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한국은행 발표 ‘2월 생산자물가’ 대표 상승사례로 꼽아
쌀·딸기 등은 1월보다 떨어져 청양고추는 평년값 절반도 안돼
생산량 증가에 소비부진 겹쳐 분산출하 등 유통 다각화 시급
농축산물 가격이 올라 장바구니에 담기가 무섭다는데 사실일까. 많은 언론들은 2월 생산자물가지수가 1월보다 0.3% 상승했다는 한국은행의 20일 발표내용을 보도하면서 농축산물 가격상승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생산자물가지수를 구성하는 5개 부문 가운데 농림수산품이 2% 상승해 가장 높았다. 닭고기 48.2%, 쇠고기 4.8% 등 전체 축산물이 5.7%, 공급량이 감소한 감귤 94.2%, 수박 38.6% 등 농산물은 0.8%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생산자물가지수는 국내생산자가 시장에 공급하는 상품 및 서비스의 가격변동을 측정하는 통계로, 대개 1~3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농림수산품의 조사대상은 도매시장 경락가격 또는 유통가격이다.
수치상으로는 농축산물이 마치 지수 상승을 견인한 것처럼 나왔는데, 한발 더 들어가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나 구제역 발생으로 축산물 가격이 대폭 오른 게 표면적인 원인이긴 하지만, 조사대상 가운데 상당수 농산물은 오히려 1월보다 하락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쌀 11.3%를 비롯해 딸기 28.8%, 건고추 22.5%, 인삼은 24.7%나 떨어졌다.
이달 들어서도 농산물 가격하락세는 계속되고 있다. 가격이 사상 최저수준으로 폭락한 청양고추가 대표적이다. 주산지인 경남 밀양·진주·창원·창녕 등지에서는 15일부터 20일까지 140t(약 3억원 상당)을 폐기처분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가격회복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21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청양고추 10㎏들이 상품 한상자는 산지폐기 직전인 3월 초순 평균가격(2만9514원)보다 낮은 2만5969원에 거래됐다. 평년가격인 6만1921원에는 한참 못 미친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이하 공사)에 따르면 이날 가락시장 주요 거래품목 20개 가운데 13개의 가격이 지난해 7일(3월15~21일) 평균가격보다 떨어졌다. 과채류의 하락폭은 더 컸다. 애호박(20개들이 상품)은 1만2506원에 거래돼 지난해 2만5104원의 절반에 그쳤다. 토마토(5㎏들이 상품)는 9854원으로 전년 1만6527원의 60%, <백다다기> 오이(50개들이 상품)는 1만5511원으로 전년 2만5356원의 61% 수준에 머물렀다.
박영주 농협가락공판장 경매사는 “올겨울 포근한 날씨 탓에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가격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출하량이 늘어난 것 못지않게 경기침체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서 ‘덜 먹고 덜 쓰자’는 소비부진이 농산물 가격하락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시춘 농협경제지주 청과사업국 채소부장은 “생산량이 늘어난 게 가장 큰 원인”이라면서 “하지만 가격이 많이 내려갔음에도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줄었다”고 말했다.
남종식 이마트 신선식품 담당 과장은“최근 시세에 영향을 받아 판매단가가 낮아졌지만 과채류의 판매량이 전반적으로 줄어 지난해보다 25% 정도 매출이 감소했다”고 얘기했다. 그는 “매출은 가격과 판매량의 영향을 받는데 현재 둘 다 부진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홍은정 농협유통 하나로마트 서울 창동점 대리도 “대형 유통업체와 마찬가지로 매출이 전년보다 12~13% 감소한 상황”이라며 “할인행사를 해도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산지에서는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영향에 따른 외식업 위축으로 소비부진이 장기화되면 결국 농가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남 진주에서 애호박을 재배하는 윤연식씨(58)는 “생산량이 늘어난 데 비해 가격하락으로 인건비만 겨우 건지는 수준”이라며 “가격이 더 떨어지면 산지폐기를 고려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는 만큼 정부나 농협이 분산출하가 가능하도록 다각적인 유통 방안을 강구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김동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