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지역자조금’ 도입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이달말까지 부처별로 내년도 예산요구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제도가 마련되지 않으면서 관련 예산편성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자조금 제도 개선방안의 하나로 지역·작형별로 생산 편중이 큰 품목에 대해 지역자조금을 도입하기로 했다. 생산자의 자율적인 생산 조절 능력을 키워 수급안정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정부 구상에 따르면 지역자조금은 해당 지역 농가의 50% 이상이 참여하는 의무자조금 형태로 운용될 전망이다. 지역 생산 편중이 80∼90%에 달하는 제주 겨울무, 강원 여름배추, 전남 겨울대파 등은 중점 수급 품목으로 정하고 거출금에 대해 정부·지방자치단체가 각각 100%의 사업비를 지원한다.
지역 편중이 비교적 덜한 전남 유자, 경북 자두·오미자 등은 지역 특화 품목으로 지정한다. 이 경우 지자체는 농가 거출금의 100%를 지원하고 정부는 농가 거출금과 지자체 지원금 합산 금액의 20~40%를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지역자조금 설치는 답보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법적 근거가 담긴 ‘농산자조금 조성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제정안’(농산자조금법) 3건이 지난해 11월 발의된 이후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농업분야 쟁점 법안이 줄줄이 심사를 기다리는 데다 대선 정국과 맞물려 ‘농산자조금법’은 언제 통과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법제화가 늦어지면서 일각에선 내년도 사업비 예산을 마련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행법 하에서도 지역자조금을 구성할 수는 있지만, 지역자조금을 의무자조금으로 인정하고 재정을 지원하려면 법적 근거가 전제돼야 해서다. 농식품부는 이달말까지 사업별 소요 예산을 산출해 ‘2026년 부처별 예산요구서’를 작성해야 한다. 농식품부 원예산업과 관계자는 “기획재정부는 올해 자조금 예산을 131억원으로 동결했을 정도로 예산 확대에 신중한 입장”이라면서 “(법적 근거 없이) 자조금 예산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이 제정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남아 있다. 지역자조금이 ‘수급안정’이라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려면 생산농가뿐 아니라 유통인·출하자 등 이해관계자의 폭넓은 참여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광형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배추나 무는 포전거래가 많고 생산·유통·출하 등 단계별 주체가 모두 다르다”며 “농가만 참여해서는 수급안정 효과를 일으킬 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무임승차자가 많아지고, 그렇게 되면 생산자들도 자조금에 참여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제주도 조례로 설치된 제주겨울무자조금의 운용 사례에도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 제주지역의 전체 무농가 중 12.7%만 자조금에 참여하고 있다. 그외 영농법인·유통인 등은 참여하지 않는다.
강동훈 제주월동무연합회장은 “지역자조금이 수급안정이란 목표를 달성하려면 참여자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면서 “제주에서 활동하는 유통인은 대개 육지에서 오는데, 이들도 지역자조금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농식품부는 “유통·출하·저장 등 품목별 모든 종사자들을 지역자조금 가입 대상으로 할 계획”이라면서 “구체적인 운용방안은 법안이 제정된 후 시행규칙·시행령에 담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용어설명] 지역자조금
특정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재배되고 작형이 분리된 품목의 생산농가·유통인·출하자 등을 대상으로 단체를 조성, 이들이 납부한 금액으로 조성한 기금. 자조금이 도입되면 생산자는 경작규모를 신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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