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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천안시 북면에서 사회적농업을 준비 중인 임재용씨의 농장. 정책대출이 막혀 3년째 미완성 상태인 농장을 지난달 27일 부친과 함께 둘러 보고 있다.
* 지난 1월 13일 육성자금 파동으로 피해를 입은 청년들이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 모여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이후 정부 예산 조정으로 피해자 구제가 이뤄졌지만 아직 산발적으로 잔여 피해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한승호 기자
“청년농 연간 6천명 육성” 실적 홍보에 급급한 정책
실제 지원 의지 빈약…육성자금 파동 사태로 형상화
정책 실책에도 사과·반성 누락…문제 지속될 여지 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2025. 6. 1
충남 천안의 임재용(35)씨는 ‘시신경교종’이라는 질환으로 어려서부터 뇌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아 왔다. 힘겨운 성장기를 보낸 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며 자신처럼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 매개로 택한 것이 농업. 자연에 기반한 생산적 활동으로 장애인·노인·환우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른바 사회적농업(치유농장)이다.
농촌에 기반이 전무했지만 임씨의 눈앞엔 ‘청년창업농(청창농)’이라는 밝은 가로등길이 놓여 있었다. 정부가 매년 일정한 인원을 선발해 영농기반 구축을 위한 장기 저리 대출(청창농 육성자금)을 해주는 사업이다. 임씨 역시 대출을 받기 위해 까다로운 조건을 갖춰 2022년 청창농으로 선발됐다.
하지만 막상 대출을 받으려 보니 순탄치가 않았다. 대출을 받으려면 담보물이 필요하다는 설명에 우선 일반대출을 받아 기초적인 농지·건물을 마련했더니, 이번엔 장기간 소득이 없어 대출을 해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청창농 선발을 위해 이수한 1000시간의 교육 동안 핑크빛 설명만을 들었을 뿐, 누구도 얘기해준 바 없던 일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말, 문제의 ‘청창농 육성자금 파동’이 터지면서 정책대출은 사실상 막혀버리기에 이른다.
임씨는 지금까지 농지·건물 구입에 모든 여력을 쏟아부었지만, 아직 기초시설만을 겨우 갖춘 상태라 치유농장을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3년째 소득이 0원인 상태로 대출이자만 월 170만원을 갚고 있는 실정이다. 소득이 없어 부득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갚아 나가다가, 그나마 최근 청창농의 ‘농외근로 금지’ 조건이 해제되면서 일용직 노동을 통해 부모님 부담을 덜어 드리고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너무 절실하고 의미가 큰 농장인 만큼, 미래가 불투명함에도 불구하고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진심 없는 청년농 육성정책
피해는 청년농들에게
정부의 청년농 육성정책을 접해본 많은 청년들이 입 모아 호소하는 이야기는 “진심이 없다”, 즉 실적을 만들기에 급급할 뿐 실질적으로 청년농을 육성하려는 의지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청창농 육성자금은 시행 초기부터 지금까지 △대출조건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기(旣)대출자를 방치하거나 △일정액수 이상에 자기보증비율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등 보수적·방어적 정책 태도로 인해 꾸준히 잡음을 양산해 왔다.
그 정점이 바로 지난해 말 일어난 ‘청창농 육성자금 파동’이다. 예산 부족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이미 선발된 청창농·후계농 중 소수를 다시 선별해 대출을 허용한 사건이다. 선발만 되면 무리 없이 육성자금(정책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수십년 동안의 신뢰를 정부가 한순간에 뒤엎어버린 것으로, 정부를 믿고 농업에 뛰어든 청창농·후계농 중 70~80%의 인생이 내팽개쳐진 사건이었다.
피해자들의 봉기와 함께 여론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국회에서도 피해자를 규합하고 정부를 압박하는 시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고, 결국 정부는 자체적으로 예산을 조정해 피해자를 구제하기로 했다. 적어도 2024년도 선발자들까지는 기존 방식대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사태는 소강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피해가 온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분산되고 정치권의 시선도 돌아섰지만 육성자금 파동의 상흔은 여실하다. 갑작스런 대출 차질에 계약이 파기돼 이미 농촌사회에서 신용을 잃은 청년들, 원하는 농지를 적기에 마련하지 못해 인생 계획이 틀어진 청년들, 5월에야 과수원을 구입한 탓에 전지 등 관리작업 시기를 놓쳐 1년 정상 소출을 포기해야 하는 청년들이 도처에 있다. 임재용씨의 경우, 일반대출 이자 상환을 위해 카드대출까지 받았다가 신용등급이 떨어져 정책대출을 신청하지 못하는 처지다.
예산 파동과 그 후과까지, 모든 사태의 원인은 매우 중요도 높은 정책임에도 관심을 방기한 정부에 있다. 부처로 따지면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기획재정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농림축산식품부의 책임이다. 하지만 정부 단위에서도, 기재부나 농식품부 단위에서도 사과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어려움에 처한 청년들을 돕는 듯한 시혜적 태도로 불완전한 수습이 이뤄졌다.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청년농 육성 제동 걸린다
정책 실책에 사과가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가장 치명적 부작용은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청년농 육성자금 파동의 핵심은 예산이다. 사과와 반성이 있다면 추후 예산이 정상 편성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예산 문제 역시 되풀이될 수 있다.
이는 이미 우려를 넘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농식품부는 사태가 벌어지고 수습되는 동안에도 ‘선별지원(2중 선별)’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결국 올해부터 신규 선발하는 청창농·후계농을 대상으로 육성자금을 선별지원하기로 확정했다.
이 선별지원 방침엔 여전히 예산 부족을 무마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청창농·후계농에 이미 체계적인 선발 기준이 있는 이상 2중 선별은 실효성 자체에 의문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행을 강행한다면 그 선별은 반드시 ‘합리적인 수준’이어야 한다. 문제는 합리성의 결여다. 이번 육성자금 파동에서 농식품부가 70~80%에 달하는 청창농·후계농을 육성자금 대상에서 탈락시킨 이유는 “영농 계획이나 역량이 부실하다”는 것인데 부실의 근거는 지금까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과도한 배정 탈락을 방지하기 위한 예산 증액 의지나 계획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청창농·후계농은 올해 6000명, 내년부터는 7000명씩 선발이 예정돼 있다. 만약 예산이 늘지 않아 이번 파동에서 보여준 70~80%의 자금배정 탈락률이 유지된다면, 매년 5000명 안팎의 청년들이 청창농·후계농 자격을 획득하고도 정책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는 지역위기를 맞아 청창농 육성을 본격화하기 이전의 수준(2020년 이전까지 연간 1600명 선발)으로 정책이 회귀하는 효과를 낸다. 또한, 힘들게 자격을 갖춰 청창농·후계농에 선발돼 봤자 정책대출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농업에 뛰어들 청년들의 의지 자체가 사그라들 가능성도 있다.
육성자금 파동 사태의 피해자들은 당장 자신들에게 당면한 문제라 대응이 가능했지만, 앞으로 선별지원을 감내해야 할 후배 청창농·후계농들은 아직 선발조차 되지 않은 탓에 이같은 정책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나 동력이 없다. 정부 청년농 육성정책은 큰 저항 없이 퇴보를 단행할 가능성이 짙으며 그 뒤켠에 농촌 고령화와 지역 공동화 문제가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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