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미(龍頭蛇尾)’도, 그렇다고 ‘사두용미(蛇頭龍尾)’도 아니었다. 조용히 시작됐던 올 추석 대목이 조용히 마무리되고 있다. 늘어난 물량, 계속된 소비침체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낮은 시세로 산지와 시장이 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추석 대목 시장이 매년 축소되고 있다며 분산출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또 산지에서는 물가에만 초점이 맞춰진 정부의 추석 수급대책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21일 기준 가락시장 농산물 표준지수는 75.64p
최근 5년 사이 최저가…해마다 명절수요 감소 직격탄
물가 중심 수급대책 산지 불만·분산출하 목소리 커져
▲ 조용했던 추석 대목=올 추석 대목엔 기대했던 시세 반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5년 내 가장 낮은 시세 흐름을 보인 품목이 대다수였다. 사과와 포도, 배추와 무 등 많은 농산물이 이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실제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주인 지난 21일 가락시장에서의 농산물 표준지수는 75.64p였다. 이는 최근(2010~2014년) 5년 동안의 이 시기 농산물 평균 시세가 100원이었다면 올해는 4분의 1이 빠진 75원이었다는 의미다. 9월 초에 추석이 자리 잡은 지난해와 같이 이 시기 추석 대목이 아니었던 해도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추석 대목치고 너무나 낮은 시세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부류별로 보면 과일류가 81.54p, 채소류가 73.37p로 채소류가 더 좋지 못했다.
올해 추석시장의 경우 물량이 크게 늘어난 영향이 컸다. 생육기 작황이 양호했던 품목이 많았던 데다 추석이 9월말에 자리 잡히면서 각 산지마다 물량이 쏟아져 나왔던 것. 여기에 추석 연휴 전에 좋지 못했던 농산물 시세도 출하시점을 추석 이후까지 끌고 가게 했다. 변영두 농협가락공판장 경매사는 “추석 대목이 늦어 산지가 넓어졌고, 태풍 등 큰 기상이변도 없어 물량이 몰린 품목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수요는 기대만큼 일지 못했다. 무엇보다 관공서와 업체에선 선물 자제 운동 등을 펼쳤고, 이는 농산물 수요에도 불똥이 튀었다. 가락시장의 민종우 동부팜청과 경매사는 “김영란법이 이슈가 되다 보니 여기저기서 선물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이 벌어졌다. 소비에는 악영향을 끼쳤다”고 전했다.
▲ 추석 대책은 물가 위주로만=시장에서는 추석 대목 농산물 시장이 계속해서 위축되고 있다고 밝힌다. 핵가족화에 여행 등으로 추석을 보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 토마토 등 일부 품목은 급식수요까지 줄어 추석 대목에 소비가 더 안 되고 있다. 이에 추석 대목에 맞춰서 물량을 집중하는 것보다 시기별로 물량을 분산 출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성언 가락시장 한국청과 경매사는 “핵가족화에 추석 연휴 여행도 늘며 해마다 명절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가정도 예전 같으면 많은 음식을 준비하지만 이제는 제사상에 올리고 한 끼 정도 먹을 양만 준비하는 곳이 늘고 있다”며 “추석 대목에 나올 물량은 그때 나와야겠지만 일부러 출하를 늦추거나 당기는 건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추석 수급대책에 대한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추석 수요는 줄고 대목 농산물 시세는 시원치 않지만 여전히 정부의 추석 수급대책이 물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의 경우 많은 양의 물량이 나올 것으로 이미 예고가 돼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수급조절 대책이 가동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강원도의 한 배추농가는 “적어도 한 달 전부터 추석 물량이 크게 불어날 것이라고 예고돼 있었음에도 정부는 추석 물가가 오르지 않는지에만 관심을 뒀다”며 “이미 추석 물량이 크게 불어날 것이라고 예고된 상황에서 특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고, 결국 대목을 못 느끼게 하는 터무니없이 낮은 시세가 추석 대목에도 이어졌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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