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 자금력·정보 파악 한계
80% 이상이 포전계약 거래
무·배추 생산구조 제대로 알고
소비자 인식 개선 시급
일부에서 제기하는 중간 상인들이 큰 폭의 마진을 취한다는 얘기는 배추와 무의 생산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일이다. 초열대야 현상까지 나타난 지난 2일 밤 고랭지 산지의 작업 현장에선 이런 잘못된 인식을 개선해야 정부 정책이나 소비자 인식도 바뀔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해가 지기 시작하자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고랭지배추 농가들은 야간작업을 위해 밭으로 모여들었다. 햇볕이 뜨거운 낮에 무 배추밭에 물을 주면 식물 잎에 떨어진 물이 뜨거워지면서 작물이 피해를 입기 때문에 밤에 작업을 하는 것이다.
무 16만9000㎡, 배추 3만3500㎡를 경작하는 이정상 씨는 6명의 내외국인 근로자와 함께 14대의 양수기를 설치하고 스프링클러를 이용해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작업을 했다. 이들의 밤샘작업은 90분 단위로 양수기에 급유하고, 스프링클러를 이동시키고, 과열로 고장 난 양수기를 고치고, 물 호수가 터지면 수리 하는 것이다. 야간 물주기 작업은 적어도 2∼3일에 한 번씩 해야 하며 1회 비용은 인건비와 유류비 등으로 150만원 정도 들어간다.
같은 시간 강릉시 왕산면 안반데기 배추밭에서 박모 씨는 조금 다르게 물주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 물이 없어 1만6000ℓ 물탱크가 장착된 트럭을 이용해 7km 떨어진 곳에서 물을 운반하고 다시 이곳에서 양수기를 이용해 밭에 뿌렸다. 작업비가 2배로 들어간다.
뜻밖에도 이날 야간작업을 실시하는 무와 배추밭 주인들은 이정상 씨와 박 씨를 포함해 80% 정도가 농사와 유통을 같이하는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소속 유통인들이었다. 한 여름에 공급되는 무·배추의 90%를 차지하는 강원도 고랭지채소 농업의 특징은 현장에서 농지를 소유하거나 임대한 농업인들이 봄부터 모종과 밭갈이작업을 해 밭에 모종을 옮겨 심은 후 20일을 전후해 80% 정도가 포전매매형식으로 중간 상인으로 불리는 유통인들에게 매매되기 때문이다. 매매 이후에 물을 주고, 약을 치고, 영양제를 공급하는 등 모든 작업을 포함해 마지막 수확해 도매시장에 출하하는 것까지 유통인들이 실시한다.
정식 후 17일된 배추밭 1만4200㎡를 유통인에게 매매한 진부면 이웅재 씨는 “현실적으로 자금력과 시장정보를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는 농업인들이 무 배추를 끝까지 생산해 출하하는 위험을 감수하기는 어렵다”며 “농가들은 정식 후 일정한 가격이 형성되면 유통인들에게 넘기고 당귀와 고추 등 다른 농사에 전념한다”고 설명했다.
백현길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장은 “고랭지채소 농업의 이런 이중적 구조 때문에 가뭄이나 폭염대책이 무와 배추로 효율적으로 투입되지 못하는 맹점이 있고, 일부에선 유통인들이 마진을 많이 받는다는 오해도 생긴다”며 “정책당국은 현장의 이런 문제들을 파악해 안정적이고 근원적인 수급대책을 세워야 생산자와 소비자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