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무신경’
7~8월 채소 반입 늘어 야적
장마철엔 출하품 비맞기 일쑤…품위떨어져 경락값 하락 속출
“빈 공간 임시사용 등 대책을”
제9호 태풍 ‘찬홈’의 영향으로 서울 등지에 많은 비가 쏟아진 12일 오후 6시. 서울 가락시장 내 청과동과 무·배추 경매장 사이의 주차공간에선 찰옥수수 하역이 한창이었다. 충북 괴산에서 왔다는 한 출하자는 “공간이 없어 이곳에 내리라는데 비에 젖은 찰옥수수가 제값을 받을지 걱정”이라며 “(1단계 시설현대화사업으로) 새로 지은 건물 1층 빈 주차장을 임시로 이용하게 할 순 없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날 바깥에 하역된 건 찰옥수수만이 아니었다. 한주를 시작하는 일요일 저녁 경매여선지 오이·감자 등 여느 때보다 많은 채소류 상자 출하품이 속수무책으로 야적되고 있었다. 경매사들과 하역노조원들이 출하품에 비닐을 덮는 등 비에 젖지 않도록 구슬땀을 흘렸지만 바닥에 내려놓은 출하품 중에는 이미 물에 젖어 찌그러진 것들이 적지 않았다.
낡은 시설과 열악한 환경을 개선한다는 가락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장마철 출하농민들의 속을 태우는 안타까운 풍경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당초 설계치보다 1.7배가량 많은 물량이 반입되는 가락시장의 구조적인 탓도 있지만, 이런 한계를 나몰라라 하는 듯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안이한 태도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도매법인 경매사는 “특히 오이·호박·상추 등의 반입량이 겨울철보다 두배 가까이 증가하는 7~8월에는 하역할 곳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출하자와 도매법인들이 발을 동동 구르곤 한다”며 “어쩔 수 없이 경매장 바깥에 하역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때 비를 맞으면 품질 하락 → 시세 급락으로 이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6월7일부터 7월12일까지 진행된 여섯차례의 일요일 저녁 경매에서 <백다다기> 오이는 반입량을 고려하더라도 비가 내린 날(6월14일ㆍ7월12일) 시세 하락이 두드러졌다. 비온 날의 상품 경락가격은 전 7일 평균가격의 각각 93％와 85％ 수준에 불과했다. 비가 오지 않은 네차례의 경매(6월7ㆍ21ㆍ28일과 7월5일) 때는 한차례(6월28일)를 제외하곤 전 7일 평균가격보다 시세가 6∼15％ 올랐다.
상황이 이런데도 시장 관리주체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뒷짐만 지고 있다는 게 상당수 시장 유통인들의 주장이다. 도매법인의 임원급 관계자는 “물론 2~3단계 시설현대화사업을 앞두고 있어 현재의 경매장에 새 시설을 추가로 짓는 것이 낭비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것은 업무 태만”이라면서 “시장 곳곳에 있는 빈 공간을 내버려둘 게 아니라 필요할 때는 임시로 사용하도록 하고, 시장 밖에 별도의 출하 편의공간을 마련하는 등 출하농가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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