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뭄이 이어지자 농민들이 논에 미리 물을 대놨지만, 예보 없이 갑작스럽게 쏟아진 비로 인해 오히려 논이 침수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 바짝 마른 논바닥은 갈라졌고, 심어놓은 콩도 대부분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 이맘때면 이미 논콩 파종을 마무리해야 하지만 연일 이어지는 폭염과 가뭄으로 인해 농민들은 재파종만 반복하고 있다.
전북·전남
한국농어민신문 홍란, 이강산 기자 2025. 7. 11
짧은 장마 후 논·밭 타들어가고
예보 빗나간 호우에 배수 피해
재래식 돈사 등 잇단 출하 지연
‘강수량 0mm, 최고기온 34.8℃.’
전북 순창의 7월 1일부터 10일까지 기록된 강수량 합계와 평균 최고기온이다. 같은 기간 2024년에는 138.8mm, 29.9℃, 2023년에는 125.5mm, 30.4℃, 2022년에는 5.7mm, 32.8℃, 2021년에는 162.6mm, 28.5℃, 2020년에는 47.3mm, 27.1℃를 기록했다.
최근 5년과 비교해도 올해 7월 초 날씨가 얼마나 이례적이고 극단적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그렇다면 이런 ‘극한의 날씨’에 직격탄을 맞은 농촌 현장의 상황은 어떨까. 9일, 기상청 기상관측소가 없어 공식 기록은 없지만 순창과 유사한 기후 흐름을 보이는 전북 김제의 논콩단지를 찾았다.
올해 장마는 평년보다 일찍 끝나고, 이후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면서 농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논밭 작물은 타들어가고 지역에 따라서는 예보와 달리 쏟아진 집중호우로 배수 피해까지 더해지면서 농민들은 연일 ‘삼중고’를 겪고 있다.
전북 김제시는 이맘때면 논콩 파종이 대부분 마무리되어야 하지만, 마른장마 탓에 싹이 제대로 트지 않아 재파종을 반복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논콩은 통상 늦어도 7월 중순까지 파종을 마쳐야 하지만, 6월 집중호우와 이어지는 이상고온으로 생육이 지연되거나 아예 파종을 하지 못한 농가도 적지 않다.
박인규 한국농업경영인 김제시연합회장은 “너무 가물어서 콩이 싹을 틔우지 못하니 결국 두 필지를 갈아엎고 재파종했다”며 “날이 더워 낮에 일하기도 어렵고, 비용만 계속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김제시의 밭은 바닥이 쩍쩍 갈라진 상태였고, 콩은 드문드문 올라와 있었다. 구지석 김제시연합회 사무국장은 “지난번 집중호우로 땅이 잠겨 다시 때웠는데, 이제는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다 갈라졌다”며 “때우느라 모종도 다 써버렸고,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근 순창군 농가 김현희 씨도 “요즘 콩이랑 들깨를 심을 시기인데, 너무 가물어서 심지도 못하고 있다. 심은 것도 싹이 안 나서 재파종만 반복 중”이라며 “비용이 배로 드는 데다, 낮 기온이 37℃를 넘으니 1000평만 넘어가도 물 주기가 버겁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마른장마뿐만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국지성 집중호우로 오히려 논이 침수되는 사례도 있었다. 박인규 회장은 “며칠간 논에 물을 대놨는데, 갑자기 두 시간 가까이 장대비가 쏟아져 논에 물이 넘쳤다”며 “땅은 바싹 말랐는데 비 예보도 자주 빗나가다 보니 농작업 시점을 정하기가 너무 어렵다. 정부 차원의 정확한 기상정보 제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폭염 피해는 가축으로도 번지고 있다. 전북도에 따르면 7일 기준 도내 축산농가 168호에서 폭염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김락기 대한한돈협회 김제지부장은 “실내 온도가 36℃까지 올라가 냉방시설은 물론 물을 뿌리고 선풍기도 가동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며 “특히 재래식 돈사에서 피해가 큰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돼지들도 낮에는 잠만 자고, 사료 섭취량도 줄어 출하일령이 15일 정도 지연되고 있다. 이는 곧 비육사 밀사로 이어진다”며 “모돈의 경우 과호흡으로 폐사하는 사례도 많다”고 덧붙였다.
폭염은 작물과 가축뿐 아니라 농민들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8일까지 전국 온열질환자는 121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약 480명)보다 2.5배가량 증가했다. 추정 사망자도 8명으로 전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고령층 비율이 높은 농촌에서는 열사병과 탈진 등 온열질환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지자체들도 폭염 대응에 나섰다. 전금미 김제농업기술센터 농촌지원과장은 “폭염이 심해짐에 따라 농업인을 대상으로 특별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농작업 안전모, 팔토시, 스카프 등을 지급하고, 폭염 시 작업 자제 권고도 지속적으로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란 기자
# 전남서도 온열질환자 및 가축 폐사 급증
외국인 근로자 온열질환 주의
새벽 일·수분 공급·휴식 철저를
전남 지역도 폭염이 장기화되면서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가축 폐사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전남도에 따르면 8일 기준 도내 온열질환자는 총 79명으로, 하루 만에 열사병 3명과 열탈진 5명 등 9명이 추가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39명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발생 장소를 보면, 전체 환자 중 61명이 논밭(21명)과 작업장(24명) 등 실외에서 발생했다. 실내에서도 18명(집 5명, 실내 작업장 5명 등)이 온열질환을 겪은 것으로 집계돼 실내 작업 및 휴식 중에도 적정 온도 관리와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다.
가축 피해도 심각하다. 8일까지 전남에서 8만1515마리의 가축이 폐사했으며, 8일 하루에만 2만597마리가 추가됐다. 특히 고온에 취약한 닭은 하루 동안 1만9629마리가 폐사했고, 돼지도 968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폭염이 지속되는 가운데에서도 농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주요 노지 작물의 수확작업은 대부분 마무리됐지만, 논둑 제초나 잔여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온열질환 사고 예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중개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동남아 출신 작업자들도 이번 더위는 우리와 똑같이 힘들어 한다”며, “새벽에 작업을 시작하거나 오전까지만 작업하고, 수분 공급과 휴식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설원예 농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담양에서 멜론을 재배하는 정승오 한국농업경영인 전남도연합회 감사는 “하우스 안 온도가 40도에 육박하고 체감온도는 더 높아 새벽부터 오전 10시까지 작업하고, 휴식 후 오후 늦게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하우스 내부는 방심하는 순간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서로 상태를 확인하며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라남도는 폭염 대응 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하고, 온열환자 발생 예방을 위해 7871개소의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마을 방송, 차량 가두방송, 문자메시지 및 SNS를 통해 폭염특보와 행동 요령을 지속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무안=이강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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