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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경남 산청군 생초면에서 양파 수확을 포기하고 모내기를 위해 물을 댄 논에 망가진 양파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한승호 기자
겨울 가뭄에 봄철 이상저온까지 경남북 양파농가 덮쳐
상품성 없는 생육부진 양파 속출에 수확할수록 ‘적자’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2025. 6. 22
제법 굵은 빗줄기가 내리던 지난 16일 경남 창녕군 대합면 소야리 한 양파밭은 온통 아기 주먹만 한 양파들로 가득했다. 양파(중만생종) 수확기라기엔 무색할 정도로 씨알이 작았고 이른바 ‘1번 다마(9~10cm)’라 불리는 굵은 양파는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수확을 포기할 정도로 이렇게 자잘한 게 대거 나온 건 올해가 처음이다. 이런 게 재해가 아니면 무엇이 재해겠나.” 빗물이 고인 양파밭을 바라보는 성유경 전국양파생산자협회(양파협회) 경상남도 사무처장의 표정은 내내 어두웠다.
같은 날 찾아간 경남 산청군 생초면 하촌리 일원 양파밭도 사정은 비슷했다. “양파 농사를 20년 넘게 지었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20필지(약 4000평) 중 13필지(약 2600평)를 재해보험 신청했다. 개중 잘 된 밭도 있지만 농가 대부분에서 상품성 있는 양파의 수확량이 30~50% 정도 줄었다. 1평당 30kg은 나와 줘야 하는데, 올해는 14kg 선이다.” 민영훈 양파협회 산청군지회장이 전했다.
씨알이 한창 굵어질 시기인 지난 3월 하순 무렵 싸락눈이 쏟아진 뒤로 아침저녁 기온이 15℃ 이하로 지속된 날수가 많았던 게 주요인이다. 여기에 양파가 말라 죽을 정도로 지난겨울 가뭄이 두어 달 정도 이어지기도 했다. 민 지회장은 이로 인한 결주율을 20%로 봤다. 지난 초겨울까지 잦은 비로 모종을 20일가량 늦게 심은 데다 겨울 가뭄에 봄철 저온까지 겹친 상황, 지난 3~4월 무렵만 해도 예상하지 못한 바다.
지난 5월 말엔 양파 가격마저 폭락해 정부 수급 가이드라인상 수확기 안정대 가격 기준선을 한참 밑돌았다. 최근 양팟값은 회복세에 들어서긴 했지만, 저온피해가 재해로 인정될지 알 수 없고, 지난 4월부터 이어진 미등록 체류 외국인에 대한 정부 합동단속으로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인건비까지 폭등(20~50%)하면서 아직 수확을 마무리하지 못한 양파농가들은 시름에 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 ‘이대로면 양파농사 접어야…’
올해 양파농사가 적자를 면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생육부진으로 이른바 ‘꼬다마’가 대량으로 발생해서다. 이 꼬다마는 탁구공(지름 4cm)보다 크거나 작은 정도 크기로 사실상 상품 가치가 없다. 후작을 위해 밭에 방치할 수도 없어 농민들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인건비와 운반비 등을 추가로 들여 수확에 나선 상황이다. 정병준 양파협회 경남도 부지부장은 꼬다마가 산청군 양파 수확량의 20% 이상은 될 것으로 봤다.
“농가는 꼬다마 1망에 6000원을 받고 넘기는데, 그중 3500원이 순 자르고 캐서 망에 담아 나가는 비용으로 날아간다. 알이 너무 작아 작업자들도 꺼린다. 망잽이(양파를 망에 담는 작업자)들이 잘하면 하루에 380망, 못해도 평균 250망은 하는데 자잘하니까 잘하는 사람도 200망을 하기 어렵다. 손은 많이 가는데 돈이 안 되니 아예 작업을 하지 않으려 한다.” 정 부지부장이 말했다. 종자·비료 등 농자재 일체와 농민의 자가 노동비, 봄철 제초 비용까지 따지면 수익이란 말을 입에 올릴 수 없을 정도다.
창녕군에서 양파 농사(3500평)를 짓는 유영철씨는 “꼬다마까지 다 담았는데 전체 620만원 받았다. 1평당 최소 1만2000원은 나와야 겨우 농사를 유지할 수 있다”라며 “현재는 6000원도 안 되는 데다 정부는 1만5000원이 넘으면 수입한다고 하니 앞으론 양파 농사를 줄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수익을 말할 수 없는 상태다”라고 전했다.
안 그래도 잦은 수입과 유통과정 등 문제로 공정 가격이 보장되지 못하는 가운데 생육부진까지 겹쳐 상품 가치가 있는 양파 생산량 자체가 급감한 게 결정적 타격이 된 셈이다. 성유경 양파협회 경남도지부 사무처장은 “최근 400망을 팔았는데 200만원(1망당 5000원꼴)도 안 주려고 한다. 수확 인건비만 167만원이고 지난해 심을 때 인건비, 비룟값 등등은 말도 못 꺼내니 우리가 어떻게 견디겠나”라며 “1번 다마라도 많이 나왔으면 좀 나았겠지만 지난해 습해에 이어 2년 연속 재해가 닥쳐 적자 폭이 3000만~4000만원은 될 것 같다. 남은 거 수확하려면 인건비는 또 얼마나 들어갈지 모르겠다”라고 토로했다.
# 재해·가격폭락에 농가 보호장치 사실상 전무
예측할 수 없이 거듭되는 재해와 적정 가격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양파 농사를 지속할 수 있는 안전장치는 과연 있을까. 현재로선 없다는 게 현장 농민들의 지배적인 반응이다. 재해로 인한 농가 피해를 보전한다는 농작물재해보험 역시 한계가 분명하다는 게 농민들의 지적이다. 보험조사에서 피해율 산정은 양파(최대 지름이 6cm 미만에 한함) 무게가 기준인데, 상품 가치가 없는 작은 양파들이 수확량에 잡혀 피해율을 낮추는 데다 조사 때 표본 추출도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양파협회는 이번 경남북 지역 양파 피해의 경우 사실상 경작불능(식물체 피해율이 65% 이상)에 가까운데도 수확기가 임박해 피해를 인지해 신고 시기를 놓쳤다고 본다.
민영완 양파협회 산청군지회 사무국장은 “보통 피해율이 30~40% 정도 인정되는데, 여기서 자부담 20%를 빼면 보험금만으론 인건비도 감당하지 못한다. 보험을 들어도 적자다. 수입보장보험 역시 보상 기준 단가가 8000원 선으로 정해진 지 오래됐다”라며 “수입보장보험의 경우 기준단가를 올리든 평당 정액(생산비 등을 포함한 공정 금액)으로 보상하든 해야 소득 보장 취지에 맞다. 수익은커녕 돈을 더 들이부어야 하는 적자 농사가 계속되는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채 수입보장보험을 확대(2026년 예정)하는 건 전혀 실효성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농업재해보험의 보장성을 현실화하는 과제와 함께 양파가격 보장 기준도 자세히 따져야 한다. 이날 농민들은 양파 1망당 최소 1만5000원은 보장해야 양파 농사를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기준가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기준만으론 실질적 가격 보장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병준 양파협회 경남도 부지부장은 “1만5000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상중하 세 개 품위의 양팟값으로 평균을 내면 사실상 1망당 8000~9000원이 된다. 무조건 적자가 될 수밖에 없다”라며 “상품은 1만7000~1만8000원, 중품은 1만원, 하품은 6000원 이상 보장해야 실질적으로 1만5000원이 보장된다”라고 설명했다. 즉 상품 양팟값을 더 올려야 하며, 품위까지 반영해 기준 가격을 설정해야 양파 농사를 지속할 수 있는 적정 가격이 나온다는 뜻이다.
아울러 이날 농민들은 올해처럼 재해나 가격 폭락이 발생했을 때 농가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변동직불금 및 가격지원제도 등이 있어야 양파 농사를 지속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안전장치들은 양파농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결국 식량주권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성유경 양파협회 경남도 사무처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물가는 다 올랐는데, 주식인 기본 농산물값은 안 오른단 말이다. 수입으로 대체했다간 조만간 (쌀 대란을 겪고 있는) 일본 꼴이 될 것이다. 식량 자급이 어느 정도는 유지되도록 기본 농산물은 보호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농사짓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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