구에 대한 견제 기능 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위태석 농촌진흥청 농업연구관은 “유통환경변화를 주도하는 소매점·가공·외식업체는 구매의 안정성을 중시하는데 도매시장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며 “상품화·물류시설이 미흡한 점도 이들이 도매시장 구매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 공영도매시장, 생산자 보호·안전한 농산물 공급 역할 수행
공영도매시장은 설립 목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농업인들을 보호하고 소비자들에게 안전한 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건설됐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하 농안법)에 수탁거부 금지 조항을 명시해 공영도매시장에 출하된 농산물은 특별한 사유(거래할 수 없을 정도의 품질 문제, 출하자가 경락가격을 인정하지 못해 유찰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농산물이 거래된다.
고령의 영세한 생산자가 1상자를 출하해도 판매해야 하는 게 현 공영도매시장의 시스템이다. 이에 영세한 생산자들은 직접 판로에 대한 걱정 없이 수확한 농산물을 도매시장으로 출하하면 된다. 생산자들이 지불하는 위탁수수료도 농안법에 7% 이내로 규정함으로써 도매시장법인이 과다한 폭리를 취할 수 없도록 했다.
또한 경매사들이 출하된 농산물에 대한 품질과 가격, 출하방법 등의 정보를 생산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고품질의 농산물 출하를 유도하고 있다. 농가의 수취가격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소비지에서 원하는 규격, 품질이 담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유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매시장에 출하된 농산물에 대해 검사를 실시하고 잔류농약 등이 남아 있는 경우 폐기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영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의 경우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지방도매시장의 경우 보건환경연구원 등에서 안전성 검사를 실시한다. 더불어 검사 결과를 공개함으로써 생산자들이 농산물에 대한 안전성 관리를 출하 전부터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가락, 강서, 양곡도매시장을 관리하는 서울시공사의 경우 부적합 농수산물 신속 차단을 통한 먹거리 안전 체계를 확립하고 있다. 믿고 구매하는 시장 구현을 위한 등급표준화·원산지 표시 강화와 학교 급식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급체계도 구축 중이다.
도매시장의 또 다른 역할은 포장화를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에 차상거래 내지 짝짐으로 출하됐던 농산물을 상자 형태로 출하될 수 있도록 일부 비용도 지원하고 있다.
# 추가적인 거래 방법, 도입 답 아니다
현재 공영도매시장을 둘러싼 가장 큰 논란은 강서도매시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시장도매인제를 가락시장에 도입하자는 것이다. 경매의 가장 큰 단점은 경락가격의 편차가 크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인데 시장도매인제 병행 도입으로 이를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공사 관계자는 “경매의 경우 가격에 대한 출하자들의 의견이 담기지 않지만 시장도매인제는 협상을 통한 가격 결정이 이뤄진다”며 “통계적으로 강서도매시장의 매수와 수탁의 비율이 5대 5지만 가락시장에 도입 시 매수비율을 강제해 출하자와의 가격 협상을 통해서만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강서도매시장에서 농산물을 유통하고 있는 시장도매인의 경우도 전량 매수판매를 하는 게 아니라 지역 계통농협과의 협약을 통해 위탁을 받아 판매하는 물량을 무시할 수 없다.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경매에서는 생산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가격이 나오지만 시장도매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격·거래교섭력 측면에서 도매시장을 이용하는 생산자들이 대부분 영세한 데 이들이 시장도매인과의 거래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지 담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을 보장할 수 있다는 말이 맞지 않다는 게 상당수 유통인들의 주장이다.
정부는 2012년 농축산물 유통구조 종합대책을 수립하며 정가·수의매매를 경매와 동등한 거래방법으로 인정했다. 그럼에도 정가·수의매매 비율이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생산자와 중도매인이 정가·수의매매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산자와 중도매인 대부분이 규모가 영세하고 규모화 되지 않아 산지에서 요구하는 물량과 가격을 중도매인들이 수락하지 못하거나 중도매인들의 요구를 산지에서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서다.
뿐만 아니라 경매만으로도 소비지 물량을 확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중도매인들이 정가·수의매매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정부에서 가격 급등락을 방지하고 농가수취가격 향상을 위해 도입한 정가·수의매매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거래방법을 도입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권승구 동국대 교수는 “거래교섭력이 떨어지는 생산자들이 시장도매인과 거래를 한다고 해서 지금의 구조와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며 “강서시장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시장에서 두 거래방법을 병행하면 시장 내 혼란이 야기되고 기준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승룡 고려대 교수는 “가락시장은 경매제를 중심으로 운영돼야 하며 몇 몇 중도매인들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농업인과 소비자 희생을 담보로 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며 “농산물 유통의 효율화는 경매단계를 건너뛰거나 경매 기능을 약화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왜곡되고 불합리한 유통조성 기능의 정상화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2가지 거래방법을 병행 운영 중인 강서시장의 경우 경매제 시장의 경락가격은 우리나라 공영도매시장의 최하위 수준이다. 단순 경쟁 차원에서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는 게 생산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좀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 지방도매시장 이대로 놔둘 것인가
중앙도매시장과 광역시에 위치한 도매시장의 경우 출하량과 거래금액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지만 중·소도시에 위치한 지방도매시장의 경우 갈수록 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도매시장을 권역별로 나눠 이에 맞춘 정책을 펼치는 방안을 모색했었지만 성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농안법에는 중앙도매시장과 지방도매시장의 행위를 규율하는 법률적 차이가 없다.
이에 중앙도매시장과 지방도매시장의 재분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위태석 농업연구관은 “평균 단가와 거래량이 하락세로 돌아서면 도매시장 거래금액 하락현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환경 변화의 영향은 중앙도매시장 보다 지방도매시장이 더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락시장을 비롯한 중앙도매시장에 출하됐던 농산물이 다시 지방도매시장으로 내려가는 구조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수입과일 취급 비율이 늘어나다보니 지방도매시장의 기능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개설자인 지자체가 각 지역, 시장 특성에 맞춰 특화된 시장이나 물류센터, 전자상거래 사업소, 학교급식 지원센터 등으로 도매시장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환 (사)농식품신유통연구원장은 “유통환경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지방도매시장은 설립 이후 크게 변화된 점이 없다”며 “농안법으로 관리하기 보다는 지자체에 자율적으로 맡겨 특화된 시장 내지 물류센터 개념으로 기능을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공영도매시장 전반에서 이뤄지고 있는 시설현대화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능을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 영세 출하자를 위한 도매시장
공영도매시장이 발전되고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도매시장 외부에서 거래하는 대농들을 시장 내부로 유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도매시장 명칭처럼 도매를 중심으로 한 유통체계가 확립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포장화 된 농산물이 콜드체인시스템을 통해 파렛트로 유통함으로써 소비자에게 안심, 안전 농산물을 공급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가락시장을 필두로 나오고 있다.
가락시장의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주장하는 생산자단체들은 영세 소농의 입장보다는 대농들이 시장도매인과의 거래에서 교섭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도매시장 내 경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그동안 보호했던 영세 출하자들은 배제하고 도매시장의 활성화만을 볼지에 대한 부분이다.
정부가 그동안 최소출하단위를 설정하려는 움직임을 여러 번 보였지만 이를 포기한 이유는 영세 출하자를 어떻게 할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탁거부 금지 조항이 있고 영세 출하자를 보호한다는 목적 하에 설립된 공영도매시장에서 이들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강정현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사무부총장은 “오롯이 도매시장의 미래, 발전을 위해 시장 밖으로 나간 대농들을 시장 안으로 유입해야 한다는 측면이라면 영세 출하자들을 위한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며 “가격·거래교섭력이 약한 생산자들의 유일한 출하창구인 도매시장이 이들을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용석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부총장도 “도매시장 내 경쟁이 치열해야 생산자의 이익이 담보되고 수취가격이 향상될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영세 출하자들에게는 자유경쟁체제의 도매시장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산지 조직화가 많이 진전됐다고 하지만 가락시장을 이용하는 생산자들의 대부분이 영세 출하자라는 점을 볼 때 아직 갈 길은 멀다”고 밝혔다.
# 도매시장 시설현대화사업 선택 아닌 필수
공영도매시장은 새로운 유통과 물류체계에 대응하기 위해 시설현대화사업을 추진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다.
현재 건립된 지 20년이 지나 시설이 노후화되고 저온창고, 물류시설이 부족한 시장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시설현대화사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특히 식재료의 안정적인 조달을 위해 전국 각지 농산물을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한 유통경로가 필요한 상황에서 전국적인 생산-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는 공영도매시장을 통한 안정적 물량 확보 방안은 중요한 대안 중 하나다.
수요처에서 요구하는 전처리, 반가공, 포장, 냉동, 냉동보관 등을 처리할 수 있는 상품화시설을 구비하기 위해서도 시설현대화사업은 중요하다.
공영도매시장에서는 전국 지역단위 푸드플랜 실시에 대응해 직접 구색 맞춤 품목과 물량을 효과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학교급식 등 단체급식을 위한 플랫폼을 개발·운영하거나 거래는 중앙도매시장에서 이뤄지더라도 상품은 산지나 지역의 도매시장 등 현지에서 운송될 수 있는 온라인 경매 또는 온라인 정가·수의매매 등 현대적인 상물분리 거래방식을 개발·운영할 필요가 있다.
도매시장 외부에는 공공급식 등에 대응한 다양한 구색 맞춤 상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푸드플랜의 중점 정책 대상인 소비지 먹거리 수급정책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도매시장에서의 품질·위생 관리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그 기능과 신뢰를 향상시킨다는 관점에서 기존적인 위생관리 철저히 하고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의 적극적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안전·안심에 대한 소비자 요구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며 원산지표시제와 도매시장 내 농산물 안전성 검사 등을 통해 농산물의 안전성 제고를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도매시장 내 농산물의 안전성과 상품성 유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도매시장 내 시설 의 위생 관련 사안은 거의 무관심 상태이다.
안전·안심 농산물의 공급이라는 측면에서 도매시장 내 시설 위생 부분의 중요성과 원칙·기준 설정 등 정책·제도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신유통업태의 경우 단기적인 기간 동안 소비자 요구를 고려한 점포의 편리성, 청결성, 위생성, 안전성, 서비스 지향 등의 마케팅 전략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따라서 공영도매시장도 소비지 유통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측면과 소비지 시장의 판매 주체로 시장 장악력이 높은 소비지 신유통업태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시설 위생 부분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설정돼야 한다.
권승구 교수는 “시설현대화사업을 통해 생산자의 농산물을 안심, 안전하게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도매시장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증가할 것”이라며 “지방에 위치한 도매시장의 경우에는 먹거리 종합유통단지 조성 등을 통해 차별화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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