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를 기다리는 사람들. 도매시장의 주요 고객인 동네 수퍼·마트는 대량구매 역량이 없어 대형마트에 밀려 점차 영세화되고 있다. 따라서 국가경제의 모세혈관인 수퍼와 음식점, 자영업자를 통해 지역경제를 살리려면 전국 도매시장에 시장도매인제를 도입 확산시켜 큰 도매상을 발굴, ‘다품목 소량 배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가경제 모세혈관 수퍼·전통시장·마트, 산지 직거래 못해 영세화
도매시장이 자영업자에 다품목·가공품을 소량씩 안정 공급해야
부부가 운영…도매시장 방문 어렵고 번들구매로 재고부담
시장도매인제와 4차산업기술 결합해 ‘물류센터’ 로 거듭나야
한국농업신문 유은영 기자 2020. 12. 15
한국마트협회와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11월과 12월 연달아 가락시장에 공정경쟁 도입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현재 경매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농산물 유통구조를 시장도매인제와 경쟁하는 구조로 바꿔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이득을 가져다주자는 것이 이들 주장의 요지다. 또 그래야만 마트와 수퍼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도매시장을 지탱하는 최대 고객이자 골목상권을 대표하는 유통인단체다. 따라서 국가경제의 모세혈관인 이들의 요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전국에 5400여 회원사를 둔 한국마트협회는 “중소마트는 소비자 식탁에 신선한 상품을 얼마나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느냐가 생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며 “유통비용을 줄이고 가격과 공급량을 안정화할 수 있는 시장도매인제를 가락시장 등 공영도매시장에 적극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서울지역조합은 “산지 직거래를 하지 못하는 동네 수퍼는 도매시장에서 공급해 주는 상품에 생존이 걸려 있다”며 “도매시장이 보다 신선한 양질의 농산물을 안정적인 가격으로 신속하게 공급해줘야 소비자의 발길을 잡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트와 수퍼는 산지 직거래와 온라인 거래로 흘러가는 유통산업의 현장에서 생존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도매시장의 경쟁력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농수산물 유통의 주도권은 산지와 직거래하는 대형유통업체와 온라인업체, 식자재업체와 외식업체에 넘어간 지 오래다. 산지 직거래로 유통단계를 축소시켜 좀더 안정적인 가격에 신선한 농산물을 확보할 수 없는 마트와 수퍼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의 회원사는 예전 10만개에서 3만개로 급속히 줄어들었다. 그 중에서도 농산물을 취급하는 수퍼는 5000개에 불과하다. 동네 수퍼는 농산물을 취급해야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서울 서부조합 홍천표 이사장은 “부부가 운영해 가족이 생활하려면 한 달 5000만원 상당을 팔아야 하는데 농수산물을 취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농수산물을 취급하는 데 두 가지 큰 애로가 있다. 가게를 비우고 도매시장을 직접 가야 하는 것과 대량구매를 못하니 다소 비싸게 산다는 점이다. 박스 채로 사와 못 팔면 재고부담도 안아야 한다. 이 부담이 커지면 도매시장 구매를 포기하게 되고 매출은 줄어든다. 이제 부부 중 하나는 투잡을 뛰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두 사람이 교대로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질 못하니 운영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수퍼는 구멍가게가 된다.
동네 수퍼가 망해 나가면 지역경제의 불씨도 사라진다. 이를 막으려면 도매시장이 수퍼가 주문한 농산물을 조금씩 갖다주는 ‘소량 가공 배송’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전문가에 따르면 전국 공영도매시장에 시장도매인이 도입되면 1000억대, 2000억대 법인이 나오고 쿠팡, 마켓컬리와 같은 새벽배송을 할 수 있을 만큼 커진다. 게다가 시장개설자가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혹시 있을지도 모를 유통인의 횡포에서 생산자·골목상권과 자영업자 보호를 철저히 할 수 있다.
다만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도매시장과 그의 최대고객인 골목상권을 연결시키려면 주문·판매, 소분. 가공·물류·배송·보관, 홍보 등에 4차산업기술을 도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로봇 큐알코드 블록체인 등 IT(정보기술)가 도매시장 운영시스템에 녹아들어야 한다.
노계호 서울농수산식품공사 강서지사장은 “중소마트와 자영업자, 영세식당, 전통시장 등이 쇠퇴하고 있지만 여전히 도매시장 거래의 50%를 차지하는 주요 고객이며 많은 일자리를 갖고 있는 고용시장이다. 도매시장에 4차산업기술을 도입하면 고용창출, 비효율적 유통 물류시스템 혁신 등 사회적문제가 해결된다. 이게 바로 그린뉴딜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유통 변화 흐름을 보면 개혁을 서둘러야 하는데도 변화의 키(key)를 쥔 농식품부가 경매제 위주의 유통구조를 중시해 도매시장 변화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코로나19 이후 유통판도가 급변하고 있다. 다 망해 나가고 나면 무슨 소용인가”라며 “도매시장이 스스로 개혁하지 않는다면 공영도매시장을 골목상권이 생산자와 직거래할 수 있는 물류센터로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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