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채소값 하락세가 올해 과일시장까지 번져
세월호참사에 국민 지갑닫아…농산물시장 ‘급랭’
배추·양파·단감 등 과잉생산으로 산지폐기 속출
농협 등 가격지지 역부족…수급대책 재점검 여론
올 한해 농산물 유통시장은 이 단어들과 함께 살다시피 했다. 농업인은 물론이고 도매시장·공판장·유통업체 등 농산물로 먹고 산다는 출하·유통주체들이 1년 내내 계속된 가격 하락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더욱이 지난해 배추·무·고추·마늘·양파 등 주요 채소류로부터 촉발된 가격 하락세가 올해는 채소류시장 뿐만 아니라 과일시장으로까지 옮아가면서 농산물시장 전체가 2년 연속 침체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렸다.
새해 벽두 제주산 월동채소의 값 하락은 2월 출하를 개시한 참외시장으로 이어졌고 4월 들어선 수박·토마토 등으로 확산됐다. 과일시장의 변수였던 미국산 수입오렌지의 현지 작황 부진 소식은 시장에 모처럼 기대감을 갖게도 했다. 하지만 4월16일 날아든 세월호 참사 소식은 국민들의 지갑을 닫게 했고, 농산물시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각종 행사가 줄줄이 중단·취소되면서 농산물값은 급락했고, 6월 브라질월드컵과 9월 인천아시안게임 등 잇단 호재도 가격을 회복시키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봄철 이상고온으로 개화가 빨라진데다 38년 만에 가장 이르다는 추석(9월8일)을 겨냥해 조기 출하붐이 일면서 대부분의 과일 품목들이 시장에 한두달 일찍 선보인 것도 올해의 특징이었다. 윤달이 든 해는 출하가 빨라진다는 속설이 시장관계자들 사이에서 새삼 회자되기도 했다. 여기에다 공급량 조절 역할을 담당해 온 기후마저 대체로 양호해 ‘풍년의 역설’이요 ‘눈물의 풍작’이란 말들이 언론을 장식했다. 양파 등 기후 영향을 크게 받는 노지채소는 가뭄이나 장마·태풍 등이 거의 발생하지 않은 때문인지 생산량이 크게 늘어 ‘양파산성’이란 신조어도 낳았다.
출하 작업비조차 건지지 못해 밭을 갈아엎는 산지폐기도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10월엔 배가 과일로는 이례적으로 정부의 시장격리 대상 품목에 포함됐고, 이달 초엔 경남의 단감 농가들이 자율 폐기를 실시해 심각한 상황을 반영했다.
생산농가의 아픔 못지않게 관련 유통주체들도 ‘고난의 행군’을 하긴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김장철부터 계속된 배추 가격 침체의 고리가 그해 겨울배추에 이어 올해 하우스 봄배추, 여름철 고랭지배추, 최근의 김장용 가을배추 등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선급금 지급 여력이 바닥난 일부 산지유통인들이 매취사업을 포기하고 도주하는 사태 또한 속출했다.
서울 가락시장 등 주요 도매시장에선 참외·수박·복숭아·포도 등 품목 가릴 것 없이 출하량이 줄줄이 늘면서 새벽 2시께 시작한 과일류 경매가 점심시간을 넘겨 오후 4~5시까지 이어진 경우가 다반사였고, 지친 하역노조를 대신해 청과법인 임직원과 중도매인들이 직접 하역·배송하는 진풍경도 잇따랐다.
농협 공판장들에게도 올해는 2000년대 들어 사실상 거의 처음으로 손익 역조라는 성적표를 받아쥐는 슬픈 해로 기록되게 됐다. 취급물량은 늘었지만 가격이 너무 낮은 데 따른 것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 역시 3년째 계속된 영업규제 바람과 얼어붙은 사회 분위기라는 벽에 막히면서 감귤 등 산지에 예약해 놓은 발주를 줄줄이 취소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정부는 주요 품목에 대해 시장격리 등 긴급 수급안정대책을 잇따라 발표하는 등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한발 늦은 대책이라는 평가와 함께 ‘백약이 무효’라는 반응을 들어야 했다. 농협 등 생산자단체 또한 고비마다 자체 격리, 가공품 개발, 상생마케팅 전개 등 공급과 수요를 조절하는 데 총력전을 펼쳤지만 기대했던 가격 회복 기운을 맛보지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됐다.
거의 모든 품목에 걸친 가격 하락세는 더 이상 국내 수요만으로는 공급을 대체할 수 없다는 상황을 보여 주는 것이므로 수출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도 쓰였다. 하지만 밀어내기식 수출은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해 차제에 장기적인 수출기반을 구축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와 함께 2년여에 걸친 가격 하락은 1~2인 가구가 급증하는 국내 소비시장이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완전히 재편된 것을 시사하는 만큼 산지에선 재배와 출하 전략을 새롭게 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었다.
[농민신문] 2014 유통 결산(중)우려와 기대 공존했던 도매시장 
[농식품부] 농관원, 김장철 배추김치 등 원산지 표시 위반업체 86개소 적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