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민간 자문기구인 ‘미래지향적 행정체제개편 자문위원회(미래위)’가 농촌은 ‘읍’, 도시는 ‘동’으로 단순화하는 행정체제 개편안을 제시하면서, 농촌 소멸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행정 단위 축소보다 지역을 되살리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래위는 올초 ‘지방행정체제개편 권고안’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농촌은 읍, 도시는 동으로 단순화하고 과소 시·군 통합, 거점 도시를 육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같은 제안은 최근 대선 의제로 부상한 ‘메가시티’와도 연결되며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안이 과거 도농통합의 한계를 반복해 지역 불균형을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익법률센터 농본은 최근 내놓은 정책브리핑에서 “과거 도농통합 행정구역 개편은 도농 격차를 개선하는 낙수효과가 없었고, 농촌지역 인구는 오히려 감소했다”며 “미래위 권고안은 농촌지역의 공동화를 가속할 개악안”이라고 꼬집었다.
농본에 따르면 1995년 도농복합시로 출범한 경기 평택은 통합 이후 외곽 농촌지역에 대한 지역 개발비 투자 비중이 26%에서 21%로 감소했다.
도농통합 이후 인구는 도시지역으로 더욱 쏠렸다. 1995∼2010년 도농통합시 49곳의 인구 변화를 분석한 결과, 43곳에서 도시지역 인구 비중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균형발전보다는 농촌 인구가 도시로 흡수되는 방식의 통합이 이뤄졌다는 지적이다.
기존 읍·면 통폐합 정책 역시 면 지역의 주변화를 초래했다. 1995년 정부는 주민 이용이 적은 보건소와 농촌지도소 등 공공기관을 줄였다. 이로 인해 남아 있던 인구마저 읍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읍부 인구는 375만5782명에서 2023년 513만1418명으로 증가한 반면, 면부 인구는 같은 기간 562만5175명에서 453만6053명으로 감소했다.
면 지역의 인구 감소는 기초 생활서비스 접근성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면 지역에 병원·약국·식당이 유지되기 위한 임계 인구를 각각 3205명·2604명·1882명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인구 3000명 이하 면 지역은 2013년 566곳에서 2023년 695곳으로, 인구 1000명 이하 지역은 24곳에서 43곳으로 증가세를 보인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통합보다는 농촌을 살리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정민 지역순환경제센터장은 “(통합 추진으로) 농촌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하면 도시로 인구를 밀어넣는 결과만 남는다”며 “농촌을 살기 좋은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수도권 집중 해소와 국가 균형발전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행정 단위를 축소하기보다 읍·면 단위의 주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서 센터장은 “농촌공동체가 스스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농촌형 주민자치회’ 도입 등을 기반으로 상근 인력을 확보하고, 공동체 역량 강화를 뒷받침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