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농촌 정책이 실효성을 잃는 이유 중 하나는 ‘추진 주체의 부재’다. ‘상향식’ ‘내발적’ 농업·농촌 정책의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고 있지만 지방정부의 정책 역량 부족이나 지역이기주의, 중간지원조직의 난립 등 정책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가파른 지방소멸을 먼저 겪은 일본이 도입한 ‘지정시정촌’ 제도와 ‘농촌 지역운영조직(RMO)’이 눈길을 끈다. 역량을 갖춘 시정촌에 중앙정부가 일정 권한을 넘기고, 지역주민이 주축이 된 RMO가 농업과 생활을 아우르는 정책의 중심축을 맡는 식이다.
윤석환 농정연구센터 전문연구위원은 최근 ‘농정연구 제92호’에서 “지방분권이 강화된다고 해서 저절로 지역 과소화문제 등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지방정부가 어느 지점에서 더 잘할 수 있는지 명확히 하고, 이런 부분에 관한 지방 이양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정시정촌’을 참고 사례로 언급했다. 이는 일본 농림수산성과 지방정부가 협의해 마련한 제도로 ‘일정 자격’을 갖춘 지방자치단체에 농지전용 권한을 부여한 것이 핵심이다. 전국 1718곳 시정촌 가운데 3.8%(65곳)가 지정시정촌으로 선정됐다.
이들 지역은 4㏊ 이하 농지를 중앙정부와 협의 없이 전용할 수 있다. 4㏊를 초과하면 중앙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하며 우량농지 확보 목표를 세우고 ‘농업진흥지역의 정비에 관한 법’에 따라 제도를 운용하는 등 조건도 수반된다. 윤 전문연구위원은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필요성이 인정된 지방 이양 사항에 대해서는 역량과 추진체제를 갖춘 검증된 지자체부터 적용한 것이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농촌 정책의 실행 주체로 부상한 ‘농촌 RMO’도 눈여겨볼 만하다. RMO는 지역주민 중심으로 지역 내 문제 해결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조직이다. 그중에서도 농촌 RMO는 농경지 보전, 농업기반 경제활동, 생활 지원 등을 통해 지역 커뮤니티 유지에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
농촌 RMO는 부처간 정책 칸막이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농림수산성이 주도하고 있지만, 내각부·후생노동성·총무성·국토교통성 등 다른 중앙부처와 지자체가 함께 지원한다.
예를 들어, 지역주민의 희망을 실현하고 지역의 미래상을 설계하는 데 초점을 둔 농림수산성의 ‘농촌 프로듀서 양성’ 사업과, 생활지원·간병 서비스 인력을 양성하는 후생노동성의 ‘생활지원 코디네이터’ 사업 모두 농촌 RMO와 연계해 추진할 수 있다.
농촌 RMO의 활동이 농지 보전과 농용지 관리 등 인구감소 시대의 식량 생산성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도 의미 있는 흐름이다.
윤 전문연구위원은 “향후 인구전망 등을 고려하면 중산간지역에서의 집락활동 실시율이 더 저하돼 식량공급 기능이나 다면적 기능의 유지·발휘에 지장이 생길 우려가 있어 농가·비농가가 일체가 돼 지역 커뮤니티 기능을 유지·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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