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어려운 일에 막혔을 때 신박한 방법을 통해 단번에 손쉽게 해결했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나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를 인용하고는 한다. 그러나 어찌 세상만사가 무를 자르듯 일도양단, 쾌도난마처럼 한 번에 시원스럽게 해결될 수 있겠는가.
특히나 살아있는 농수산물을 다루는 도매시장에서의 일은 더더욱 단 한번의 처방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본다. ‘가락시장의 휴무’ 논쟁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 중도매인들을 비롯한 가락시장 종사자들은 가락시장의 휴무 연장 논의가 시작된 2023년부터 지난 3년 동안 생산자들이 겪을 어려움을 충분히 고려하여 최소한의 ‘월 1회 휴무’만이라도 즉각 시행해 달라는 시장 종사자들의 빗발치는 요구에도 그저 간절한 마음으로 그 논의를 지켜봐 왔다. 하지만 정작 이를 주도적으로 조정하고 해결해야 할 정책당국은 생산자와 중도매인 간의 완전한 합의만을 강조했을 뿐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러는 사이 ‘가락시장 휴무 연장은 안된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위하여 한달에 한번 만이라도 쉬게 해 달라!’라고 하는 생산자와 중도매인 을(乙)들 간의 날카로운 대립만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한 반복되면서 도매시장을 이끌 차세대 젊은 청년들은 일과 삶의 조화로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도매시장을 떠나고 있다.
돌이켜보면 90년대 초 가락시장이 토요일 휴무를 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많은 반대와 갈등이 있었는가. 한참 농산물의 성수기라고 일컫는 8월 초에 실시하는 하계 휴장은 어떠했는가? 하지만 당초 일부 우려와는 달리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때 그렇게라도 시행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가락시장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물론 어떤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는 예상되는 장애 요인들을 분석하고 제거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지만 ‘가락시장 월1회 휴무’ 시행을 두고 생산자와 시장종사자들 사이에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위하여 한달에 단 한번의 휴식을 달라는 가락시장 종사자들 주장이나 여름철 농산물의 성장 속도를 볼 때 단 하루의 가락시장 휴장도 어렵다는 생산자측 양쪽 주장이 지극히 옳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락시장 월1회 휴무제’를 막는 것만이 마치 농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지고의 농정정책인 줄 착각하면 곤란하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5번의 가락시장 휴무 시범 실시 결과 농산물의 반입물량이나 가격의 변동에 있어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농민들에게 품목별 홍수 출하를 조절할 수 있는 저온저장고 설치 지원은 물론 모든 농산물을 한 곳에 펼쳐 놓고 진행하는 현재의 경매방식 외에 정가·수의 매매 확대, 제3자 판매 확대, 상장예외품목 확대 등 거래 방법의 다양성 확보로 언제 어디서나 농수산물이 원활하게 유통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하여 심사숙고 할 때가 아니라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다.
지금 가락시장은 너무 아프다. 이번 대선에서 주 4.5일제, 주 4일제 등 일과 일상을 조화롭게 하겠다는 주요 정당의 워라밸 정책은 오히려 가락시장을 더 몸살 나게 만들고 있다. 지금 가락시장의 현실은 어떠한가. 가락시장 종사자의 경우 일반 임금근로자 연간 근무일수 233일 대비 72일이 많은 305일, 야간근무에 근로 시간은 무려 161% 많은 3016시간 근무로 워라밸 추구는 아예 불가능하다. 4000 여명이 넘는 여성 경리들조차 한달에 한번의 휴식을 가지지 못하는 곳, 평균 나이 60세가 넘는 하역노조원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밤샘 야근하는 이 곳을 우리는 국내 농수산물 유통의 허브라고 부른다. 이제 좀 솔직해지자. 옛말에 병은 널리 알려야 빨리 고쳐진다고 했다. 지금 가락시장은 많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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