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여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용자 대기업 나와라"…노란봉투법에 줄짓는 하청노조 교섭 요구
SBS뉴스 하정연 기자 2025. 8. 28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지난 24일 여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하자 하청업체 노조들의 대기업을 향한 요구가 벌써 빗발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에 대한 모호한 규정으로 직접 계약 관계가 없는 하청업체도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에 근거해 하청업체들이 다양한 요구사항을 들어 교섭을 요구하면서 대기업들은 전에 없던 혼란에 직면한 모습입니다.
20일 재계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협력업체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재정의했습니다.
이러한 모호한 규정은 원청과 직접적인 계약을 맺지 않은 하청업체도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거나 파업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여기에다 노란봉투법은 불법 파업 등 쟁의행위로 손해가 발생했을 때 손해배상 책임을 파업 참가자의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산정하도록 했습니다.
사실상 기업이 불법행위를 한 노조 개인에 대한 손배소를 할 수 없도록 한 셈입니다.
이러한 규정을 근거로 하청 노조가 원청에 임금·복지 등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사례가 전 산업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조과정에서 적게는 수백 개, 많게는 수천 개의 하청업체가 관여하는 반도체나 자동차, 조선, 철강 등의 산업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협력사인 이앤에스 노조는 통상임금 지급 문제로 사측과 갈등을 빚던 중 지난 6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가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들은 최근에는 임금 체불 문제까지 삼성전자가 나서라며 요구 범위를 넓혔습니다.
현대제철 하청업체 근로자로 구성된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이날 국회 앞에서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합니다.
현대제철 하청 노조는 이 자리에서 현대제철 측에 직접 교섭, 손해배상 청구 철회를 촉구할 예정입니다.
국회에는 현대제철 경영진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라고 요구할 계획입니다.
이상규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장은 "현대제철이 사용자임에도 (교섭에) 나오지 않는 내용을 알리고, 추후 기업들이 법을 안 지키고 시간을 끌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경각심을 일으키는 내용으로 투쟁을 선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네이버 산하 6개 자회사 노조도 원청인 네이버에 직접 교섭을 요구하는 집회를 오는 27일 경기 성남 네이버 본사 앞에서 엽니다.
국내 주요 조선소 사업장 노조로 구성된 조선업종노조연대는 지난달 HD현대·한화오션 등 원청에 공동 교섭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고용, 임금, 휴가 등 원청과 맺지 않은 근로계약의 개선을 요구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SK그룹 관계사인 SK에코플랜트가 짓고 있는 청주 공장과 관련, SK에코플랜트 협력사에서 해고된 노조원들로부터 부당해고를 해결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는 롯데쇼핑·신세계·현대백화점 등 원청 기업이 교섭 의무를 지는 사용자에 해당한다며 업무 전가와 휴일 도입 등 문제를 직접 해결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내 산업 분야 중 하청업체 비율이 높은 건설업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건설업계는 아직 구체적인 사례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하도급업체 근로자들이 원청인 대기업 시공사 등에 직접 교섭을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상시적으로 하도급업체가 특정 업무를 전담하는 제조업과 달리 건설업은 공사 건별로 기간과 작업 내용을 명확히 정해두고 하도급 계약을 맺는 방식이어서 특수성이 있다는 게 업계 설명입니다.
지금까지는 공사 기간에 하도급업체에서 임금체불이나 해고 등 노무 현안이 불거져도 원청이 직접 개입하는 것이 하도급업체에 대한 경영 간섭에 해당해 원청으로서는 하도급업체에 원만한 문제 해결을 주문하는 ''협조 요청'' 수준으로밖에 대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하도급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문제 해결을 원청에 직접 요구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건설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하도급업체 자체적으로 노조가 없더라도 소속 근로자들이 양대노총 건설노조 소속인 경우가 많아 원청을 상대로 조직적 집단행동 등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하청 노조의 요구에 원청업체에 해당하는 대기업들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한 자동차업체 관계자는 "법 자체가 모호해 대응하려고 해도 대응을 할 수 없는데 하청노조들은 이것저것 요구할 조짐을 보인다"며 "최소한 사용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려줘야 한다"고 요청했습니다.
노란봉투법이 오히려 하청업체 환경을 악화해 노동자들에게 타격을 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일부 하청업체가 파업에 나서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다른 하청업체가 피해를 본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현대차그룹의 핵심 부품 계열사인 현대트랜시스 노조가 한 달 가까이 파업을 이어가자 협력사 수백 곳이 경영 위기를 호소하며 파업 중단을 촉구한 것이 대표적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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