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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한 시민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빠진 대전 노은농수산물도매시장 청과물동에서 비어 있는 점포를 바라보며 걷고 있다. (사진=김현수 기자)
* 19일 대전중앙청과㈜ 소속 중도매인들이 기자간담회 이후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김현수 기자)
생존권 위기 맞은 중도매인
‘시장 질서’ 앞세워 정면 충돌
관리사업소 무더기 처분에 시장 기능 마비
정부, 소상공인 살린다며 재정 쏟는 상황에
정작 현장에선 ‘사형선고’
충남일보 김현수 기자 2025. 8. 20
대전 노은농수산물도매시장 청과물동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대전중앙청과㈜ 소속 중도매인 43곳에 대해 관리사업소가 무더기 행정처분을 내린 탓이다. 21곳은 경고, 22곳은 최장 15일의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에 지난 18일부터 문을 닫은 점포가 속출하면서 청과물 시장을 찾는 손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이번 조치는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결과는 시장의 붕괴다. 도매시장 한가운데 점포를 밀어 넣어 놓고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통로·도크 사용을 문제 삼아 ‘영업정지’를 내린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중도매인들은 “영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다수 점포의 문이 닫히면서 노은 청과물시장은 하루아침에 활기를 잃었다.
더 큰 문제는 시기다. 정부는 경기 침체 속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살리기를 외치며 수십조 원의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서는 행정기관이 직접 나서 영세 상인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있다. 점포들이 줄줄이 업무정지에 들어가면서 파장은 시장 안에만 그치지 않고 지역 상권과 소비자 물가, 유통 전반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관리사업소는 “법에 따른 조치”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그 법을 어떻게 적용했는가는 문제다. 과거 회의에서 2파렛트 사용을 허용해 놓고 이제 와서 이를 위반이라며 처벌하는 것은 행정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최소한의 협의나 합리적 대안 없이 ‘일괄 처분’으로 밀어붙인 것은 생존권을 외면한 탁상행정이며 특히 전국의 다른 도매시장들을 살펴봐도 최대 과태료 부과로 영업정지 처분은 찾아보기 힘들어 과도한 행정절차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 사태의 발단, 경매장 구조적 한계
대전 노은농수산물도매시장의 중도매인 갈등은 단순한 규정 위반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18년 점포 배분 과정에서부터 불씨가 있었다. 당시 관리사업소는 중도매인 78명에게 점포를 배분했으나 면적은 최소 9.9㎡에서 최대 45㎡까지 차등 지급됐다. 나머지 26명은 아예 점포를 받지 못했다. 일부 중도매인은 현재도 점포 없이 경매장 한가운데서 잔품을 처리하며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점포가 경매장 중앙에 몰려 있어 물품 적치나 운송이 불가피하게 통로·도크를 점유하게 된다는 점이다. 중도매인들은 “점포 앞 공간을 쓰지 않고서는 영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호소한다. 이 때문에 관리사업소가 ‘외부 공간 사용 금지’를 통보하자 “영업을 중단하라는 것과 같다”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 관리사업소와 중도매인의 줄다리기
대전중앙청과에 따르면 올해 4월 중도매인 대표들은 도크 사용을 최소 2파렛트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고 관리사업소도 이에 동의했다. 주말에는 제한 없이 사용해도 된다는 합의까지 있었다. 그러나 불과 석 달 뒤인 7월 관리사업소는 ‘시장 질서 유지를 위한 합의안’을 제출하라며 중도매인들에게 압박을 가했다. 중도매인 조합은 도크 2파렛트, 통로 정리, 오후 1시 이전 잔품 처리 등을 골자로 한 자율 관리안을 제시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달 17일 중도매인 박 씨에게 1개월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졌고 이후 46명에 대한 무더기 행정처분이 이어졌다.
- 정면충돌한 생존권과 거래 질서
중도매인 측은 “관리사업소가 먼저 2파렛트 사용을 허용해 놓고 이제 와서 처분을 내린 것은 모순”이라며 생존권 침해를 주장한다. 반면 행정당국은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무단 점유는 질서 위반”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쟁점은 ''불가피한 점포 구조를 고려한 생존권 보장''과 ''법적 질서 유지'' 사이의 충돌로 압축된다.
- 향후 전망과 과제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갈등을 넘어 도매시장 운영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먼저 점포 배분 불균형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초기 배분 과정에서 점포조차 받지 못한 중도매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제도적 허점으로 보인다. 또 운영 규정의 모호성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관리사업소가 상황에 따라 허용과 금지를 번복하면서 불신은 더욱 커졌다. 여기에 중도매인의 자율적 질서 유지안이 실제 제도화되지 못하고 ‘행정 편의적’ 판단에 묻힌 것도 갈등을 증폭시켰다. 향후 대전시와 관리사업소가 중도매인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법적 소송과 추가적인 집단행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시장 내 통로·도크 점유 여부를 넘어 ''생존권과 공공질서''라는 두 가치의 충돌을 보여준다. 행정당국은 법과 규정을 앞세우지만, 중도매인들의 목소리는 구조적 불합리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본능적 발버둥이다. 시장이 개점휴업 상태로 치닫는 상황에 대전시는 일방적 처분이 아닌 공정한 협의 시스템과 구조 개선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현실을 망각한 규정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경영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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