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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청구로 발의돼 상임위 통과한 조례안, 본회의서 부결
예산 부담이라지만…‘검토 부족·정치 논리 작용’ 비판 제기
농업인신문 박정완 기자 2025. 7. 4
충남 예산군에서 전국적으로도 드문 주민청구 조례가 지방의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지역 농민들과 의회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해당 조례는 농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농가 부담 완화를 위한 ‘농자재 지원 조례안’ 으로, 2,000명이 넘는 주민의 서명에 의해 제출됐지만 예산군의회는 지난 6월 26일 본회의에서 찬성 1, 반대 8로 최종 부결시켰다.
이 조례는 예산군 주민이 청구한 첫 조례로, 지방자치법상 절차를 모두 밟아 성립 요건을 충족한 정식 조례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회의에서 압도적 반대로 부결되자, 농민단체와 주민들은 “민의를 철저히 외면한 결정” 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조례안은 소요 예산을 100% 군비로 추산한 비용추계서를 이유로 집행부와 의회 다수가 ‘재정 부담’ 을 이유로 들었지만, 지역 농민단체는 “실제 소요 예산은 추계보다 훨씬 낮고, 향후 조정도 가능한 사안” 이라며 맞서고 있다.
해당 조례는 당초 예산군의회 산업건설위원회에서 표결 끝에 가결됐다. 위원회 소속 의원 5명 중 더불어민주당 2명과 국민의힘 1명이 찬성 입장을 표명하며 조례가 상임위 문턱을 넘었지만, 본회의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민주당 의원 2명이 병가 및 일정 문제로 불참하고, 국민의힘 소속 의원 9명 중 8명이 부결표를 던지며 조례는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과 농민단체는“수천 명의 주민 서명이 담긴 조례안을 두고 간담회 한번 없이 본회의에서 일방적으로 부결시킨 것은 명백한 책임 회피”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산군농민회는 성명을 통해“농민의 고통은 외면하고, 정치적 계산으로 일관한 무책임한 결정” 이라며 규탄했다.
이에 대해 김영진 의원(국민의힘, 산업건설위원장)은 “당론은 아니다” 라며 “행정에서 재정 부담을 우려해 신중한 접근을 요청했고, 의원들은 개별 판단에 따른 표결이었다” 고 해명했다. 그는 “현재 국회에 유사한 필수농자재 지원 법안이 계류 중이며, 향후 국비가 확보될 경우 조례 제정도 가능할 수 있다” 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논란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본회의에서 유일하게 찬성표(가결)를 던진 국민의힘 이상우 의원은 “조례안은 충분히 조정 가능하며, 구체적 시행규칙 제정을 통해 예산 부담도 줄일 수 있다. 본회의 부결은 군민의 합리적 요구를 무시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그는“조례안은 이미 전문위원과 관련 부서 모두 문제없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부결에 대한 의회의 명확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예산군농민회는 “정작 예산을 운운하지만, 실제로 중복 지원을 제외하고 현실에 맞게 운영하면 연간 30억 원 수준에서 사업이 가능하다” 며 “집행부와 의회가 실사나 교차 검토도 없이 추계서에만 의존한 것은 직무 유기나 다름없다” 고 반발하고 있다.
예산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한 농민은 “비료값과 농약값도 못 건진 농가가 수백인데, 지역 농업군의회가 외면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며 “주민이 나서서 만든 조례가 이 정도로 가볍게 취급당한다면 지방자치제도는 유명무실하다” 고 강하게 비판했다.
예산군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농업 중심 지역으로, 농민의 생존과 직결된 농자재 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절실한 상황이다.
국민의힘 의원 중 홀로 가결표를 던진 이상우 의원 역시 “군민과 함께 다시 조례 제정을 추진하겠다” 며 재발의를 예고한 상태다.
예산군농민회는 오는 7월 11일 규탄대회를 예고하며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 이라고 밝혔다. 조례안은 지방의회의 문턱은 넘지 못했지만, 그 과정을 지켜본 농민과 주민들의 분노는 예산군 전체로 번지고 있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조례 하나의 부결을 넘어, 지방의회의 대표성과 책임성, 농민 생존과 재정 현실 사이의 균형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유사 조례를 제정해 시행한 강원도 인제군의 사례는 예산군 사태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인제군은 2019년 전국 최초로 ‘농자재 반값 지원 사업’ 을 도입하고, 비료·농약·종자 등의 필수 농자재 구입비의 50%를 군비로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해왔다. 이후 제도는 조례로 정착됐고, 강원특별자치도 차원의 광역 조례로까지 확산되며 제도적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현재까지 누적 7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집행됐고, 연간 평균 180만 원 상당의 실질적인 지원을 받은 인제군 농가들은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
장동진 예산군농민회장은 “이처럼 조례 제정을 통해 정책이 지속 가능하게 안착된 인제군의 사례는, 재정 부담만을 이유로 조례를 부결한 예산군 의회의 결정이 과연 설득력을 갖는지에 대한 물음을 남긴다” 고 밝히면서 주민청구 조례안 재추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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