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가 공급과잉 기조를 보이면서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평년작을 밑돌았으나, 12월부터 이상고온이 지속돼 생육이 급격히 좋아진 게 주요인이다. 현 추세가 이어지면 설 이후 대파값이 급락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선제적인 수급대책이 절실해 보인다.
◆예상 밖 과잉생산…산지 적체현상 ‘심각’=겨울대파 재배면적이 지난해와 비슷한 가운데, 3.3㎡(1평)당 수확량은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평년 수준인 12㎏(1㎏x12단)을 밑돌 것으로 전망됐다. 잇따른 태풍과 가을장마로 작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2월 들어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단수가 평년 수준을 크게 웃돌고 있다. 농협은 전남지역 겨울대파 생산량을 평년 대비 11% 많은 12만5000t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보다 작황이 더 좋아지면 실제 생산량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생산량 증가로 인한 물량 적체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겨울대파 주산지인 진도만 하더라도 20일 기준 평년 출하량(1만t)의 40%에도 못 미치는 약 3600t(농협 계약분 포함)만 출하했다.
김세훈 서진도농협 경제상무는 “현 추세대로라면 4월까지 모두 1402t을 출하할 예정인데, 이는 전체 계약물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서 “시장가격이 너무 낮아 밭떼기거래도 할 수 없어 출하율을 높일 방안이 없다”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실제로 진도 일대에선 밭떼기거래가 거의 끊긴 상황이라 수확현장을 찾기조차 쉽지 않았다. 농민 김영화씨(62·지산면)는 “진도지역 대파 손익분기점이 3.3㎡당 8000원이라 보통 밭떼기거래 가격도 8000~1만원선인데, 현재 제시되는 가격은 3000~5000원”이라며 “막심한 손해를 보고 팔 수 없어 밭떼기거래가 거의 끊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신안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호용 임자농협 전무는 “임자면의 (3.3㎡당) 밭떼기거래 시세는 보통 1만~1만2000원인데, 최근 한농가가 5000원짜리 거래에 응했다”면서 “이미 겨울대파값이 폭락세로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설 앞두고도 가격 하락세=설 대목임에도 시장가격은 하락세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대파 상품 1㎏당 평균 경락값은 연초 1400원대로 시작했지만 20일엔 908원까지 주저앉았다. 평년 동월 대비 46%, 지난해 대비 28% 낮은 값이다. 시세가 낮다보니 밭떼기거래는 당분간 활기를 띠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전광열 전국대파유통인연합회장은 “포장·운송 등 출하비만 1㎏당 700~800원이 드는데 상품이 900원대면 남는 게 없다”면서 “1㎏당 최소 1500원은 나와야 밭떼기거래가 활기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세가 반등하기란 쉽지 않아보인다. 명절 이후 수요가 늘어날 요인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최윤준 대아청과 경매사는 “일반적으로 명절 이후에는 소비가 급격히 줄어 가격이 떨어지기 마련”이라면서 “올해는 산지 대기물량까지 많아 가격폭락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진단했다.
◆수급조절은 ‘속도전’=산지와 도매시장에선 시장격리·산지폐기 등 정부와 지자체의 선제적 수급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현 상황을 방치하면 설 이후 수급조절 매뉴얼상 ‘하락 심각’ 단계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하락 심각’ 단계의 가격기준은 1월엔 850원, 2월엔 1024원이다.
복수의 산지 관계자들은 “2월 이후 출하량이 급증해 가격이 바닥을 찍고 나면 시장격리·산지폐기 등 어떤 대책을 내놔도 가격지지가 어렵다”면서 “수급조절이 ‘속도전’인 만큼 설이 끝나자마자 대책을 펼쳐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채소가격안정제 계약물량만으론 효과적인 수급조절이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신안·진도 지역의 채소가격안정제 계약물량(690㏊) 중 절반을 산지폐기해도 전체 물량의 10%에도 못 미쳐서다. 주산지 관계자들은 농림축산식품부나 전남도가 최소한 700㏊를 산지폐기해야 가격지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