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농가들이 두달 넘게 울고 있다. 냉혹한 유통현실과 차가운 법규범 사이에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눈물의 씨앗은 넉달 전에 뿌려졌다.
지난해 9~10월 닥친 3차례의 가을태풍으로 갓 파종한 겨울양배추 작황이 크게 악화되면서다. 양배추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시장 공급량은 줄었고 국내 시세는 뛰었다. 지난해 10월23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의 양배추 경락값은 8㎏들이 상품 한망당 6945원이었다. 하지만 한달 뒤인 11월23일엔 8479원, 두달 뒤인 12월23일엔 1만518원으로 수직상승했다. 새해 들어서도 오름세는 계속돼 22일엔 1만2980원으로 치솟았다. 평년(5376원)보다 갑절 이상 높은 값이다.
하지만 농가 속은 편치 않다. 생산량이 전년보다 13%, 평년보다는 4% 감소한 데다 등급간 값 차이가 벌어지며 손에 쥐는 돈이 많지 않아서다. 더욱이 양배추는 2018년 아픔이 있던 품목이다. 시세가 생산비도 못 건질 정도로 폭락해 농가와 지역농협·산지유통인들의 손실이 컸다. 이걸 기억하는 농가로선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농가들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은 수입량 증가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2월 양배추 수입량은 새 역사를 썼다. 11월 4027t, 12월 4500t 등 두달 동안 8527t이 수입됐다. 매달 200~300t 수입되는 양배추 월간 수입량이 4000t을 넘은 건 처음이다. 폭염이 극심했던 2018년 8월엔 3497t, 태풍 ‘차바’ 여파가 나타났던 2017년 3월에도 3406t이 수입됐지만 4000t을 넘기진 않았었다.
농가들은 본격적인 수입 물꼬가 터지면 고착화할 수 있다며 시중 유통을 막아달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특히 국내 대표 공영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서만큼은 취급하지 말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농가는 지난 연말 산지유통인단체와 합세해 중국산 양배추의 시장 반입을 막아서기도 했다. 올들어서도 관련 현수막이 곳곳에 붙는 등 시장은 여전히 흉흉하다.
하지만 수입업체들이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위반이라며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 민원을 내면서 농가들의 외침은 허공에 떠돌게 됐다. 농안법 제38조는 ‘공영도매시장에 입하된 농산물의 수탁을 거부·기피하거나 거래관계인에게 부당한 차별대우를 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한다.
공사는 15일 대아청과 등에 예고장을 보냈고 수입 양배추 취급을 계속 거부할 경우 업무정지 등 행정처분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니세 유통총괄팀장은 “심정적으로는 농민들을 돕고 싶지만, 수입업자들이 날마다 찾아오는 등 압박하고 있어 도매법인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우리로선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도매법인들은 17일을 전후해 수입 양배추 취급을 속속 재개했다. 송영종 대아청과 경매팀장은 “중국산 양배추는 5t트럭 한대 분량이 들어오는데 겉잎을 많이 제거해 품질은 다소 떨어지지만 15㎏들이 한상자당 경락값이 8000~9000원으로 국산의 절반 수준이어선지 저가를 선호하는 중소 요식업체와 대형 식자재업체에 납품하는 중도매인들이 앞다퉈 구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농림축산식품부의 문도 두드렸다. 김학종 제주양배추연합회장은 “공영도매시장은 물론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 식자재업체가 수입 양배추 취급에 앞장서고 있다”면서 “정부가 이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식품부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긴 마찬가지다. 김민호 유통정책과 사무관은 “세계무역기구(wto)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3조를 보면 ‘외국산 물품이라도 일단 수입이 완료된 후에는 자국산 물품과 동등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내국민대우’ 원칙이 있지 않느냐”면서 “농민들 입장은 딱하지만, 수입 양배추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차별적으로 대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양배추는 주요 채소류 가운데 소비량이 늘어나는 흔치 않은 품목이다. 식생활이 서구화하면서 외식업체 등의 수요가 늘어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양배추 1인당 소비량은 2000년 4.6㎏에서 2018년 6.8㎏으로 48% 늘었다. 같은 기간 생산량은 21만4000t에서 34만9000t, 재배면적은 4900㏊에서 7000㏊로 성장했다. 배추·무·마늘·고추 등이 매년 감소세를 면치 못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농민과 소비자가 애써 키운 양배추시장을 외국산에 내주고 있다. 유통현실과 법규범을 핑계로 모두가 팔짱만 끼는 사이에.
[농민신문] 2020'''' 농업전망 -“농가·산지유통인에 고도화된 농업관측정보 제공을” 
[농축유통신문] 서울고법, 가락시장 위탁수수료 담합 아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