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시선] 농업 4법과 ‘관료 농정’의 그림자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2025. 8. 12
“원래 관료란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된다며 온갖 이유로 개혁법안을 지연시키는데 능숙하다.”
“디테일로 경쟁하면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늘공(늘 공무원)에게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어도 구체적 실행방안을 담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이 제대로 수립되지 않으면 개혁의 취지는 퇴색한다.”
지난 2022년 2월초, 한국농어민신문의 대선 연속기획 ‘문재인 정부 농정 5년의 교훈’에서 농정전문가 K 박사가 한 말이다.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농정개혁이 번번이 좌절되고, 결국 관료 주도의 농정이 굳건히 이어지는 현실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그는 “관료들을 움직여 제도 개혁을 추진하려면 관료 이상으로 정책에 대한 전문성을 갖던가, 그게 아니면 차근차근 농업계내 목소리를 모아 합의를 이끌어내고, 그 힘을 등에 업어 ‘정치력’으로 관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권에 입성한 민간 인사들은 물론 정치권과 농민들이 힘을 합쳐야 관료들로부터 농정의 주도권을 찾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재명 정부에서는 이것이 가능할까? ‘국가 책임농정으로의 농정 대전환’을 약속한 이재명 정부에서 양곡법과 농안법 등 농업 4법의 입법은 그 시험대였다.
무엇보다 민주당이 야당 시절 추진했던 원안을 그대로 통과시킬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지난 정부에서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 4법을 ‘농망법’이라 폄훼하고 거부권 행사에 앞장섰기에 더욱 그랬다. 이번에도 자료와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관료들의 논리에 막혀 법안이 왜곡되거나 후퇴하는 것은 아닐까?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교차했다.
결과적으로 새 정부 출범 두 달만인 8월 4일, 농업 4법은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한 쌀값 안정적 보장, 농산물 가격안정제, 재해 국가책임제 등 국가 책임농정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기후위기, 식량위기, 생산비 폭등 등 다중위기 속에서 농정의 국가 책임을 분명히 하고, 최대 현안인 농가경영안정을 제도화한 점은 분명한 진전이다.
그러나 법안 내용은 일부 후퇴했다. 농어업재해보험법은 당초 ‘할증제 폐지’를 기대했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재해에만 할증을 면제해주는 내용으로 수정됐다. 농안법의 경우 가격안정제 기준가격을 ‘평년가격을 기준으로 생산비·수급상황을 고려해 정한다’는 내용에서 ‘평년가격’ 조항이 삭제되면서 당초보다 보전 기준이 낮아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험료 할증제 기준, 쌀 시장격리 발동 기준, 가격안정제 기준가격 등 핵심사항을 시행령으로 넘겨 정부 재량에 맡긴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무엇보다 불길한 것은 ‘관료 농정’의 그림자다. 설마 하던 부분에서 막바지에 관료들의 주장이 관철되는 장면은, 정권을 넘어 반복돼온 관료 농정의 기시감(데자뷰)을 떠오르게 한다.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양곡법 논쟁으로 협치가 사라진 지난 3년간, 농정은 관료들이 주도했고, 농민들과 협의 없이 추진된 일방통행식 정책은 지금 실패로 귀결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논콩과 가루쌀 등 타작물 재배 확대정책이다. 쌀 과잉을 해소하겠다며 강력하게 타작물 재배를 권장해 온 정부는 불과 몇 달 만에 감축으로 정책을 급선회했다. 그것도 타작물재배 대폭 확대를 담은 양곡법을 통과시킨 와중에 일어난 일이다.
정부 정책이 이렇게 조변석개해도 되는가? 정부를 믿고 자금을 들여 농기계를 사고, 타작물재배에 땀 흘린 농민들의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이며, 정책 불신과 혼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물론 농정 대전환은 관료들의 협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정치적 결단으로 법이 제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정책으로 구현하고 집행하는 일은 결국 관료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관료들을 농정개혁의 길로 견인하려면 농정에 대한 대통령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수다. 여기에 국회·농민·시민사회·전문가의 참여, 민간 출신 정부 인사들의 역할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 한정된 시간과 인력으로 관료의 전문성을 뛰어넘기는 어렵기에, 상호간 정보 공유와 긴밀한 소통, 연대로 사안별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관료 농정에 포획되거나 ‘적당한 타협’으로 귀결될 것이다.
농정 개혁은 몇몇의 인물로 가능하지 않다. 골든타임은 이미 흘러가고 있다. 이재명 정부 임기가 농정대전환의 마지막 기회라는 마음으로, 농업계의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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