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유통가격 인식 부족… 농민 주름살
“배추값이 오르면서 소비자 물가 상승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최근 배추값이 오르면서 각 매체에서 심심찮게 접하는 기사다. 전남 해남에서 농사를 짓는 박모(61) 씨는 최근 이 같은 뉴스를 볼 때마다 속이 탄다.
지난해 배추 한 포기당 경매가가 1000원도 안 된 탓에 인건비도 못 건지고 자식 같은 배추를 대부분 갈아엎어야 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더욱 화가 치민다. ‘아니 커피값 수준, 그것도 도시 소비자들은 팔아 주지도 않는데…’하는 게 박 씨의 속마음이다.
농산물 유통 구조에 대한 무지로 농심(農心)이 아프기만 하다. 국민 먹거리 가격 안정이라는 대의에 묶여 값이 조금만 올라도 여론이 들끓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여기에는 적지 않은 오해가 끼어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일부 여론의 지적보다 미미하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1·2·3차를 융합한 ‘6차 산업’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농업의 발전을 위해 유통 가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22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3월 초순의 배추 한 포기 가격은 3507원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581원에서 배 이상으로 비싼 가격이다. 지난 2014년 배추가격은 906원이었다. 이에 언론은 이 같은 배추값 변화를 보도하며 “소비자 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농산물 유통전문가들은 올 1월 하순 예기치 못한 폭설, 한파 등 기상이변에 따라 배추는 물론 무 등 노지 채소 공급량이 감소하면서 가격이 오른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가격 상승을 지적하기에 앞서 배추의 연간 소비와 유통 가격의 변화를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통상 배추, 무 등 주요 채소류는 3·4월이면 생산이 중단된다. 전년도 겨울에 생산해 저장됐던 배추가 시장에 나온다. 실제 그동안 배추의 연간 월평균 가격을 보면 1월 포기당 1808원이었던 것이 2월에는 1929원으로 오르고, 3월에는 2367원으로 절정에 올랐다가 4월 2150원, 5월에는 1498원으로 하강 곡선을 그린다.
물론 지난 1월의 기상이변으로 인해 가격이 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농업인 처지에서 보면, 이는 최근 몇 년간 계속된 가격 하락으로 인한 적자 경영을 겨우 면하는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배추 소비자물가지수는 2010년 100을 기준으로 했을 때 2월 현재 70% 수준이다. 올해 가격이 올랐다고 해도 2010년보다 30% 가격이 내려갔다는 의미다. 전체 물가지수에서 배추가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불과하다. 무는 0.8%로 더 작다. 무는 지난 2010년보다 25% 가격이 내려간 상황이다.
배추나 무를 도시민들 소비 비중이 높은 커피에 비교하면 농심을 더 이해할 수 있다. 올 2월 현재 커피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12.2다. 이는 2010년보다 12.2% 올랐다는 의미다. 최근 저가 커피 판매점이 늘고 있지만, 커피 원액을 물에 타 마시는 아메리카노 한 잔은 아무리 싸도 2000∼5000원이다. 3·4월 도시 가구의 배추 소비 지출액은 6000원 수준이다.
농산물 유통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최근 직접 김치를 담가 먹는 이들이 줄면서 도시민들의 신선 배추 소비가 크게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2012년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의 신선 배추 매출은 9억9500만 원이었지만 2015년에는 6억800만 원으로 줄었다. 반면 가공식품 김치 매출은 2012년 12억700만 원에서 2015년 10억7500만 원으로 상대적으로 감소 폭이 작다. 가공식품 김치 가격은 현재 3년째 동결돼 있는 상태다.
박 씨는 최근 농산물 유관 단체 관리자를 만나 호소했다. 그는 “농업인의 비중이 5%에 불과하고 선거철이 목전이니 서민물가 운운하는 것을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비수가 돼 돌아온다”며 “적어도 이상 기후에 따른 농산물 가격 변동에 대해서는 물가 당국은 물론 소비자의 넓은 아량이 필요하다. 우리 농민은 물론 극소수를 제외한 농산물 유통인들도 각자 제 역할을 다 하면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억지는 또 다른 억지를 낳기 마련이다”고 지적했다.
농산물 유통 분야의 한 관계자는 “농업이 6차 산업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유통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의 올바른 이해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선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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