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농업경영인조합장협의회 등 9개 단체가 2022년 8월29일 서울역 인근에서 ‘농가경영 불안 해소 대책 마련 촉구 농민 총궐기 대회’를 개최, 농업 생산비 보전과 쌀 시장격리를 요구했다.
<1부> 윤석열 정부 3년 농정 평가
① 프롤로그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2025. 4. 9
“농업직불금 예산을 5조원으로 2배 확충” “농지보전을 통해 식량주권 강화” “청년농 3만명 육성”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22년 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발표한 농업공약이다. 지난 정부에서 2조4000억원에 그쳤던 공익직불금을 5조원으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은 큰 기대를 모았다. ‘중소가족농을 두텁게 지원’ ‘실제 농사짓고 있는 농업인 누구나 직불금 받도록 제도 개선’ ‘농지보전’ ‘식량주권’ ‘식량자급률 향상’같은 워딩이나 ‘청년농 3만 명 육성’ ‘마을주치의제도 도입’ 같은 약속도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 핵심공약 이행 기대했지만
농정철학 부재 아쉬움 불구
‘공익직불 5조’ 핵심공약 각인
직불금 사각지대 해소 실현
윤 후보의 공약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농정철학이 안 보인다고 했지만, 공익직불제 5조원으로 2배 확충이라는 간결한 공약은 확실히 각인됐다. 또 그가 선거 과정에서 보인 조속한 쌀 시장격리 요청 등 쌀값 안정에 대한 관심, 농정과 예산을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은 나름의 기대를 갖게 했다.
선거전이 한창이던 2021년 12월은 쌀값 폭락, 러-우크라 전쟁으로 인한 생산비 폭등에 따라 농가 경영안정이 큰 이슈로 떠오른 시기다. 당시 정부는 쌀값 하락에도 양곡법 상 시장격리가 의무가 아니라 임의조항이라며 격리를 미루는 바람에 역대급의 폭락을 불러오고 있었다.
이 때 윤석열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는 30만 톤의 쌀 시장격리에 나서주기 바란다”며 “농민들의 애타는 심정을 외면하지 말고 즉각 과잉 생산된 쌀을 추가 매수해서 쌀값 하락을 막아야 한다”고 했었다. 특히 그는 “이미 양곡관리법 상 기준으로 시장격리 요건은 충족된 상태”라며 “농민의 적정한 소득 보전은 국민의 가장 중요한 먹거리인 쌀의 안정적인 수급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윤석열 후보는 2022년 2월4일 한국농어민신문이 주관하고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가 개최한 ‘선택 2022, 대선후보 농정비전 발표회’에서 “제가 차기정부를 맡게 되면 농업·어업·축산정책과 그 예산을 대통령이 직접 확실하게 챙기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농민들은 윤석열 정부가 공익직불금 5조원 확충, 쌀값 안정 등 핵심공약이라도 제대로 추진한다면 나쁘지 않다는 기대를 가졌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첫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정황근 장관이 임명되고 첫 성과가 나왔다. ‘2017-2019년 기간 중 직불금을 1회 이상 지급 받은 농지’로 제한한 지급요건 때문에 직불금에서 배제된 농민을 구제하는 직불금 사각지대 해소 공약이 실현된 것이다. 2022년 9월 공익직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그동안 지급에서 제외됐던 농민 56만2000명이 지급대상에 포함되고, 이를 위한 3000억 원이 2023년 예산에 반영됐다.
◆ 양곡관리법 논쟁, ‘블랙홀’에 빠지다
민주당 ‘양곡법’ 논의 주도
정부·여당 반대로 정쟁 격화
‘농업 4법’ 개정도 물 건너가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양곡관리법 논쟁은 모든 현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면서 농정을 대립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양곡관리법이 쟁점이 된 것은 ‘자동 시장격리’를 놓고서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새롭게 공익직불제를 도입하면서 쌀 변동직불제를 폐지하는 대신, 쌀 수급 및 가격안정을 위한 장치로 양곡관리법 시행령과 고시에 구체적인 시장격리 요건을 담았다. 이에 따르면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단경기 또는 수확기 가격이 평년보다 5% 이상 하락하면 초과 생산량만큼 시장격리를 하도록 했다. 법 개정 논의 당시 이 조항은 조건이 맞으면 시행하는 ‘자동시장 격리’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2021년 수확기, 풍년으로 쌀 생산량이 크게 늘었고, 초과 생산량이 예상 소비량의 3%를 훌쩍 넘어 발동요건이 충족됐지만, 당시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은 시장격리를 하지 않았다. 쌀값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고, 법조항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강행규정이 아니라 임의규정이라는 이유를 댔다. 결국 쌀값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버티던 정부가 2022년에 들어서 수차례 시장격리를 했지만,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역대급의 가격폭락을 맞게 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민주당은 ‘시장격리 의무화’ 규정을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을 추진한다. 농식품부가 기재부의 눈치를 보느라 제때 시장격리를 하지 않으니 법률에 명문화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민주당이 주도한 양곡관리법 개정 논의는 정부·여당의 반대로 정쟁으로 비화됐고,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4월4일 거부권을 행사, 대립으로 치달았다. 민주당은 다시 양곡법 외에 가격안정제를 담은 농안법, 농업재해의 보장 수준을 높이는 재해대책법, 재해보험법 등 농업 민생 4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지난해 12월 19일 한덕수 국무총리의 거부권 행사로 또 무산됐다.
◆ 쌀, 천덕꾸러기 매도 ‘깊은 상처’
쌀 수급안정 실질적 논의 실종
‘농업 망치는 농망법'' 거친 언사
재원낭비 여론 우후죽순 확산
문제는 이러한 정쟁 과정에서 문제의 본질인 쌀을 비롯한 농가 경영안정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는 실종되고, 농업·농촌·농민에 깊은 상처만 남겼다는 점이다. 주식인 쌀농사가 공공재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져 혈세를 낭비하는 천덕꾸러기로 매도되고, 농민들의 공익적 역할이 마구잡이로 훼손됐다.
특히 정부는 쌀 의무매입 시 구조적 공급과잉 심화, 재정 부담, 미래 농업투자 감소로 이어진다며 반대했다. “남는 쌀 강제 매입법” “농업을 망치는 농망 4법” “재해대책법은 법 자체가 재해 수준”이라고 하는가 하면 “농촌의 미래가 없다”, “미래세대에 죄를 짓는 일”이라는 표현도 썼다(송미령 장관). “시장격리에 1조원이 들어가는데, 이 돈이면 30억원 짜리 스마트팜 300개를 지을 수 있다”며 “매년 청년농 3000명을 양성할 수 있는 재원이 낭비되는 셈”(정황근 전 장관)이라고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양곡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농정 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 이라고 했다.
정부가 유례없이 거친 언사로 농업 4법을 공격하는 동안 많은 언론이 정부 발표를 빌어 쌀에 대한 지원이 과다하다는 논리를 확산시켰다. 이 틈을 타고 농업에 대한 지원이 과다하다, 혈세 낭비다, 농지에 대한 규제를 풀자는 논리가 우후죽순으로 번졌다.
◆ 농민단체 편 가르고 협치 사라져
협치 뒷전, 편가르기 급급…일방통행에 파열음 계속
건설적인 토론공간 사라지고
농정은 관료들에 내맡겨져
벼 재배면적 8만ha 감축 도마
수입안정보험도 졸속 논란
이런 와중에 정부 입장에 찬성이냐, 반대냐를 기준으로 농민단체와 전문가들을 갈라치기 하는 행태도 반복됐다. 위기의 시대에 쌀 수급안정, 농가 경영안정을 놓고 협치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기는커녕 갈라치기가 난무하면서 건설적인 토론공간은 사라지고 말았다. 대학교수들이나 연구자들도 여야 대치 상황에서 소신 발언을 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협치가 사라진 공간에서 농정은 관료들이 주도했다. 그러나 농정 방향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도, 국회 심의 과정에서 여·야의 토론도, 농민들과의 소통도 실종된 상태에서 추진된 일방통행식 정책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양곡법 개정 논란 속에 정부는 우리나라 쌀산업이 구조적 공급과잉 상태로, 시장격리에도 쌀값 불안정이 반복되고 있다며 지난해 12월 ‘쌀산업 구조개혁 대책(25~29년)’을 수립, 올해부터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시·도별로 목표치를 할당해 총 8만ha의 벼 재배면적을 감축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는 우리나라 벼 재배면적의 11.5% 규모로, 갑작스런 대규모 감축 계획에 현장의 반발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는 정부가 연간 40만8000톤의 의무 수입쌀은 놔두고 쌀값 하락의 책임을 농민들의 과잉 생산 탓으로 돌리며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일방적으로 감축목표를 정하고는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불만도 크다. 말로는 자율감축이지만 실적에 따라 공공비축미 수매에 차등을 두는 방식도 강제성 논란이 일고 있다.
타작물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생산 기반 정비나 수매대책 등 소득안정 방안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전략작물직불제로 논콩 재배가 늘어나면 콩 가격이 대폭 하락하고 농가 수익이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우려다.
정부가 민주당의 농업 4법에 반대하면서 대안으로 내놓은 농업수입안정보험 전면 도입은 그동안 시범사업만 10년 넘게 하던 사업을 갑작스레 확대하는 제도여서 졸속 논란에 휩싸였다. 전면 도입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품목과 지역이 제한되는 데다,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채소가격안정제가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채소가격안정제 확대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가입물량을 2021년 16%에서 2027년 35%로 확대한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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