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원 칼럼] 한·중 마늘협상 교훈과 한·미 관세협상
농민신문 칼럼=이준원 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2025. 9. 1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산 농축산물 시장 개방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짐에 따라 양국간 관세협상은 7월말 나온 통상당국간 합의 기본 틀이 유지되게 됐다. 하지만 공식 선언문이나 합의문이 보이지 않아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 논란이 재연될까 걱정이다.
이럴 때 참고가 될까 해서 2000년 한·중 마늘 협상의 교훈을 공유해본다. 마늘 분쟁은 중국산 마늘 수입이 급증하자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한국이 조치한 세이프가드(safeguard)로서 2000년 6월부터 3년간 긴급 관세(냉동·초산조제 마늘 30%→315%)를 부과하며 시작됐다.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중국은 6월7일부터 한국산 휴대용 무선전화기 및 폴리에틸렌 수입을 금지시켰다. 당시 중국은 WTO 회원국이 아니라는 핑계로 이같은 과도한 조치를 취했다.
정부는 국익을 이유로 분쟁의 조기 해결에 나섰다. 당시 중국산 마늘 수입은 약 900만달러, 한국의 무선전화기 및 폴리에틸렌 중국 수출규모는 5억달러 수준으로 수출액이 50배 이상 컸다. 한·중 마늘 협상은 2000년 6월29일 시작해 7월15일 타결됐다. 협상 결과 한국은 저율관세가 적용되는 중국산 마늘의 수입 쿼터를 확대하고, 세이프가드 적용 기간도 2002년말까지 단축하기로 했다. 중국은 한국산 제품의 수입 중단 조치를 풀기로 했다.
그런데 농협이 2002년 6월 무역위원회에 세이프가드 4년 연장을 신청하자 정부는 연장 불가를 확인해줬다. 농업계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비로소 존재가 확인된 부속서한에는 “2003년 1월1일부터 한국 기업은 (냉동·초산조제 마늘을) 자유로이 수입할 수 있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문제는 이 문구의 의미가 세이프가드 조치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구두로 합의한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마늘 협상에선 우리 수출업체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속한 협상 타결이 최우선 과제였다. 그런데 부처간 합의가 어렵게 되자 수석대표가 궁여지책으로 부속서한을 써주고 구두로 약속한 것이다.
한·중 마늘 협상으로 얻은 교훈은 먼저 모든 협상 결과는 공개하고 그 내용에 대해 이해당사자와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늘 협상 타결 시 발표한 합의서에는 부속서한의 존재 유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더군다나 부속서한 어디에도 연장 불가라는 표현이 없어 누구도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없었다. 또한 구두로 연장 불가를 약속하면서 농림부의 협의나 농민단체에 설명 절차도 없었다. 이번 한·미 관세협상 역시 합의서가 없다고 한다. 한·중 마늘 협상 사례에서 보듯이 구두 합의도 중요하므로 있다면 국민에게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협상 과정에서 주무부처가 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한·중 마늘 협상은 조속한 타결을 명분으로 당시 청와대와 외교통상부가 주도했다. 실제 최종 합의는 수석대표간의 수차례 단독 회담에서 타결됐다. 그런데 나중에 문제가 되자 농림부가 부속서한의 의미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문책 인사를 당했다. 그런 만큼 정책 결정자는 부담되는 결정을 하급자나 후임자에게 미루지 말고 현직에 있을 때 결단해야 한다. 한·중 마늘 분쟁이 국가적 통상 과제임에도 정책 결정자가 부처간 이견을 조정하지 못하고 수석대표에게 조속한 타결만 강조해 마늘 협상 파문을 초래한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한·중 마늘 협상이 한·미 관세협상에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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