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널뛰기·밭 갈아엎기 매년 되풀이되는데 당국은 수수방관
해남에서 10년째 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 정모(44)씨는 다음주에 배추밭을 갈아 엎기로 했다. 어차피 인부들을 동원해 배추를 수확한 뒤 차를 빌려 공판장으로 실어다 파는 것보다 산지에서 배추를 폐기 처분하는 게 오히려 이익이 된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정씨는 3년을 주기로 하는 배추 ‘도박’에 나섰지만 ‘대박’을 터트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정씨가 올 가을 배추를 재배한 면적은 3만3057㎡. 밭 임대료와 인건비, 비료 등 3000만 원을 들여 배추를 길렀지만 정씨가 손에 쥐이는 돈은 고작 시장격리에 따른 보상금 180만 원과 일부를 내다 팔아 벌어들인 1000만 원 남짓으로 투자금도 회수 못 하는 처지다.
농도(農道) 전남지역 내 배추농가들의 ‘배추밭 갈아엎기 사태’가 올해도 어김없이 벌어질 태세다. 매년 ‘배추밭 갈아 엎기’가 되풀이되고 있지만 배추 재배 면적이 줄어들기는 커녕, 재배 농가는 더 늘어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수십년째 배추값 폭락 사태가 반복되면서 농민들 사이에서는 ‘2∼3년에 한번만 ‘대박’을 터트리면 된다’는 한탕주의가 파다하게 퍼져 있는 실정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은 뿌리깊게 자리잡은 지 오래다.
11일 전남도에 따르면 전남지역 올 가을배추 재배면적은 4003ha로 ▲2012년(2937ha) ▲2013년(3564ha)와 비교해 각각 36.3%, 12.3%씩 증가했다. 배추값이 폭락 사태가 끊이질 않지만 농민들은 양파나 마늘 대신 배추에 사실상 ‘올인’ 하고 있다. 전남도가 농민을 상대로 재배 의향조사를 한 결과, 마늘·양파 재배 면적은 전년에 비해 8∼10%씩 감소한 반면, 올 가을 배추 재배 면적은 전년에 비해 12.3% 올랐다.
배추값 폭락 및 갈아엎기 사태가 잇따르는데도 배추 농사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잘 걸리면 대박’이라는 투기 심리가 한몫을 하고 있다.
배추 가격은 포기당 ▲2010년 3300원 ▲2011년 890원 ▲2012년 3381원 ▲2013년 1530원 ▲2014년 1091원으로 2∼3년 주기로 크게 올랐다. 결국 ‘대박’ 시기를 잘 맞추면, 본전을 뽑고도 남을만한 수익을 낼 수 있는데다, 배추 대신 심을 작물도 마땅치않고 다른 작물에 비해 재배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전남도가 매년 농가를 대상으로 재배의향조사를 거쳐 작물별 적정 재배량을 권하고 있지만 농민들 ‘투기’ 심리를 잠재울만한 수준은 못된다. 배추를 대체할 작물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형식적인 ‘적정 재배량 권고’만으로는 농민들 마음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수십년 째 달라지지 않는 배추값 파동 사태에 따른 정부의 안일한 정책도 한몫을 했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은 지난 2011년 “배추값 폭등 같은 농산물 가격 파동은 절대 없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산지에서 배추를 폐기하는 농민의 마음은 이해되나 농촌 고령화로 농민들이 그간 재배해왔던 작물 대신 정부나 지자체가 권고하는 재배를 갑자기 재배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면서 “지자체와 함께 농작물 수급 안정을 위한 근본 대책 마련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기웅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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