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양파·마늘 사태 이후 올해 선제적 대응으로 주목
농가 적정재배 의지도 중요
농민신문 김소영 정경부 차장 2020. 03. 20.
“시장이라는 건 분위기이고 타이밍입니다. 분위기를 타면 급속히 내려가는 것도 시장이고 타이밍만 맞으면 정신없이 오르는 것도 시장이에요.”
올들어 주요 품목에 대한 정부의 수급안정대책이 예년과 다른 모습으로 이뤄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겨울무는 2월25일, 햇마늘은 3월1일 출하조절(산지폐기)을 주요 내용으로 한 수급안정대책을 각각 내놨다.
속을 들여다보면 특이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겨울무는 농식품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웠던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매뉴얼은 가격불안 정도를 주의·경계·심각 단계로 구분하는데 단계별로 대응이 다르다. 가격하락 ‘주의’단계에선 국내외 수급상황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심각’단계에 들어서야 수매·폐기 등 시장격리가 이뤄진다.
그런데 이번 정부 대책은 겨울무 도매가격이 20㎏들이 상품 한상자당 8105원 밑으로 떨어졌을 경우 발동하도록 했다. 8105원은 안정단계를 벗어나 주의단계에 진입하는 값이다. 대책 발표일인 2월25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경락값은 8980원이었고, 이틀 뒤 경락값은 8089원으로 하락했다. 시세 흐름을 내다본 듯한 절묘한 타이밍이다. 무는 이후 8000~1만원선을 오르내리며 최악의 소비여건에서 그나마 선방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늘은 시점과 면적 결정에 산지 관계자들이 모두 놀랐다. 구도 제대로 형성되기 전인 3월초에, 그것도 <남도종>을 포함해 500㏊에 달하는 면적을 갈아엎기로 한 건 처음이다.
현장의 한 관계자는 “새해 벽두인 1월2일 정부가 마늘 재배동향을 파악한다며 산지 관계자들을 소집해 속으로 투덜거리며 회의에 참석한 기억이 있다”면서 “2월에도 재배면적이 평년 수준을 웃돌아 선제적 수급조절대책이 필요하다고 건의는 했지만 솔직히 별반 기대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마늘은 최근 출하조절에 응하겠다는 농가들이 크게 몰려 또 한번 놀라게 하고 있다. 경북·제주는 계획 대비 2배, 전남·경남은 5배 많은 농가들이 신청했다. 지난해 값 폭락으로 크게 곤욕을 치른 농가들의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산지폐기 지원단가를 꽤 높이고, 작물이 다 자라기 전에 미리 밭을 갈아엎음으로써 추가 경영비가 들지 않는다는 점 또한 농가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물론 대책의 효과를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깐마늘의 경우 여전히 도매시세가 1㎏당 3875원으로 평년(6528원)의 절반도 안된다. 현재 유통되는 깐마늘은 지난해산이긴 하지만 올해산 출하면적이 일부 조절되면 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 구입을 늘릴 법도 한데 감감무소식이다. 다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햇마늘 밭떼기가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주요 농산물 수급을 대하는 정부의 자세가 갑자기 달라진 이유는 뭘까. 일각에선 4·15 총선을 앞두고 농심 관리용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보낸다. 하지만 지난해 양파·마늘 폭락사태를 겪으면서 선제적인 수급대책의 중요성을 정부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견해에 손을 들고 싶다. 수급대책의 기반이 되는 농업관측을 올해부터 실측조사로 바꾼 데 따른 자신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게다가 정부 수급대책이 문제 해결의 전부는 아니다. 장기 침체에 빠져 있는 겨울대파는 정부 대책에도 좀체 살아나지 않고 있다. 농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적정재배 의지가 때론 더 중요할 수 있음을 새삼 되짚게 한다.
유통에 잔뼈가 굵은 산지 관계자들은 “시장은 분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 들어내는 것이지만 형성되는 분위기에 가격이 내릴 수도, 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2 017년 쌀 수확기에 정부가 선제적으로 시장격리대책을 내놨던 기억이 삼삼하다. 당시 쌀값처럼 반박자 빠른 수급대책으로 가격이 지지돼 농가소득을 높인 사례를 올해 그리고 앞으로도 많이 봤으면 한다.
정부 수급대책을 지적하는 단골 표현인 ‘늑장 대처’ ‘뒷북 대책’ ‘느림보 대응’을 기자도 그만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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