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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시대 변해도 원산지 표기 의무는 ‘2008년 그대로’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5-03-23 조회 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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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여주에 위치한 길목식당의 메뉴판. 삼계탕에 쓰이는 모든 재료의 원산지가 ‘국내산’임을 알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는 지난 2024년부터 국산우유를 사용을 협약한 카페 등을 대상으로 인증점 표지와 함께 원재료, 홍보, 메뉴개발등을 지원하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육류 빼면 밥쌀과 배추김치 속 배추·고춧가루가 전부

          새로운 음식에 대한 국민 ‘알 권리’, 이제라도 챙겨야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2025. 3. 23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의 면소재지 율곡리에 위치한 ‘길목식당’은 삼계탕을 파는 근교의 작은 식당이다. 이제 총 인구가 7000명도 안될뿐더러 그 대부분이 노인인 대신면에서 한 그릇에 1만4000원짜리 삼계탕을 파는 이 작은 식당은 놀랍게도 ‘성업’ 중에 있다. 삼계탕집이 구매력 열악한 농촌 상권에서도 버티고 있는 건, 요즘 음식점에서 도통 찾아보기 어려운 놀라운 가치를 지키고 있어서다.

 

  # ''국산 100%'' 고집이 살린 식당

조그마한 가게 내부에는 ‘100% 국산 농산물만 사용한다’는 내용의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 가게가 국내산 농산물만 사용하는 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그냥 수입이 싫다’는 경영주 정종희씨 본인의 의지가 가장 컸는데, 그저 손님들에게 당당한 음식을 내놓고 싶었다고. 두 번째로 음식을 만드는 자신의 정체성은 메인 메뉴가 아닌 김치에 담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정씨는 “우리나라 사람은 김치는 평생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는데, 삼계탕도 중요하지만 김치랑 깍두기에는 정말 인생을 걸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라며 “한국에서 삼계탕은 어떤 집에서나 비슷하게 삶고, 육수를 낼 수 있지만 김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같이 일하는 동생의 시어머니가 생산하는 농산물을 가게로 곧장 들이던 것도 계기로 작용했는데, 그가 농사를 그만두신 지금은 일부를 국내산으로 골라 구매하고, 일부는 농가와 계약재배하는 식으로 식재료를 들인다. 전부 국내산을 쓰고 있으니 원산지 표시판에는 ‘수입산’을 적을 일도 없을 뿐더러 거기에 의무적으로 적을 필요가 없는 식재료 역시 숨길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이 가게는 보통의 음식점에서 통상적으로 보이는 정형화된 원산지 표시판이 따로 없다. 상기한 현수막과 더불어 ‘배추김치, 깍두기, 고춧가루, 소금, 쌀, 들깨, 동충하초, 삼계탕 속재료 찹쌀, 인삼, 대추, 마늘, 모든 재료는 국내산입니다’라는 내용이 벽의 큰 메뉴판에 글귀로 같이 쓰여 있을 뿐이다.

주변의 황폐해진 상권처럼, 이 동네 장사는 남들보다도 고된 노동과 이를 뒷받침할 수도 없는 수익 탓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게를 지탱해낸 것 역시 결국 오랫동안 지키려 애썼던 그 가치였다. 국내산 농산물 사용을 고집하며 10년 20년을 버틴 끝에 가게는 10년 전쯤 자리를 옮겨 그래도 열 개 남짓의 테이블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고, 이제는 ‘알아주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알아서 가게를 찾아온다. 블로그나 유튜브로 그 흔한 홍보 한 번 해본 적 없지만 여주 전역은 물론이고 이천, 원주, 성남, 구리 등 인근 지역, 멀리선 서울에서도 들러 삼계탕을 먹고 간다고 한다. 끼니의 해결을 넘어 말 그대로 이렇게 만드는 음식이 좋아서 오는 사람들이기에 정씨는 자연스레 많은 손님들과 소통하며 이 일의 의미를 확인했고, 허리디스크를 앓으면서도 지금껏 김치를 계속 담그고 있다.



  # 우리의 것, 김치 하나 제대로 못 담는데

길목식당은 작은 식당 한 곳이 국산 김치 하나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종류의 농산물을 들여야 하는지, 또 그로써 국내산 농산물 소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가늠할 만한 사례다. 5월에서 9월에 이르는 ‘성수기’를 기준으로 이 가게는 2주마다 날을 잡아 새벽 일찍부터 배추김치를 담근다. 한 번 담글 때마다 배추를 50포기나 구비하는 엄청난 양으로, 4인 가구 기준으로 보통 20포기 안팎의 김장김치를 담근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다섯 집이 1년 먹을 김치를 매달 생산하는 셈이다.

당연지사 배추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때 양파도 15kg 들이 한 망을 사서 좋은 부위는 식탁에 생양파로 내고, 겉과 중앙부분은 빻아 김치에 쓴다. 배추김치를 담그지 않는 주에는 김치양념을 준비하면서 큰 무 기준 70개를 들여 배추김치와 함께 내는 깍두기를 만든다. 김치를 세 번 담글 때마다 마늘도 20kg씩은 들여야 하는데 큰 것은 삼계탕에, 마찬가지로 작은 것은 김치에 쓴다. 그밖에도 배추김치에는 담글 때마다 늘 쪽파 3~4kg이 들어가고, 삼계탕에 들어가는 들깨도 국내산을 찾아 직접 볶고, 갈아 쓴다.

이 우수 사례를 그대로 뒤집어 이야기해보면, 오늘날 외식 소비자들은 방문한 식당이 사용하는 식재료 대다수의 출처를 모른 채 먹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가 정하는 그대로 표지를 만들면, 이 식당에서 실제 사용하고 있는 농축산물이 10종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기입할 항목은 쌀, 닭고기, 배추김치 3종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부실한 원산지 표지는 오늘날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아가는 곳곳의 음식점에서 너무나도 쉬이 볼 수 있는 형태다.

이는 농수축산물 29종에 한해서만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는 현행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의 한계 탓이다. 한-미 FTA 타결 등 대폭적 수입개방의 충격이 컸던 축산물의 경우 2008년 표시제 도입 이래 빠른 속도로 대상 축종을 늘려, 현재 계란과 우유를 제외한 대부분의 축산물, 즉 주요 육류는 식육·포장육·가공육 등 형태를 막론하고 원산지 확인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농산물의 경우엔 이야기가 크게 다르다. 현재 음식점에서 원산지 표시 의무가 있는 농산물은 3종(쌀, 콩, 배추김치 - 배추, 고춧가루)뿐으로, 제도 도입 초기 당시 정해진 표기 대상 범위가 17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쌀은 밥쌀로 쓰는 경우에만, 배추와 고춧가루는 김치에 쓰는 경우에만 원산지 표기를 강제하는 구시대적인 잣대 역시 여전하다. 한식의 각종 찬거리에 들어가는 고춧가루뿐만 아니라 ''샤브샤브''나 ''마라탕''에 들어가는 배춧잎, 쌀국수의 면 등은 같은 식재료를 쓰더라도 전혀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제도가 소비자 알 권리 충족과 먹거리 안전을 목표로 하면서도 정보 제공 수준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은 도입 당시부터 줄곧 비판의 대상이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도입 직후 발간한 연구보고서에선 설문 대상 소비자의 75%가, 농림수산식품부가 연구용역을 통해 2012년 조사한 응답자의 88%가 대상품목의 확대를 요구한 바 있다.

그간 품목확대를 위한 사회 제반의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제도가 도입된 직후 서울시는 2009년부터 ‘원산지표시 자율확대 음식점’ 제도를 운영했다. 의무표시 품목 외에도 소비량이 많고 수입 비율이 높은 주요품목 22개에 대해 음식점 스스로 표기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지키는 업소를 인증하는 제도였으나 강제성이 없다는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최근에는 마늘과 양파의 주산지로 유명한 경남 창녕시가 지난날 서울시 사례와 유사하게 마늘과 양파를 추가한 원산지 표시판을 배포하며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정부도 그간 몇 차례 대상품목 확대 가능성을 언급하고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농축산물에선 양고기와 염소고기, 앞서 언급한 고춧가루와 콩 등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현실적으로 단속이 어렵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밀 자급률 5% 확대’를 위해 지난 2020년 발표한 대책에서도 밀의 음식점 원산지 표시 의무 도입을 언급했고, `중국산 알몸김치'' 사건이 있었던 2021년에는 언론 보도를 통해 대상 품목 확대 가능성이 언급되기도 했지만 결국 말뿐인 대책에 머물렀다.

 

  # 앞으로 더 많이 먹을 음식들, 계속 모르고 먹어야 하나

가정 소비량 기준 쌀 소비량이 30년 새 절반으로 줄고 동시에 외식에서도 ‘쌀밥’ 위주의 밥상은 많이 줄었다. 그 자리는 이제 세계화된 밥상이 대신하고 있고, 이 경우엔 그렇잖아도 부족한 정보의 범위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삼계탕처럼 밥과 고기, 배추김치가 주력이 되는 형태의 전통적인 외식은 그나마 상황이 낫다는 얘기다.

샌드위치와 샐러드는 ‘2025년 식품외식산업 전망(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발표하는 ‘한국인이 자주 먹는 일상식 메뉴’에서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10가지 메뉴의 바로 뒤를 이어 각각 11위와 12위의 자리까지 올라와 있다. 채식을 위한 수단으로도 많이 선택받는 이런 음식들은 표시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루 먹는 두 끼 중 한 끼를 ‘밖에서 사먹는다’는 30대 공무원 A씨는 요즘 유명인이 일으킨 원산지 위반사례가 뉴스를 타는 것을 본 이후, 자주 배달 주문하는 샐러드 프랜차이즈의 원산지를 확인해봤다고 한다. A씨는 “채소류들은 배달앱에 쓰여 있지 않고, 브랜드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나와 있지 않아서 고객센터 문의를 한 후에야 국산 혹은 병행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라며 “그것도 그렇다는 말을 그냥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라고 말했다.

본지가 서울 용산역 반경 1km에 위치한 샐러드 전문점 등의 원산지 표기를 확인한 결과, 14곳 가운데 샐러드, 샌드위치 등에 필수 고지 품목 이외 농축산물의 원산지를 매장과 앱 내 구매단계에서 표기해둔 매장은 단 한 곳뿐이었다. 물론 다양한 축종의 고기나 새우 등 각종 해산물, 쌀과 콩의 범주에 들어가는 현미, 두부 등 표시제가 정한 품목의 원산지는 대부분 성실하게 표기했지만, 무엇보다도 ‘녹색채소’를 필수 요소로 기대하고 들어가는 상점에서 그 출처의 중요성이 무시되는 상황은 비현실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한 곳의 프랜차이즈에 실제로 고객센터를 통해 채소류의 원산지를 물으니 “수급 상황에 따라 원산지가 급격히 변경이 될 수 있는 점 안내드린다”는 양해와 함께 양상추와 양파에 대해 ‘국내산, 중국산’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가치가 없는 정보에 가깝다.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에서는 처벌 대상으로 삼는 표기로, 실제로는 수입산만을 제공하면서 국내산은 간판만 걸어놓는 행위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정말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 “주재료에 표기 의무 없는 건 어불성설”

식생활의 변화로 인해 매장에서 많이 섭취하게 된 식품의 대표적인 예를 한 가지만 더 들라고 한다면, 우유를 제하기 어렵다. 농산물에 비하면 비교적 표시제가 잘 다루고 있는 축산물에도 허점이 있으니 바로 계란과 우유인데, 그중에서도 수입산 멸균우유의 직접적 위협이 시작된 우유시장과 관련해선 최근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 개선을 위한 소비자-생산자 간 구심점이 형성되고 있다.

우유는 그 특성상 양식을 다루는 음식점, 제과점, 커피전문점에서 주로 쓰이는데, 점포의 업종신고가 ‘일반음식점’이나 ‘휴게음식점’인 경우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를 적용받아 표기의 의무가 없다. 소비자들은 집에서는 점점 우유를 덜 마시면서도 카페에선 여전히 라떼를 찾는다. 스타벅스 코리아가 메뉴 판매량 순위를 공개한 2009년 이후 카페라떼는 부동의 2위를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다. 그런 라떼를 취급하는 커피전문점의 수가 이제 10만개소를 돌파했는데, 그 수많은 ‘라떼’ 속 우유의 원산지 표시 의무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지금은 소비자 인식이 좋은 국산우유의 점유율이 높아 스스로 국산우유 사용을 표기하는 카페들이 많지만, 수입 우유의 점유율이 늘어날수록 그 고지율은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소비자공익네트워크(회장 김연화)가 지난해 10월 카페 300곳을 대상으로 배달 앱 내 우유 원산지 표시 여부를 조사한 결과 수입산 멸균우유를 활용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14.7%였다. 그런데 원산지를 표시한다고 응답한 62.7% 가운데 수입산 멸균우유를 사용하는 점포, 즉 수입산을 명시하는 비중은 1.6%에 그쳤다.

안혜리 소비자공익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배달앱에서는 전반적으로 표기가 필수로 돼야 하는 식품들도 표기 비중이 오프라인보다 낮은 비율로 나타나는데, 그런 배달앱에서도 우유는 표기 대상이 아님에도 홍보의 목적으로 국산우유 활용 여부를 표시하는 업주를 많이 확인했다”라며 “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국산우유를 활용한 커피나 디저트는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원산지 표시제는 업주들에게도 홍보의 효과를 충분히 줄 수 있고, 이는 국산우유 소비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배경 속에서 낙농가 자조금단체인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회장 이승호, 우유자조금)는 원재료비 상승에 취약한 개인 카페를 지원할 필요성을 느끼고 지난해 100곳에 이어 올해 200곳의 ‘국산우유사용인증’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낙농가의 힘만으론 인증규모의 한계가 있는 만큼 제도 개선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고 대응을 준비 중이다. 우유자조금 관계자는 “점점 커지는 카페 시장에서 우유는 원두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주재료인데 표기 의무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며 “휴게음식점과 일반음식점을 다루는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의 관련 법 개정을 1순위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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