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산불, 이제는…] (1)헬기가 진화 ‘핵심 자원’
보유 헬기 50대중 40대만 운용
러시아산은 ‘부품 조달 차질’
잦은 기기결함…정비인력 부족
대형기종 확충·군헬기 활용 필요
농민신문 지유리 기자 2025. 3. 31
3월21일 경남 산청에서 시작해 동시다발로 확산하며 전국 11개 시·군을 집어삼킨 ‘괴물 산불’이 열흘(213시간) 만에 꺼졌다. 서울면적의 80%에 해당하는 산림 4만8000여㏊를 태우고 30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산불이 남긴 상처는 그만큼 넓고 깊다. 특히 피해지역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촌마을과 영농 현장은 단기간에 회복을 기약하기 어려운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산불 이후 피해지역의 복구와 수습 방안, 나아가 기후위기 시대 산불 대책의 전환 방향을 연재 기획으로 짚는다.
산불 초기 진화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며 피해를 키운 배경으로 산불진화용 헬기(이하 산불헬기)의 역량 부족이 지목되고 있다. 갈수록 산불이 대형화·장기화·상시화되는 만큼 장비·인력 확충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물을 투하할 수 있는 산불헬기는 대형 산불 진화의 핵심 자원으로 꼽힌다. 산림청은 3월 기준 총 50대의 산불헬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번 화재 현장에 투입된 것은 채 40대가 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산불헬기가 제때 운용되지 못한 이유로 노후화에 따른 잦은 정비문제가 꼽힌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정읍·고창)실에 따르면 산림청 소속 산불헬기 가운데 33대가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다. 30년 을 초과한 것도 12대에 달한다. 특히 주력으로 운용하는 러시아산 카모프(담수 용량 3000ℓ) 29대의 평균 기령은 25년이다. 이 중 8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부품을 조달받지 못해 지난해 상반기부터 가동 불능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림청 헬기의 평균 가동률은 2020년 82.2%에서 2024년 70.1%로 떨어졌다.
산불헬기 공백은 앞으로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카모프는 1995∼2009년에 걸쳐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내구연한 등을 고려하면 2030년부터 사용이 제한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림청이 보유한 담수 용량 8000ℓ급 초대형 헬기(S-64) 7대는 1967∼1968년 제작된 후 부품을 교체한 ‘재제작 제품’으로 고장이 잦다. 이번 현장에도 2대는 정비가 안돼 출동하지 못했다. 윤 의원실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21∼2024년 초대형 산불헬기가 기기 결함으로 작전을 수행하지 못한 사례가 32건에 이른다.
인력난도 심각하다. 산림청 소속 헬기 조종 인력은 1기당 2명에 그친다. 소방청(4.29명)·경찰청(3.94명)의 절반 수준이다. 정비 인력도 처지는 비슷하다. 2024년 기준 총인원이 84명인데, 청주대학교가 2022년 산림청 의뢰로 작성한 ‘산림항공 정비조직 활성화를 위한 정비체계 개선 연구용역’에선 적정 정비 인력으로 105명을 제시했다. 2020년대 들어 대형 산불이 빈번하고 길어지면서 산불헬기 인력의 업무 피로도 누적이 심해지고 있다.
산불헬기 부실 사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꾸준히 지적됐고, 산림청은 ‘2023년 전국 동시다발 산불백서’에서 문제를 인지하고 대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산불에 신속 대응하려면 담수량이 큰 대형 헬기(5000ℓ 이상) 중심으로 전환하고 야간 산불에 대응 가능하도록 최신 항법장치, 자동 조종장치 등이 탑재된 헬기를 도입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또 “동시다발 산불에 대비해 12개 산림항공권역당 최소 대형 헬기 2대 이상을 확충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 백서가 작성된 지 2년째지만 대형 산불헬기는 여전히 7대에 불과하다. 예산 부족으로 한대당 수백억원에 달하는 산불헬기 구입은 요원한 상황이다. 2025년 산림청의 ‘산림헬기 도입·운영’ 예산은 938억5800만원으로 전년도(1123억4400만원)보다 19.7% 삭감됐다.
고기연 한국산불학회장은 “미국이나 일본 등 전세계적으로 대형 산불이 자주 발생하면서 새 산불헬기 도입이 쉽지는 않다”면서 “대형 산불헬기를 도입하는 데 3년이 걸리는데, 이 기간 동안이라도 적극적으로 군 헬기를 활용하는 방안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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