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전남 담양군 봉산면에서 조길석씨가 침수 피해를 본 시설하우스를 살펴보고 있다. 이곳은 7월에 이어 두번째로 물에 잠겼다.
*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내린 집중호우로 광주·전남 지역이 또다시 침수 피해를 겪었다. 사진은 저수지처럼 물에 잠겨 있는 무안 운남면의 벼 재배지.
[극한호우에 또 농경지 침수]
도움 손길로 겨우 정비했는데
딸기시설 다시 침수돼 한걱정
복구 후 유실 “헛돈 썼다” 허탈
조생종 벼 수발아 피해 우려
중만생종 호흡못해 수량 줄듯
계속된 주민 대피령으로 불안
농민신문 담양=장재혁, 무안=이시내, 산청=박하늘, 고령=최인석 기자 2025. 8. 4
“이제 겨우 좀 정리하나 했더니 다시 물에 잠겨 버렸네요.”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내린 집중호우로 광주광역시와 전남·경북·경남 등지에서 또다시 피해가 발생했다. 시설하우스에 다시 물이 들어차고 논이 또 물에 잠겼다. 전남 무안에선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농민들은 보름 사이에 두번이나 찾아온 극한호우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겨우 복구하나 했는데…”=전남 담양군 봉산면 주민들은 3일 오후 11시 대피방송을 듣고 면사무소로 몸을 피했다가 새벽에야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이날 오후 시간당 80㎜가 넘는 극한호우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딸기농사를 짓는 조길석씨(69)는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수문을 여닫고 물길을 살피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그는 보름 전 폭우로 시설하우스 8동이 물에 잠겨 모종 10만포기를 대부분 폐기하고 시설도 망가지는 피해를 봤다. 이후 국군 장병 60여명의 도움으로 겨우 폐기물을 치우고 복구에 안간힘을 쓰던 차에 이날 다시 시설하우스가 침수됐다.
조씨는 “9월초까지 모종을 정식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다시 시설하우스를 치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모종도 돈을 주고 사야 하는데 한포기당 700~800원 하던 것이 1000원 정도로 올라 복구를 한다 해도 올해 딸기농사는 절반(4동)도 짓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같은 지역에서 고추농사를 짓는 백화숙씨(64)는 7월 폭우 때 침수된 고추를 겨우 살려냈지만 이번에 다시 잠겼다. 백씨는 “뿌리가 강한 접목 모종을 심은 덕분에 지난번 침수 피해를 보고도 잘 자라 이후 약제를 치며 버텼다”며 “물이 빠지면 다시 약제를 치고 복구를 하겠지만 두번이나 침수 피해를 보고 제대로 농사가 될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콩과 쪽파·대파 등에도 피해가 발생했다. 벼와 쪽파 등을 재배하는 김성도씨(55·무안군 운남면)는 “지난달 비 피해로 쪽파를 다시 심고 비닐을 씌웠는데, 이번 호우로 또다시 유실됐다”며 “헛돈 썼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전남농협본부에 따르면 신안지역에서는 대파 170㏊가 유실되거나 매몰됐다.
◆“올해 제대로 수확할 수 있을까”…벼도 걱정=조생종 벼와 일반 벼를 2만5123㎡(7600평) 규모로 재배하는 정기호씨(61·무안군 운남면)는 “이 지역에서 35년간 벼농사를 지었는데 지난밤 같은 비는 처음”이라며 “만조 시기에 단시간 폭우가 쏟아져 인근 저수지가 범람했고, 오후 9시엔 논이 무릎 높이까지 잠겼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인근의 다른 벼농가도 “저지대를 중심으로 벼 일부가 아직 물에 잠겨 있는데, 배수 속도가 더뎌 완전히 물이 빠지기까지 2∼3일은 걸릴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농가는 벼 생육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일반 중만생종 벼의 경우 출수기를 맞아 이삭이 패야 하는 시기인데 침수로 벼가 제대로 호흡하지 못하면 출수가 원활하지 않아 결국 수량이 감소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달부터 수확을 시작하는 조생종 벼는 수발아(穗發芽) 피해가 우려된다.
김씨는 “비가 그치면 다시 폭염이 찾아올 텐데 이 경우 알곡을 맺지 못하고 말라버릴 수 있다”고 걱정했다.
정씨는 “지난달부터 이어진 극한호우와 폭염으로 지친 상태에서 또다시 침수 피해를 겪었다”며 “최악의 경우 올해 수확량이 반토막 날 것 같다”고 토로했다.
◆반복되는 산사태 위험…인명 피해도=3월 산불과 지난달 극한호우로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경남 산청에서는 3일 오후 8시 군내 모든 읍·면에 산사태 경보가 발령되고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이에 산청지역에서 1547명이 117개 대피소로 대피했다. 4일 오전 10시 주민 대피령은 해제됐다.
산청군 시천면 중태마을 이장 손경모씨(67)는 “폭우 소식에 3일 밤늦게 주민들이 모두 대피했다가 4일 오전에 대피령이 해제되면서 집으로 복귀했다”면서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차례 대피 소동을 겪다보니 주민들이 많이 피곤해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생비량면의 한 주민도 “밤새 비가 많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마음 졸이며 잠을 잘 못잤다”면서 “십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이런 일들이 올해 연달아 일어나니 착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경북 고령에서도 주민 대피령이 내려져 10가구 13명이 대피했다. 하지만 단시간에 비가 집중되면서 미처 대피하지 못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고석만씨(75·운수면)는 “오전 2시에 대피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마을회관까지 거리가 멀어 가지 못하고 집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비가 그치기를 바랐다”며 “마당까지 물이 찼지만 다행히 더 들어오지 않고 빠져나가고서야 안심했다”고 말했다.
한편 무안군 현경면에선 60대 남성이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무안소방서에 따르면 이 남성은 시설하우스의 침수를 막기 위해 굴착기 작업을 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3일부터 4일 오전 10시까지 누적강수량은 무안 289.6㎜, 담양 197.0㎜, 경남 산청 20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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