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농업 외면, 김 빠진 콜라 같은 정책 이제 그만
한국농업신문 김채은 기자 2025. 5. 30
기후위기, 국제 분쟁, 공급망 불안정 등으로 ‘식량안보’와 ‘농업의 전략산업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그럼에도 최근 국정 현장에서는 농업이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정부의 정책 기조에서도, 국회의 입법·예산 심의 과정에서도 농업은 우선순위에서 멀어지고 있다. 물가, 부동산, 에너지 정책 등과 비교해 농업 관련 주요 법안은 언론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농민단체들이 지적하듯, 농정 현안은 표를 얻기 위한 ‘총선용 단골 레퍼토리’일 뿐 실질적인 정책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지난 22일 열린 ‘대선 농정 비전 발표회’에서도 정작 대선 후보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선거법과 유세 일정에 농업의 위기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 아쉽다는 평이 많았다. 공허한 구호보다 실천이 절실한 지금, 정부와 정치권은 더 이상 농업을 ‘선거용 레토릭’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농정은 미래를 위한 국가 전략이어야 한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식량자급률 목표(밀 8.0%, 콩 43.5%)는 명확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예산 증액이나 생산기반 확대 정책은 충분치 않다. 특히, 직불금 개편과 기후변화 대응형 농업 지원 등 민감하고 핵심적인 농정 이슈에 대한 ‘정치적 결단’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20.5%(2023 기준), 밀 자급률은 1.1%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OECD 평균 자급률(66%)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식량주권과 국가안보 측면에서 한국 농업은 이미 ‘위험 수위’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농업을 ‘투자 대비 효율이 낮은 산업’으로 인식하거나, 도농 간 불균형을 지역 예산 정도로 보전하려는 방식에 그치고 있다. 이는 농촌의 구조적 소멸과 청년층 이탈, 노동력 부족, 고령화 심화 등 국가 전체의 사회적 문제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의 출발점이다.
농업은 단순한 생계 산업이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 생물다양성 보존, 지역 균형 발전, 국민 건강과 안전까지 관통하는 복합적 가치를 가진 국가 전략산업이다. 이러한 다층적 가치를 무시하고 예산과 정치적 관심을 줄이면, 향후 수입 식량의존 구조에서 오는 리스크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이제 정치권은 농업을 위한 정치가 아닌, 국가의 미래를 위한 농업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기보다, 기초 식량 생산기반을 어떻게 보전하고, 청년과 기술이 결합한 지속 가능한 농업 모델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장기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농민은 투표로만 평가받고, 평소에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존재가 아니다. 식량이 위기일 때 그 뿌리를 지키는 이들이며, 환경과 생태를 보전하는 지역사회의 기둥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예산과 제도로 농업을 보호하려는 실천 의지다. “농업은 생명이다”라는 말이 선거 때만 울리는 구호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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