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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강원 횡성군 양적농장 시설하우스에서 이병오 박사가 추비용 여과액비 잠금장치를 열어 흐르게 한 뒤 손으로 만져 보고 있다. 시설하우스 옆에 설치돼 있는 10톤짜리 여과액비 보관탱크(가운데) 모습
[인터뷰] 이병오 박사 ‘추비용 여과액비’ 연구자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2025. 6. 13
지난 11일 미니오이 수확이 한창인 강원 횡성군 양적농장 시설하우스 한쪽엔 약 2.5m 높이의 파란색 물탱크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엔 물이 아닌 돼지분뇨를 발효·여과해 만든 액체 비료 ‘추비용 여과액비(여과액비)’가 들었다. 이 농가는 지난해 여과액비를 써서 비룟값을 80% 이상 줄였다. 미니오이 작목반 회장인 김영은 양적농장 대표는 “가장 좋은 건 수확물 품위가 좋아진 거다. 선별장에 가보니 우리 오이만 반질반질했다”라고 전했다. 관주용 수입비료는 한 포대에 15만~17만원이라 부담이 컸는데, 비룟값 절감과 오이의 품위 향상까지 여과액비에 대한 만족감은 컸다. 한 마리당 하루 약 5.1L가 나오는 돼지 똥오줌은 농촌 악취의 대명사로 기피 대상이나 농가를 살리는 비료로 변신했다. 그러나 이런 변신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전국 200여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여과액비를 활용하는 지역은 5곳에 그친다. 탄소중립을 향해 가는 기후위기 시대와 비룟값 폭등에 농가 허리만 휘는 상황은 이 놀라운 변신에 주목할 이유로 충분해 보인다. 이에 20여년간 액비를 연구·자문해 온 이병오 응용식물과학 박사(사진)를 강원 횡성 경축순환농업연구소에서 만나 봤다.
추비용 여과액비란
슬러리(액체·고체가 혼합된 상태)로 배출되는 돼지의 똥오줌을 발효시켜 만든 액체 비료는 보통 기비(밑거름)용이라 작물 정식 전밖에 쓰지 못한다. 이에 작물이 자라는 중에도 쓰는 추비(웃거름)이자 관비·관수재배지의 점적관을 이용해 연중 시비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점적관의 구멍이 막히지 않아야 하니 발효 뒤 액비를 여과해야 한다. 그래서 추비용 여과액비라 부른다. 물과 동시에 비료까지 줄 수 있다. 발효와 여과를 거쳐서 냄새가 없고 작물이 양분을 바로 흡수할 수 있도록 무기화했다. 점적관을 통해 액비가 뿌리로 직접 공급되므로 작물에 닿지 않아 안전하고, 작물에 필요한 거의 모든 양분과 유익균까지 제공돼 무기질비료나 영양제를 별도로 주지 않아도 되는 종합비료다. 비룟값 절감은 물론 수확물의 맛·경도·때깔까지 좋아져 농가 경쟁력도 확보된다.
여과액비 사용이 늘지 못한 이유는
공급 기반도 있고 수요도 충분하다. 사실상 확산에 걸림돌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경축순환농업에 대한 인식, 추비용 여과액비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전혀 없었다. 다들 몰라서 못 쓴다고 보는 게 맞다. 나도 20여년 이 일에 매달렸지만 보편화에는 한계가 있었다. 2000년 초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를 시작하고, 연구용역하며 자료를 공유하면서 그나마 여기까지 왔다. 현재로서도 경축순환의 의미와 여과액비의 강점을 계속 알리는 게 중요하다.
‘몰라서 못 썼다’를 더 설명해 달라
일례로 축산 쪽은 기비용 가축분뇨 비료 살포 농경지가 줄어든다고 아우성치며 정부 지원을 호소하지만, 정작 경종농가의 수요를 못 보고 있다. 경종농가 수요를 분석하면 똥이 모자랄 정도다. 경종농가들도 액비를 쓰면 화학비료 구매 비용을 80% 이상 줄일 수 있어 경영에 큰 도움이 되고, 수확물 품질 향상은 물론 토양 건강까지 회복할 수 있는데 이를 모른다. 액비 사용이 늘면 축산농가도 분뇨 처리가 빨라져 악취도 개선할 수 있다. 이에 액비를 축산환경관리원이 가축분뇨 악취개선 사업으로 다뤄도 좋겠다. 결국 현장 당사자들도 잘 모르니 보편적 정책이 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일단 일선 공무원들부터 경축순환과 여과액비에 관심을 두고 배워야 한다. 액비 사용 확대를 위해서는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가 경축순환농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기질비료를 대체할 수 있다니 희소식이다. 필요한 제도적 장치는
전국에 있는 가축분뇨공공처리시설·공동자원화시설·액비유통전문조직을 활용하면 된다. 이 시설들에 침전여과 설비(약 3500만원)를 설치해 주고, 생산된 여과액비 보관 및 농가에 실어다 주는 과정(탱크로리 운송차 약 1억원)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시설 단위별로 총 2억원 이내 예산이면 가능하다. 탱크로리 차량만 지원한대도 1억원 이내 예산으로 여과액비를 농가에 가져다 줄 수 있다. 대부분 공동자원화시설은 유통조직을 끼고 있으므로 지자체가 운송비만 지원할 수도 있다. 강원 철원·횡성도 운송비와 탱크로리를 모두 지자체가 지원한다. 지자체가 축산농가와 경종농가, 유통조직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면 이것으로 공급 체계는 완성되는 셈이다.
농가가 준비할 것은
관비·관수시설을 갖춘 경우, 여과액비 보관탱크(10톤 용량 기준 200만원, 필요시 간헐적 폭기 장치 약 300만원)만 마련하면 여과액비를 연중 쓸 수 있다. 기존 관비·관수시설에 액비탱크를 연결해 주기만 하면 된다. 농가에 여과액비를 제때 공급하는 체계부터 마련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여기에 토양 상태, 액비 성상, 작물의 성장 속도 등을 살펴 얼마만큼 투입해야 하는지 컨설팅도 필요하다. 종합하면 여과액비의 공급과 유통, 농가와의 소통을 지원하는 거버넌스가 필요한 것이다. 여기엔 축산농가·단체, 지자체, 경종농가·단체, 유통조직이 결합돼야 한다. 지금은 각개전투 중인 셈인데, 이들을 모으면 된다. 이런 걸 하라고 법(약칭 가축분뇨법)에도 가축분뇨 자원화를 위한 계획 수립을 명시한 것이다.
농정 당국의 의지는
축산환경자원과(농식품부)는 똥에 대해서만 말하고, 농정국 농정과는 전혀 관심이 없다. 지난해 축산환경자원과 담당자가 한 번 찾아왔으나 그새 담당자가 바뀌었다. 여과액비 현장이 이곳밖에 없으니 지금까지 숱한 이들이 다녀갔다. 하지만 담당자가 바뀌면 관심도 정책도 멈춘다. 물론 그럼에도 의지와 인식을 갖춘 사람이 중요하다. 큰 예산 없이 기존 기반을 모으기만 하면 되는 방식이라 결국 당국의 의지 문제다. 아울러 농식품부가 그간 기금을 세워 다양한 사업단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만큼, 여과액비도 ‘경축순환활성화사업단(가칭)’ 같은 걸 꾸려서 연구·실증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도 고려해 볼 만하다. 수십억원씩 들여야 하는 기존 사업보단 훨씬 적은 비용으로 효과는 더 큰 사업이 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 경축순환농업의 의미는 뭘까
넓은 의미에서 경축순환은 자원순환이자 결국 자연순환이다. 경종 쪽에선 경영비 절감이 가장 큰 이슈고 축산 쪽은 가축분뇨 처리와 환경이 문제다. 예전보다 양돈농가의 분뇨처리비용이 3배 이상 늘었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인데 이를 해결할 거버넌스 구축조차 안 되고 있고, 기후위기 대응에 대해서도 농업계 탄소배출이 미미하다고만 할 뿐이다. 그러나 다만 얼마라도 줄일 수 있다면 줄여야 한다.
여과액비는 화학비료 사용량을 크게 줄여 경종농가 경영에 도움을 주고, 축산농가의 폐기물 처리 비용을 줄여 준다. 이 과정 자체가 탄소중립에 기여한다. 아울러 화학비료나 가축분뇨 처리 사업에 들어가는 국가 예산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경축순환농업의 활성화다. 물론 이것이 기후위기의 근본 해결책은 아닐 순 있으나 적어도 그 일부는 될 수 있다. 경축순환을 통해 지역단위 자원 순환 체계가 정착되면 모두에게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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