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청 ‘직접생산확인증명서’ 발급 중단…농협 김치가공공장 직격탄
관련법 근거조항 일몰 이유로 재계약 필수 증명서 발급 안해
20년 채소 거래하던 계약농가 납품물량 4만㎏→1만㎏으로 학교급식만 ‘320억’ 피해예상
농협 “중소기업 인정” 요구에 중기청 “관련법 개정하라” 고집 피해 고스란히 농민이 떠안아
지역농협 가공공장이 국가 등 공공기관과 농산물 납품계약을 하려면 반드시 ‘직접생산확인증명서’가 필요한데 중소기업청(이하 중기청)이 증명서 발급을 거부하면서 우려했던 농가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다.
중기청은 2016년 1월부터 지역농협에 직접생산확인증명서를 발급하지 않고 있다. 특별법으로 설립된 법인이 직접 생산한 물품을 정부와 수의계약으로 납품할 수 있는 근거조항이 2015년 말 일몰돼 폐지됐다는 이유에서다. 직접생산확인증명서는 학교급식이나 군급식 입찰 등록 때 필수 서류다.
중기청의 이같은 조치가 학교급식용 김치를 공급하는 지역농협 김치공장의 납품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 뒤늦게 알려지면서 김치공장은 물론 채소류를 계약재배하는 농민들이 강력 반발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본지 확인 결과 전국 지역농협 김치공장의 납품계약은 대부분 올 4~6월 만료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계약이 만료돼 납품연장을 하려던 지역농협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무엇보다 기한이 갱신된 직접생산확인증명서가 필요한데, 갱신 증명서가 없어 계약 연장은커녕 입찰 자체도 응할 수 없는 처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기청이 대승적으로 중소기업 인정범위에 지역농협을 포함하거나 관련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는 이유다.
◆억울한 김치공장 계약재배 농가=“20년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농협 김치공장과 계약재배를 해왔어요. 그런데 1년 새 납품 물량이 대폭 줄었어요. 왜 그런가 했죠.”
경기 파주시 적성면에서 시설하우스 1만3200㎡(4000평)를 운영하는 박희호씨(60). 농장 인근 경기농협식품조합공동사업법인(이하 경기식품조공법인) 김치공장에 21년째 계약재배로 채소류를 공급 중이다. 김치 재료인 배추·열무·총각무를 농협과 적정가격에 계약재배해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계약물량이 크게 줄어 농장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재료 기준으로 매년 4만㎏을 납품하던 계약물량이 올해 1만㎏으로 감소해 소득이 줄어든 데다 작목전환에 따른 경영비는 더 늘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김치공장에서 공급하던 군납이 중단돼 계약물량을 어쩔 수 없이 줄였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물량이 줄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작목을 상추로 돌렸으나 판로가 마땅치 않아 빚만 더 늘어났다”고 토로했다.
박씨와 함께 김치공장과 채소류를 계약재배하던 40여농가의 사정도 비슷하다. 지역농협 관계자는 “수십년 동안 채소류만 주로 재배하던 농가들에게 작목전환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서승일 경기식품조공법인 부장은 “중기청의 규제로 단체급식이 막히는 바람에 사회에서 가장 경제적 약자인 농민이 피해를 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경기 파주·연천은 군사 접경지역지원특별법 수혜지역인데, 이곳에서 생산한 농산물로 만든 김치를 군부대에 납품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농협 김치공장 피해 확산 우려=경기식품조공법인과 마찬가지로 학교급식이나 군납으로 김치를 공급하는 지역농협 김치공장은 12곳이다.
학교급식 김치의 경우 지방자치단체 등은 경쟁입찰을 통해 김치공장과 납품계약을 맺는데, 계약기간은 보통 2년이다. 전국 12개 농협 김치공장은 지난해 기준 2000개 학교에 320억원가량의 김치를 공급하고 있다. 이는 전체 농협 김치공장 매출의 30%에 해당한다.
이들 김치공장의 납품계약 기간이 올 상반기 대부분 만료됨에 따라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지자체 경쟁입찰 공고를 접하고 서류를 갖추는 과정에서 지난해부터 지역농협 김치공장에 직접생산확인증명서를 발급하지 않고 있다는 통보를 중기청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대리점을 통해 서울 북부지역 초등학교에 학교급식 김치를 공급하고 있는 한 농협 김치공장 관계자는 “이달 말로 납품계약이 종료돼 계약연장을 하기 위해 서류를 제출했지만, 직접생산확인증명서 갱신이 안돼 있어 불안하다”고 걱정했다.
구청에서 직접생산확인증명서로 발목을 잡으면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는 탓이다. 특히 경북·전북·전남·충남 등에 있는 농협 김치공장들도 6월 말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어 파장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조현종 농협경제지주 식품사업부 팀장은 “국내 농산물을 활용해 김치를 생산하는 지역농협 특성상 단체급식이 중단되면 계약재배 농가들의 경제적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농협 김치공장 역시 학교·군급식 등 공공기관 매출이 줄면 생산성이 낮아지고 원가부담은 늘어 김치사업 경쟁력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김치공장과 더불어 중기청이 다른 가공농산물을 단체급식용으로 공급하는 농협 가공공장에 직접생산확인증명서 발급을 거부할 경우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안은 없나=중기청이 기존과 같이 지역농협 김치공장을 중소기업으로 인정해 직접생산확인증명서를 발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관련법인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판로지원법)’ 제33조 제1항 1호에 따라 농협을 중소기업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판로지원법 제1항(특별법인 중소기업 간주)인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7조의 단서에 해당하는 법인·단체에 ‘농업협동조합 등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법인’이 언급돼 있다.
하지만 중기청이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중기청은 2015년 국가계약법상 수의계약 대상자에서 특별법인이 제외된 만큼 ‘다른 법률에서 수의계약 대상자로 정한 경우’의 사업자만 중소기업으로 간주하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결국 농협 김치공장이 기존과 같이 공공기관 등에 납품을 원한다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나 판로지원법·농협법 등을 개정하라는 것이다.
이런 논란으로 농협 김치공장과 농가 피해가 발생함에 따라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안산상록을)이 6일 농협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상태다.
농협경제지주 관계자는 “중기청이 중소기업 인정범위에 농협 김치공장을 포함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법률 개정에 들어가면 통과시기를 가늠할 수 없어 그 사이 피해를 농민들이 모두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윤영문 경기식품조공법인 팀장은 “1996년 10개 학교에 급식을 시작한 우리 법인은 현재 1000여개 학교에 김치를 공급하고 있다”며 “20년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판”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김치공장에 문제가 발생하면 관련품목 수급불안은 물론 농가 유휴인력인 800여명의 일자리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주=성홍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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