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안동시 길안면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정진용씨가 3월말 초대형 산불로 불타버린 과원의 나무를 뽑아낸 후 새로 심은 고추를 바라보고 있다. 정씨는 내년 봄 이 밭에 사과나무를 새로 심을 예정이지만 묘목값이 들썩이면서 걱정이 커졌다.
경북 과원 1800㏊ 피해 발생
선호품종·다축묘목 확보 애로
올봄보다 가격 20% 이상 올라
일부업체, 웃돈 요구 ‘배짱영업’
“거래 기준 등 제도 마련하고
포트묘목 재해보험 대상 포함을”
농민신문 안동=유건연 기자 2025. 8. 21
국내 사과 최대 주산지 경북 의성·안동·청송·영덕·영양 5개 시·군에 3월말 초대형 산불이 덮치면서 과원 1800여㏊에 직간접 피해가 발생해 묘목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사과 묘목시장이 과열되는 양상이다.
산불로 어린 사과나무 100여그루가 불탄 하관호씨(68·안동시 길안면 천지리)는 “일부 묘목 업체에선 계약금에 웃돈을 요구하기도 하고, 아예 주문받지 않는 배짱 영업을 하기도 한다”면서 “산불 피해로 힘든 농가를 두번 울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농가들이 선호하는 특정 품종이나 최근 농가 관심이 집중되는 다축 묘목 같은 경우 부르는 게 값이라는 소문이 들린다”고 덧붙였다.
농가들은 품종에 따라 1만5000∼1만8000원 하던 것이 최근 2만원(자근 특묘 기준)을 훌쩍 넘어섰고, 이마저도 주문을 선뜻 받아주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당장 내년 봄 나무를 새로 심기 위해 묘목을 확보해야 하는 농가로선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1만3223㎡(4000평) 규모로 사과농사를 짓는 정진용씨(65·안동시 길안면 대곡리)는 “5월께 묘목 650주를 주문했을 때만 해도 전체 대금의 10%를 계약금으로 지급했는데, 최근 추가로 1200그루를 주문하려 하니 묘목 대금의 50%를 계약금으로 요구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 유실수 묘목 공급 중심지로 꼽히는 경북 경산 묘목 특구에선 사과나무가 올봄보다 20%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묘목 업체 대표는 “9월이 지나야 내년 공급량이 정확히 파악되는 만큼 묘목 상태를 보면서 농가와 계약을 하려다 보니 일시적으로 수요·공급이 맞지 않아 시장 불확실성이 커졌다”면서 “우량묘목을 미리 확보하려는 가수요까지 더해져 시장이 조금 과열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묘목시장이 혼란한 가운데 생산기간을 기존 1년6개월에서 6개월로 단축한 무병 포트묘목이 주목받고 있다. 무병 포트묘목은 토양 오염으로 인한 뿌리 바이러스 감염이 전혀 없는 데다, 한주당 3000원을 정부가 지원해 가격 면에서 매력이 크다. 하지만 포트묘 공급 가능 품종이 국산 개발 품종에 한정되고, 겨울철 언피해 우려 등으로 농가들이 선뜻 선택에 나서지 않는 실정이다.
정씨는 “올해부터 다축묘목(2년생)도 농작물재해보험 대상이 된 만큼 무병 포트묘(1년생)도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면 더 많은 농가가 포트묘목을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농가들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 혼란한 묘목시장 질서를 바로잡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사과농사를 짓는 귀농인 곽성호씨(60·안동시 길안면 금곡리)는 “수요자인 농민보다 묘목 공급업체가 우위에 있는 상황에선 사과농가가 ‘을’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나무 가격 정찰제나 공시제 도입, 가격 담합 단속 등 행정기관이 나서 명확한 묘목 거래 기준과 규칙을 제도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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