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서 2579㎡(780평) 규모로 오이를 재배하는 이우창씨(66)가 고온장해로 성장하지 못한 오이를 가리키고 있다.
* 햇볕데임 피해를 본 단감(왼쪽)과 사과
과수·시설채소 수확량 반토막
아주심기 새로 하는 농가 속출
생산비 급증 불구 소득 줄어
“고온 견디는 신품종 개발 시급”
천안=김민지, 영암=이시내, 진주=박하늘, 밀양·김해=이선호, 포천·양주=오현식, 청주=황송민 기자
처서가 지나고도 이어지는 폭염에 농작물 고온장해가 확산하고 있다. 오이·애호박 같은 시설작물부터 가을배추까지 채소는 물론, 단감·사과 등 과수도 폭염 피해를 보고 있다.
◆ 안 자라고 말라 죽고=오이농가 사이에서 7월말 아주심기(정식)를 한 오이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한여름에도 30℃ 내외를 유지해야 줄기가 과생장하지 않아 마디마다 정상과가 달리는데, 연일 35℃를 웃도는 폭염 탓에 영양 불균형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에서 2579㎡(780평) 규모로 오이를 재배하는 이우창씨(66)는 “오이는 한 줄기에 정상과가 8개는 나와야 하지만, 고온장해로 4∼5개밖에 수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설하우스 3966㎡(1200평)에서 ‘백다다기’ 오이를 생산하는 양윤걸씨(60·경기 포천)도 “낮에는 폭염, 밤에는 열대야로 과육 비대가 불량하고 수꽃이 많이 핀다”면서 “생산량이 예년에 비해 절반 정도 줄었다”고 했다.
애호박농가도 어려움은 마찬가지다. 이상대 경기 양주 은현농협 애호박공선출하회장은 “과육 비대가 저조하고 표면이 울퉁불퉁한 하품이 예년보다 두배 정도 늘어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부산지역 시설화훼농가들도 폭염으로 배지온도가 올라 제대로 된 색택이 나오지 않고 봉오리 크기도 예년보다 작아 최대 수출 성수기인 8월을 통으로 날렸다고 토로하고 있다.
◆ 재정식부터 여름작기 포기까지=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로 아주심기를 하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병천면에서 2479㎡(750평) 규모로 오이농사를 짓는 임종한씨(40)는 기형과·낙과 피해가 심해 8월말 수확하려던 오이를 다 뽑아내고 최근 새로 심었다. 임씨는 “이제 여름에 오이를 재배할 수 없는 환경이 된 것 같다”며 “한 작기를 거르면 생산비는 계속 투입되는데 소득은 줄어드니 큰일”이라고 했다.
충북 청주에서는 8월말 정식한 가을배추 모종이 말라 죽는 바람에 모종을 새로 심는 사태가 벌어졌다.
최영회씨(66·청주시 상당구 미원면)는 “한낮 온도가 36℃면 실제 배추밭은 복사열로 40℃에 육박한다”며 “배추 모종 800포기를 심었는데, 폭염에 말라 죽어 250포기 정도를 새로 심었다”고 했다.
◆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햇볕데임 피해=지역 곳곳의 과수농가에서는 햇볕데임(일소)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남 진주시 문산읍에서 4만2975㎡(1만3000평) 규모로 단감농사를 짓는 김겸천씨(63)는 “6월부터 낮 기온이 30℃를 넘으면서 일소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9월 중순이 마지막 비대기인데 지금과 같이 고온이 이어진다면 과실이 제대로 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진주문산농협은 지역 내 단감 햇볕데임 피해율이 지난해(15∼20%)보다 높은 25∼30%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전남 영암에서는 대봉감농가가 큰 피해를 봤다. 금정농협에 따르면 농작물재해보험 햇볕데임 피해 접수 건수는 8월26일 기준 300건에 달한다. 28일부터 현장 조사에 나선 김대권 손해평가인은 “10농가를 조사한 결과 농가별 피해율은 5∼20%”라며 “햇볕데임으로 생장이 멈추거나 심한 경우 괴사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6만6115㎡(2만평) 규모로 대봉감농사를 짓는 정철씨(60)는 “햇볕데임 피해를 본 대봉감은 3∼4일 내로 낙과한다”며 “수확까지 두달이나 남았는데 그때까지 제대로 된 열매가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경남 밀양에선 사과농가가 타격을 입었다. 밀양시 산내면에서 9917㎡(3000평) 규모로 사과농사를 짓는 유윤준씨(63)는 “8월말에도 35℃를 넘는 폭염이 이어져 일소과가 예년보다 30%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더 큰 걱정은 햇볕데임 피해가 탄저병 확산으로 이어질 위험이다. 갈변돼 물러진 껍질을 통해 병균이 침입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유씨는 “햇볕데임 피해를 본 사과 대부분이 우듬지에 위치해 탄저병이 발생하면 짓물러 떨어지는 진액을 타고 아래쪽 사과까지 번질 수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농가들은 갈수록 농사짓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양씨는 “영양제와 착과제를 공급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면서 “하루빨리 고온에 강한 신품종을 육성·보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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