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 시대가 열리면서 농업계의 대응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개별 국가들과 맺은 FTA로 농축산물시장 개방의 폭이 상당히 커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소비되는 전체 농축산물 가운데 외국산 비중은 2000∼2002년 12.3%에서 2017∼2019년 22.3%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알셉)을 타결한 데 이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에 한국농업경제학회는 4일 ‘포스트 코로나 시대, 농식품 통상환경 변화와 FTA 대응 전략’이란 주제로 토론을 열고 농업계의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복수국가간 협정 체결 잇따라
농업분야 목소리 소외될 우려 농해수위에도 통상 보고 필요
아열대작물 재배 증가 등 감안 동남아 국가와 협정 신중해야
◆메가 FTA 부상…강화된 통상규범 대비해야=전문가들은 앞으로 FTA가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주의 체제를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CPTPP, RCEP 등이 잇따라 체결되는 등 복수국간 FTA와 메가(대형) FTA가 급부상하고 있어서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WTO 중심의 다자주의는 쇠퇴해갈 수밖에 없고 앞으로 최소 10여년 동안은 다자주의가 다시 융성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복수국간·메가 FTA 체결이 활발해지면 다자주의 체제에선 합의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국제 통상규범이 활발히 형성될 수 있는 만큼 농업분야도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기환 농림축산식품부 동아시아자유무역협정과장은 “FTA는 유사한 입장의 국가들이 체결하는 협정인 만큼 다자주의 체제에서는 추진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통상규범이 활발히 수립된다”며 “CPTPP가 회원국에 요구하는 ‘동식물 위생·검역(SPS)’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다자간 FTA가 본격화되면 농업분야는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만큼 농업계가 통상조약 체결이나 협상 진행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이 서둘러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이재호 농협경제연구소 부소장은 “FTA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농업분야인데, 정작 현행법상 통상조약과 관련된 정부의 보고 의무 대상에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빠져 있다”며 “현재 이를 보완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된 상태인데, 농민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서둘러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 따른 재배작목 변화도 고려해야=정부가 신남방정책의 일환으로 동남아시아 국가와의 FTA 체결을 확대하는 데 대한 우려도 크다. 이들 국가의 주력 품목이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에 따른 재배한계지 북상으로 국내에서 재배되는 품목과 겹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한·캄보디아 FTA를 타결한 데다 필리핀·말레이시아와의 FTA 체결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RCEP 타결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의 주력 품목인 일부 열대과일은 10년 후 무관세로 국내에 들어오게 된다.
이재호 부소장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아열대작물을 재배하는 농가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60년 후에는 전체 경지의 절반 이상이 아열대기후에 속하게 된다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에 피해를 미칠 부분까지 고려해 FTA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