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방출·할인행사 등은‘소비자 중심’정책에 불과
생산비 보장·재해대책·기후변화 대책 우선 제시해야
농업인 신문 유영선 기자 2020. 08. 28
“주요 농산물 가격은 생산과 출하가 정상화되면서 도매가격을 중심으로 빠르게 하향세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아침 8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물가관리차관회의에서는, 회의를 주재한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의 이같은 모두발언이 있었다. 김 차관은 가격안정을 위해 농산물 비축물량을 탄력적으로 출하하고 가격할인행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 현장은 지금, 논·밭 경계를 잃었고, 아예‘내 땅의 흙’이 사라져 생존기반을 찾을 길 없는 농민이 부지기수다. 이때 청사 사무실내에서는 농산물 할인행사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해당부처인 농식품부는 지난 10일부터‘농산물 수급 안정 비상 T/F’를 꾸렸다. 팀 제목부터 소비자중심의 가격안정이 주된 목적이고, 이는 기획재정부 패턴이다. T/F팀이 맨 먼저 대책을 내놓은 것이, 농산물‘비축 물량 대방출’이다. 누가봐도 농업을 위한 정책은 아니다.
고랭지배추와 무에 대해서는 정부비축물량을 풀고, 시설채소류는 농협계약재배 물량 등을 조기출하토록 유도한다는 방침. 생활물가 중 식품가격을 잡는 일환이다. 두 번째 내 논게 농산물 할인행사다. 우선 농협의 2천300여곳 판매시스템을 이용해서 엽채류를 시중보다 20~30% 할인 판매에 나섰다.
또 대형유통매장과 협력해서‘대한민국 농할 갑시다’라는 20% 세일행사를 벌이고 있다.
수급안정비상 T/F 단장은 유통소비정책관이다. 소비자중심이니 당연하다. 이쯤되면 경제전문지들이 벌 쏘듯 지적하는‘장바구니 물가 부담’에 대한 처방은 형식을 갖춘 셈이다.
‘물가안정’에 문재인정부가 총 출동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조기출하와 비축물량 방출’을 지시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단 원내대표는“추석 명절 비용 부담이 커지지 않도록 농작물과 생필품 수급 관련 물가지수를 관리하겠다”고 언급했다.
당연히 농민을 위한 정책은 뒤로 쳐질 수 밖에 없다. 서울청사의 차관회의 때, 농민을 대상으로 언급된 정책은 긴급방제, 약제할인이 전부다. 생존기반이 사라진 농가에겐 비현실적인 처방에 지나지 않는다. 영양제·방제약을 30~50% 할인 공급하는게 농가를 위한 대표 지원대책이 됐다. 이제는 보이지도 않게 흘러버린 농업의‘나노(nano)급’비중의 협소한 현주소다.
농민단체들은 농가 생계안정과 복구지원대책을 시급히 병행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농산물 할인행사를 하고, 외식쿠폰을 발행하고, 가격 떨어지라고 비축물량을 방출하는 등의 업무는, 다시 말해 농식품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게 현장 농업계의 목소리다. 이같은 물가대책은 기획재정부나 행정안전부, 중소벤처기업부, 보건복지부 등 소관이다. 오히려 농산물 생산비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타 부처의 할인행사를 견제하는 자세가 옳은 입장이라는 것이다.
농식품부는‘농업 편’을 들어, 소비자 보호를 주장하는 기재부와 형평성을 맞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재부의 물가안정 보조 역할, 행안부의 할인행사 물량공급, 산업부의 통상무역 창고역할, 중기부 업무의 유통업체 홍보 등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농식품부는 피해농가의 생산비 보장 차원의 보상대책을 세워야 하고, 재해보험의 허실을 파악해 개선대책을 내야 한다는 여론이다. 매년 거듭되는 기후변화에 대한 농업분야 매뉴얼을 짜서 농사에 접목시키는 일이 지금으로선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현장 요구다.
또 다른 농민단체 한 관계자는“추석차례용 사과·배 값 낮추는 정책에 가려, 원금 회수도 불가능한 씨를 뿌리고 있는게 현재 농업”이라며“기본을 갖췄다는 믿음을 심어놓고 디지털을 논하던지, 젊은사람을 농촌으로 부르던지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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