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배추 주산지인 전남 해남군 화원면에서 서정원 해남 화원농협 조합장(오른쪽)이 한파로 언피해를 본 겨울배추를 살펴보고 있다.
주산지 해남·진도 등 피해 심각
산지폐기 요구도…정부 ‘신중’
재배면적 늘어 출하 증가 전망
품위간 가격차 예년보다 확대
농민신문 해남=하지혜 기자 2021. 2. 5
겨울배추는 주산지를 덮친 기록적인 한파로 언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다. 전남지역은 언피해 면적이 전체의 30%가 넘고 언피해로 인해 상품성 저하 물량도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겨울배추값은 소비부진 장기화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상품성 저하로 농가소득 ‘뚝’=“배춧속까지 얼 만큼 이렇게 심각한 언피해는 올해 처음 봅니다.”
겨울배추 주산지인 전남 해남군 화원면. 출하성수기를 맞아 한창 바쁠 때인데도 산지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1월 한파와 폭설로 겨울배추의 전반적인 상품성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동환 화원면 저상마을 이장(65)은 “기온이 영하 17℃까지 떨어지는 한파가 닥친 데다 눈이 오랫동안 녹지 않으면서 밑동이 무르고 속까지 얼어버렸다”며 “농가들 대부분이 올 겨울배추 농사의 절반을 망쳤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품성 저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밭에 있는 언피해 배추를 갈라보니 겉잎부터 속잎까지 섬유질 조직과 외피가 분리되는 이례적인 현상도 관측됐다.
품위가 좋지 않다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상인들에게 배추를 헐값에 넘기는 농가도 적지 않았다.
해남에서 만난 한 배추 재배농민은 “시세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언피해로 품질까지 나빠지자 산지수집상들이 계약을 파기하거나 거래대금을 깎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배추농민은 “밭떼기거래(포전거래)를 못하는 농가들은 한푼이라도 건지려고 상인들에게 330㎡(100평)당 10만∼40만원의 헐값에 배추를 넘기고 있다”며 “예년 같으면 330㎡당 80만∼90만원에 팔았으니 손해가 막대하다”고 허탈해했다.
언피해는 겨울배추 최대 산지인 해남과 진도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남도에 따르면 한파로 인한 겨울배추 피해 규모는 해남 1000㏊, 진도 260㏊로 추정된다. 이 지역 재배면적(추정치)과 비교하면 해남이 40%, 진도가 21%가량 언피해를 본 셈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밀조사를 통해 이달 10일까지 언피해 집계를 완료한 후 재해복구비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농가들은 언피해 물량에 대한 산지폐기 등 소득보전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서정원 겨울배추생산자단체협의회장(해남 화원농협 조합장)은 “330㎡당 30만∼35만원의 생산비가 드는데, 재해복구비는 농약대·대파대 등으로 330㎡당 지원금액이 10만원선에 불과해 농가피해를 보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공용으로도 쓰기 어려울 만큼 상품성이 떨어지고 저장성도 약한 언피해 물량은 시세를 떨어뜨리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며 “하루빨리 겨울배추 산지폐기 수순을 밟아 가격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산지폐기에 신중한 입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한파 피해에 대한 지원은 산지폐기 등 수급정책이 아닌 재해복구비나 재해보험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면서 “2020년산 겨울배추는 저장성이 떨어지는 만큼 4월쯤엔 물량이 달릴 가능성도 있어 산지폐기를 논하기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약세 기조 이어질 듯=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 출하되는 겨울배추 물량은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대아청과는 1월1일∼2월2일 겨울배추 반입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줄었다고 밝히고 있다.
출하량 감소는 북극발 한파로 출하작업이 지연된 것이 주요인이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소비가 줄며 가격 약세가 지속되는 것도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출하량 감소에도 1월1일∼2월2일 가락시장 배추 경락값은 10㎏들이 상품 한망당 4000∼6000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8000∼9000원에 거래됐다.
오현석 대아청과 영업2팀장은 “언피해로 전년보다 상품 이상 물량이 줄어든 데다 한파 전에 저장한 물량은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로 출하가 지연되고 있다”며 “출하량 감소에도 소비부진이 심각해 배추값이 약세를 면치 못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배추값은 당분간 약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파로 생산단수가 감소한 점을 감안해도 2020년산 재배면적이 전년 대비 크게 늘어 출하물량이 충분할 것으로 예상돼서다.
다만 상품성이 떨어지는 물량이 많은 만큼 품위간 가격차가 예년보다 더욱 벌어질 것이란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광형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한파와 폭설로 망가진 물량이 많기는 하나, 산지에 출하 가능한 물량이 충분해 가격이 크게 오르진 못할 것”이라며 “품위가 좋지 않은 저장 물량이 4월까지 버틸 수 있을지 여부와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소비변화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