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황좋아 물량 크게 늘고 출하 몰려…작년 반값
60~70% 운송·작업비도 안나와 출하주 손해
유치비 부담에 타 도매시장 운반비까지 떠안아
김장철 대목이 한창인 11월23일 일요일 오후 7시. 서울 가락시장 동문부터 북문까지 500여ｍ의 도로변에는 배추를 실은 5t 화물차 50여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이날 반입된 배추는 5t 화물차 기준 200대 분량으로, 주중 반입량보다 1.5~2배나 많았다. 김장대목 수요를 노리고 출하가 집중된데다 작황이 좋아 전반적으로 공급량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이날 경매에서 배추는 상품 10㎏들이 한망이 평균 2900원 선에 거래됐다. 시장 관계자들은 “지난해 이맘 때의 절반 수준이지만 이 가격에 거래된 것도 ‘다행’으로 여기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당일 거래가 안돼 경매장 인근 도로변에서 하루 더 머물거나, 아예 다른 도매시장이나 김치공장 등으로 운전대를 돌리는 배추차량이 적지 않은 현실을 보고 한 얘기였다.
최현근 대아청과㈜ 이사는 “소비 부진으로 낙찰품을 당일에 팔아 치우지 못하는 중도매인이 부지기수”라며 “이 때문에 가락시장 유통인들이 시장 밖 대기 물량은 손도 못대고, 경매에서 거래되지 않고 유찰되는 물량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숨지었다. 그는 “올해 배추 생산량이 예년보다 크게 늘자 산지와 직거래에 나선 대형 유통업체들이 많아지면서 외부 반출이 감소한 것도 시장내 매기 위축을 부추기는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배추 재배농업인과 산지유통인 등의 경제적 손실이 가중되고 있다. 출하품이 당일 경락되지 않아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할 경우 화물차 기사에게 지불하는 유치비(5t트럭 한대당 15만원 안팎) 등 추가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락시장에서 경매가 어려울 경우 인근 구리·강서 도매시장으로 배추 트럭을 보내야 할 때도 있는데, 이때 치르는 비용 역시 15만~20만원에 이르는 실정이다.
11월27일 밤 가락시장을 찾은 배추 재배농업인 김모씨(충북 괴산)는 “힘들게 생산한 배추를 어떻게든 팔기 위해 유치비까지 부담할 때가 있지만 판매가 쉽지 않아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했다.
더 큰 문제는 추가 비용을 내고 하루를 더 보내더라도 다음날 제값에 판매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김찬겸 대아청과㈜ 경매사는 “오히려 시장 체류시간이 길어지면서 상품성이 하락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팔고 가는 출하주들이 있는데, 그들을 볼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특·상품을 뺀 출하품의 60~70%가 작업비와 운송비 수준(10㎏들이 한망당 2000원) 이하에 거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출하주들 입장에선 배추를 팔아도 하나도 남는 게 없는 셈이다.
김 경매사는 또 “출하주들이 경매장 진입을 위해 유치비를 감수하고 경매가 안 열리는 토요일 저녁에 배추를 올려보내는데, 만약 일요일 경매에서 유찰되면 유치비를 두번 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한편 11월17~27일 가락시장에서 시세 불만족에 따른 출하주들의 요청으로 회송된 5t 화물차는 일평균 20대 수준으로, 배추 값이 좋지 않았던 지난해 이맘 때보다도 배 이상 늘었다.
정만기 한국신선채소협동조합 조합장은 “김장철 작업량 증가로 산지 출하작업비가 5t트럭 한대당 10만원 정도 오른 데다 운송비도 5만~7만원 뛰어 출하주들은 ‘삼중고(낮은 시세·물류비 상승·추가 비용)’를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배추 가격을 떠받칠 추가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출하주들은 올해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성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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