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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기온 상승으로 병해충 기상도 변화
작물 생산성에 악영향
더 빨리, 더 많이
기후붕괴에 적응한 낯선 병해충 등장
과거 대비 여름 20일 늘고
겨울은 22일 짧아져
해충 출현 시기 빨라지고
세대수 늘어나 밀도 증가
동남아·중국발 비래 가능성 높아져
방제시기 앞당기고 초기부터 전문약제로
예방적 방제 철저히 해야
세균성 병해는 저항성 품종으로 대체
항생제 사용한 방제 철저히
상처 통해 균 침입하지 않도록 하는 등
종합적 방제 나서야
농수축산신문 이문예 기자 2025. 4. 8
“실시간으로 기후붕괴(climate breakdown)가 일어나고 있다. 파멸로 가는 이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럽연합(UN) 사무총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메시지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가 이제는 기후위기(climate crisis)로 접어들었고 점차 기후붕괴로까지 치닫고 있다며 전 세계를 향해 강력하게 경고한 것이다.
기후변화, 기후위기는 곧 농업의 변화, 농업의 위기로도 읽힌다. 농업은 아주 작은 기후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특히 병해충 발생양상의 변화는 가장 눈여겨 봐야 할 포인트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병해충 분포시기와 지역 등이 변화하면서 작물의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농업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버릴 수도 있어서다.
기후변화와 달라지는 병해충 기상도, 우리 농업은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까.
# 평균기온 상승...길어진 여름·짧아진 겨울
지구가 점점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지난해 세계기상기구(WMO)가 발표한 ‘2024년 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전 지구의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약 1.54도 상승했다. 역대 가장 더운 해였다.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은 14.5도로, 113년 관측 이래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평년 기온(12.5도)을 2.0도나 웃도는 등 역대 가장 더웠던 2023년 13.5도의 기록을 1년만에 또 다시 넘어선 것이다.
1912년부터 2020년까지 109년간의 기후변화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0년간 평균기온은 과거 30년에 비해 1.6도 상승했다. 폭염일수는 하루 늘었으며, 열대야 일수와 온난야(일최저기온이 기준기간의 90%를 초과한 날의 수)는 각각 8.4일, 8.5일 늘었다. 반면 한파일수와 한랭야(일최저기온이 기준기간의 10% 미만인 날의 수)는 각각 4.9일, 21.3일 줄어 과거에 비해 더운 날은 늘어나고 추운 날은 줄었다. 여름의 길이가 20일 늘고 겨울은 22일 짧아졌다는 것도 수치로 확인됐다.
기온만큼 강수량에도 변화가 감지됐다. 최근 30년간 강수량은 과거 30년에 비해 124mm가 증가했다. 10년 주기로는 강수량이 16.3mm 증가했지만 강수일수에는 변화가 없었는데, 이는 같은 시간 단위 동안 강우의 양은 더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 ‘역대급’ 이상기후 기록 남긴 2024년
지난 1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2024년 이상기후 보고서’에는 ‘역대 1위’, ‘이례적’이라는 수식어가 수시로 등장하며 기상 관측 역사에 새로운 기록들을 남겼다.
지난해 4월에는 30도 이상의 고온이 나타나기도 하며 4월 평균기온과 최고기온이 1973년 기상청 본격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
여름철 평균기온은 25.6도로 평년에 비해 1.9도 높아 역대 1위, 열대야일수도 20.2일로 평년의 3.1배에 달해 역대 1위를 기록했다. 여름철 더위가 초가을인 9월까지 이어지면서 9월에는 평균기온, 최고기온, 최저기온이 각각 24.7도, 29.6도, 20.9도로 모두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폭염일수와 열대야일수는 각각 6일과 4.3일로 평년 0.2일, 0.1일과 비교해 이례적으로 많았다.
장마철에는 강수가 집중됐다. 장마철 전국의 강수량은 474.8mm로 평년 356.7mm보다 많았고, 특히 여름철 강수 중 78.8%가 장마철에 내리면서 장마철 강수량 비율이 역대 가장 높았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기상으로 농업 피해도 적지 않았다. 1~2월 한파, 5월 일조량 부족과 우박, 7~9월 폭염과 이상고온, 11월 대설 등으로 농업재해가 연속적으로 발생했으며, 9월 집중호우로만 2만7900ha의 피해가 발생했다. 또한 벼 생육기에 고온현상이 지속돼 전국적으로 1만7732ha에서 벼멸구 피해가 발생했다.
# 기후변화로 농업 생태계 직·간접적 영향
이처럼 기후변화는 자연재해나 작물의 생육상황 교란 등으로 작물의 수량과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토양의 성분 변화와 병해충 등 주변 생물의 변화를 유발해 농업 생태계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식물병의 발생에 관여하는 3대 요소인 기주, 병원체, 환경의 상호관계를 ‘병 삼각형’이라 일컫는데, 이 중 환경에 속하는 온도, 습도, 강우는 병원균의 생육과 침입, 확산에 영향을 미친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준호 교수 연구팀이 2017년 기후변화(RCP)시나리오에 따른 농작물 병해충 피해 변화를 모의연구한 결과에선 현재 주요 지역에서 2~4등급의 위험도를 보이는 사과 갈색무늬병의 경우 2030년대 이후부터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위험도가 매우 높을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 서해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1등급 위험도를 보이는 배 검은별무늬병도 2030년대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4등급 이상의 매우 높은 위험도를 나타낼 것으로 예측됐다.
기후변화는 해충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기온 상승으로 해충의 생육에 적절한 환경이 조성되면 알에서 성충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생존율을 높여 해충의 밀도 증가로 이어진다.
농촌진흥청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를 이용해 기후 온난화에 따른 해충 생태를 조사한 결과 겨울철 평균 기온 상승에 따라 해충의 성충 출현 시기가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해충 발생이 빨라지면서 기존에 2~3세대까지 발생했던 노린재가 4세대 이상 등장하는 등 연간 출현 세대수도 늘어났다. 기온 상승으로 노린재 발육에 필요한 저온한계온도(발육이 되지 않는 생존최저온도)와 유효적산온도(곤충 발육에 유효한 총 온량)에 이르기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이 교수 연구팀은 볼록총채벌레의 경우 현재 내륙지역에서 4~5세대가 발생하지만 2090년에는 9~13세대까지, 갈색날개매미충도 현재 1세대에서 2090년에는 지역에 따라 1~3세대까지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노린재류의 경우 현재 남해안 등지에 주로 발생하는 호리허리노린재와 가로줄노린재 등 일부 노린재가 2070년이면 국내 전지역으로 확산할 수 있으며, 진딧물류의 경우 기후변화에 따라 봄~가을 개체 확산이 유리해져 번식이 수월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 낯선 병해충의 토착화...새로운 위험 직면
전에 없던 혹은 과거에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던 식물병과 해충이 농업 현장의 골칫거리로 떠오르기도 한다.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고추 흰비단병은 2002년 국내에선 처음 보고됐지만 현재는 전국 고추 재배지에서 발생하며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 또한 2017년 경기 화성지역의 콩에서 발견된 균핵마름병은 최근 고추에서도 다수 발견됐는데, 연구자들은 생장적온이 35도로 고온이고 토양 수분이 낮은 곳에서 발병하는 병이어서 기존 병해와도 다른 특징을 갖는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기온 상승에 따라 따뜻한 월동환경이 만들어지고 식물기간(일 평균기온 5도 이상의 연속일수) 연장, 장마 변동 등의 변화가 나타나면 월동해충의 발생 증가, 토착화 가능성 확대, 열대성 병해충의 출현 등 유해 생물군의 돌발적 발생과 규모화를 일으킨다.
감자뿔나방의 경우 1960년대에 국내에 유입돼 1978~1979년 조사에선 남부지역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됐으나, 2009~2012년 조사에서는 중북부 지역에서도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자뿔나방의 서식지가 북상한 것인데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평균 기온의 상승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대표적 비래해충 중 하나인 꽃매미는 2005년 충남 천안에서 발견된 이후 밀도가 증가하기 시작해 이제는 서울과 경기 남부 등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2060년경이면 겨울 최저기온 상승의 영향으로 현재는 서식 부적합지로 알려진 강원도 산간지역을 포함해 우리나라 전 지역이 꽃매미 서식 적합지역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김동순 제주대 식물자원환경전공 교수는 “최근 동남아나 중국 남부지역의 기온이 오르면서 해충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양쯔강 주변의 상하이까지 빠르게 북상해 한반도로 비래할 확률이 높아지는 등 과거와 다른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며 “과거 왕담배나방, 파밤나방 등도 우리나라에 월동하며 토착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발생양상을 봤을 때 토착만으로는 해석이 안되는 부분들이 있어 이 같은 해충 발생의 상당수가 비래에 좌우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개체수 증감에 영향...생태계 교란 우려
최근에는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CO₂)의 농도 증가 자체가 해충의 생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지난해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이산화탄소 농도를 400~1000ppm까지 단계별로 달리하며 해충의 수명, 산란기간, 산란개체수 등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채소, 꽃, 과일 등에 바이러스 병을 옮기는 복숭아혹진딧물의 경우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질수록 산란기간이 길어지고 암컷 한 마리당 새끼 수가 크게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400ppm에서 산란기간은 9.7일이었지만 1000ppm에서는 11.7일로 늘어났고, 같은 농도에서 암컷 당 새끼 수도 40.3마리에서 61.2마리로 크게 증가했다.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도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에 따라 애벌레 발육 기간이 3.9일 줄어 개체 무리의 순수 증가율이 9.4% 증가했다.
반면 왕담배나방은 수컷의 성페로몬 인식 능력이 12.1% 줄어들고 교미율이 15.6% 감소하는 등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가 오히려 개체 수 감소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기후변화가 해충의 개체 수 증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감소로 나타나기도 하며, 이는 곧 무리 전체 구조와 먹이사슬에 영향을 줘 장기적으로 생태계 교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 더욱 중요해진 선제적 예방 방제
결국 농업현장에서도 환경변화에 발맞춰 기존과는 다른 병해충 방제·접근 방식이 요구되고 있다.
박성호 경농 마케팅본부 살충제PM은 “과거보다 기온 상승으로 해충의 발생 시기가 당겨짐에 따라 예찰 시기도 빨라져야 한다”며 “해충이 다발생 했을 때 방제하기 보다는 발생 초기에 충분한 물량으로 확실히 방제해야 추가적인 방제 활동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비래해충의 경우 교차저항성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약제는 지양하는 등 약제 선별을 제대로 해 방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재춘 신젠타코리아 기술마케팅 팀장도 선제적인 해충 방제를 강조했다.
그는 “1세대 활동 시점이 빨라지고 번식횟수가 늘어나면서 월동 개체의 밀도도 늘어나는 경향이 포착된다”며 “이 경우 이듬해 월동에 성공한 개체 수 또한 많아지기 때문에 초반부터 피해가 증가할 수 있어 전문약제를 통한 예방적 방제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효과적인 식물병 관리 방법도 제시했다.
이 팀장은 “가장 관심 있게 봐야할 탄저병과 세균성 병해 모두 상대적으로 생육온도가 높고 강우 시 전파속도가 빨라 향후 더 극심하게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탄저병의 경우 작용기작이 다른 약제를 번갈아 사용하는 교호살포를 잘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세균성 병해의 경우 저항성 품종으로 대체하고 항생제를 사용한 방제를 철저히 하며 상처를 통해 균이 침입하지 않도록 바람이 심한 곳에선 방풍망을 설치하는 등 종합적 방제에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Interview] 김동순 제주대 식물자원환경전공 교수
“해충 발생 국제화 ‘가속’...기존 방제 매뉴얼 한계, 다각적 분석·대응 시급”
“해충의 발생 양상 변화를 살펴볼 때 천적 밀도의 감소, 비래해충의 증가 등 여러 관점에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요.”
김동순 제주대 식물자원환경전공 교수는 겨울이 따뜻해지고 여름이 길어지면서 해충 번식 사이클 수가 증가해 밀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단순히 이해하기 쉽지만 그밖에도 다양한 원인들이 존재할 수 있는 만큼 다각도의 분석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가장 먼저 해충과 천적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충의 생활사 변화로 해충과 천적의 생활사가 본래처럼 연동되지 못하고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 천적의 역할이 감소해 해충의 밀도가 증가하는 상황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해충의 발생에는 천적이 완충작용을 하는데 특정 해충의 대발생 사례가 많이 나온다는 것은 천적의 작용이 미약해진 것 아니냐는 추정이다. 과거 외국의 사례지만 천적 밀도 감소 시 해충이 대발생한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봄철 해충의 집단 비래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부터 토착해충이라 여겨졌던 일부 해충들의 경우에도 사실상 비래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토착해충으로 분류되던 ‘왕담배나방’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번데기로 월동해 생활사가 진행된다는 것이 증명됐지만 그것만으로는 국내 발생량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며 “비행능력이 뛰어난 왕담배나방이 봄철 중국에서 비래했다고 가정했을 때 비로소 국내 발생상황이 설명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해충 발생이 점점 국제화됨에 따라 이제는 국내에서만 발생 원인을 찾고 대응하기는 어려워졌다”며 “우리나라는 지금껏 해충이 비래한다는 가정 없이 방제 매뉴얼을 이야기 해왔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이렇게 새로운 해충들의 등장이 향후 식량안보에도 위협이 될 수 있는 만큼 엄중한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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